황희두, <사이버 내란-댓글전쟁>을 읽고

정말 '내란'과 '전쟁'이 맞는 걸까?

by 장파덕

정치인이 쓴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만, 정치인이 쓴 책 중에서 그리 '영양가 있는' 책을 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책이다. 그동안 내게 좋은 책들을 많이 추천해 준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기에, 정치인의 책, 정파적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어보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법조인의 직업병이라 그런지,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는 글은 거슬리기 마련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장은 있으나 근거가 부족하다. 정확히 말하면 근거를 제시하기는 하는데 그것이 이른바 '뇌피셜'인지 객관적인 출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신문기사라도 각주를 달아주지..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보수 정권의 여론 조작이라든지, 국민을 상대로 한 심리전이나 인지전의 역사에 대한 서술을 100%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물론 댓글조작 스캔들로 전직 국정원장이 수감되고, 국정원이나 기무사를 비롯한 국가기관들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여론을 조작하려고 했던 뉴스를 보기는 했기에, 저자의 주장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리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다만, 주장을 할 때는 사람들이 그 주장을 재검증할 수 있도록 주장의 근거가 되는 객관적인 출처를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로서 법률서면을 쓰면서 어떠한 사실에 대해 주장을 할 때는 항상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이 부분이 거슬렸다.


그러므로 이 책 역시 다소 비판적인 시각에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책의 제목부터가 조금은 자극적이지 않은가. 사이버 '내란'이라니. 2024. 12. 3. 이후 '내란'이라는 표현이 원래의 의미를 넘어서서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쓰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내란'이란 국토를 점거하거나 헌정질서를 파괴하기 위하여 물리력을 사용하여 한 지방 또는 국가 전체의 평온을 어지럽히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정부기관의 여론조작, 댓글조작 행위를 그러한 '내란'으로 볼 수 있을까? 너무 쉽게 상대 정치세력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죄다 '내란'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을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국민의 정치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여 각종 여론조작 행위에 나선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행위, 나아가 위법적이고 위헌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러한 행위가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룰을 뒤엎는 행위, 그러니까 민주적 헌정질서를 뒤엎는 행위라고까지 볼 수 있을까? 나는 다소 유보적이다. 왜냐하면, 특정 정파가 여론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한다는 행위 자체가 결국 '여론이 정치를 움직인다.'를 인정하는 전제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론 조작'과 '여론 설득'을 구분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계는 모호하다. 지지자들의 자발적 댓글작성과 문제가 되는 '댓글부대'의 경계는 어디인가.


당연히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국민의 여론을 바꾸려고 하는 것과,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들이 가진 지지자들이나 자원을 동원하여 국민의 여론을 바꾸려고 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군, 경찰, 국정원과 같은 권력기관은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여야 한다. 그러한 기관들이 국민의 정치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정치에 개입하는 행위는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예를 들어, 군의 장병을 대상으로 한 정훈교육이 어디까지는 대적관 확립을 위해 바람직한 교육이고, 어디서부터는 은연중에 보수정권의 안보관을 옹호하는 여론조작 행위가 되는가. 또한, 정당민주주의에서 정부와 여당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면서 동시에 여당의 당원이기도 하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면서도 동시에 한 정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대통령이나 여당이 자신의 정치적 의제를 추진하기 위해서 행정부를 동원하는 것은 어디까지가 여론조작이고 어디까지가 정당한 정치활동인가. 가령 이재명 정부가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한다고 하면, 어쩌면 국민의 정치적 인식을 자신들의 정파에 유리하게 개변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사실 핵심은 어떠한 정치세력이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룰을 인정하는가, 혹은 인정하지 않는가를 기준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2. 3. 사태는 분명히 '내란'이지만, 리박스쿨이 '내란'인지는 유보적이다.


하지만 나는 기계적 양비론자가 아니다. 국가기관의 여론조작 행위가 '내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위헌적, 위법적 행위임에는 변함이 없다.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룰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민주주의라는 게임에서 '치트키'를 쓰려는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군, 경찰, 국정원과 같은 권력기관이 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찬성한다. 한편으로, 2010년대 이후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는 극단주의의 흐름을 가만히 둘 수도 없다는 점에도 찬성한다. 국가기관이 그러한 흐름을 이끌었든, 혹은 특정 정치세력이 그러한 흐름을 이끌었든, SNS를 통해 퍼지는 극단주의의 흐름이 민주주의에 큰 해악이 됨은 분명하다.


그동안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존중은 절대적이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였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경쟁시장을 믿은 결과, 오늘날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이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다. 전 국민의 약 10~20%쯤 되는 극단주의자들은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서 반대세력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선거론을 진심으로 믿고 있고, 나와 반대되는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을 동료시민이 아닌 적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혐오표현, 극단주의를 막기 위해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할 것인가?


저자의 주장은 어쩌면 '우리도 댓글부대를 만들자'라는 표현으로도 읽힐 수 있어서 다소 조심스럽다. 물론 국가공권력의 동원이 아닌, 지지자들의 전적으로 자발적인 움직임이라면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과 비슷한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도 '밈'과 '놀이'를 이용해야 한다, 그들이 노무현과 이재명을 조롱거리로 만든다면 우리는 윤석열과 이준석을 조롱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숏폼에 빠져 있고 도파민에 절여진 젊은 세대들의 특성을 이용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특정 정치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으로 유용할지언정, 민주주의라는 더 큰 관점에서도 괜찮을지는 잘 모르겠다.


당연히 정당이라면 집권을 목적으로 해야 하고, 선거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정당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라면 좋은 삶이란 무엇이며 바람직한 삶이란 무엇인지, 나아가 좋은 공동체는 무엇이고 바람직한 공동체란 무엇인지에 대해 보다 더 깊은 고민을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정파의 선거 승리와 집권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어떻게 극단주의로부터 구출해낼 것인가, 양 극단에 선 시민들이 어떻게 서로를 '적'이 아닌 '동료시민'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서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 '복지 차원에서의 접근'이 그나마 반가운 이유이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실제로 정치판은 이미 전쟁터에 가까운 게 맞는 것일지도. 그래도 진보는 도덕적이어야 해, 라는 발언이 진짜 진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지도. 정말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피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내가 여전히 뜬구름 잡는 소리, 속 편한 소리나 하는 것일지도. 당위를 내세우며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일지도. 진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진보 포퓰리스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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