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 울산에 있는 큰집에서 마지막 차례를 지냈다. 더 이상 제사든 차례든, 전통적인 방식으로 조상을 기리는 행사는 우리 집안에서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큰아버지께 술잔을 올리는데, 괜히 아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구한말부터 시작된 '근대화'의 물결이 전통문화의 마지막 보루가지 함락시켜 버렸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게 터무니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가 변화하더라도 관혼상제만큼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무덤 양식을 통해 사회 변화의 흐름(예컨대, 지배집단의 변화, 외부의 침략 등)을 추측해 본다고도 한다. 이제 전통적인 제례도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사실 어머니나 큰어머니, 사촌누나들이 나의 이러한 말을 듣는다면 분개할지도 모른다. 막내 손자로 태어난 탓인지,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핑계로 은근슬쩍 혹은 대놓고 제사 준비에서 빠진 탓인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콩나물 다듬기나 제기 닦기와 같은 아주 쉬운 일들을 제외하면 지난 30년 동안 제사 일을 거의 거들지 않았다. 오히려 큰아빠, 큰엄마 앞에서 괜히 '아~ 과메기 먹고 싶다'라고 해서 제사 준비를 하다말고 바닷가 나들이를 가게 하거나, 제사를 시작하기도 전에(조상님이 먹어야 할) 슬쩍 유과나 약과를 훔쳐먹지를 않나, 제사 일은 전혀 거들지 않았으면서 제사음식을 먹는 것만은 앞장서거나 했기에, 그럴 말 할 자격도 없다.
그동안 어머니, 큰어머니, 사촌누나는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우리 집은 아주 전형적인 한국 집안이었다.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었고, 남자들은 밤을 깎거나 콩나물을 다듬거나 제기를 옮기거나 하는 약간은 부수적인 일만을 담당했다. 어떻게 보면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남의 집안 행사인데, 참석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참석은 당연하고 노동력을 징발당하기까지 한 셈이니 당연히 제사든 차례든 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제사와 차례가 없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전통문화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씁슬하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그걸 부활시키자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전통적인 가족질서상 막내손자인 내가 제사를 부활시키자고 말할 발언권부터가 없을지도 모른다. 장남인 큰아빠는 돌아가셨고, 장손인 사촌형은 가족 행사에 잘 나오지도 않는다. 내가 제사나 차례를 지낸다면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나 가능할 것인데, 과연 그 시점에 내가 가정을 꾸리고는 있을지 모르겠고, 제사를 이어 갈 후손을 남길지도 모르겠고, 한 30~40년 뒤에 다시 제사를 지내려고 해도 그 때는 이미 제사의 명맥이 끊기고도 한참 이후일 테니 도대체 어떻게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지 알고 싶어도 알기 어려울 테다. 각 집안마다 약간씩 다른 방식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그걸 녹화를 해 놓지도 않았으니...
아무튼, 마지막 차례를 지내면서, 둘째 큰아빠가 조상님들께 '앞으로 제사는 이제 마지막입니다.'라고 고하면서 마지막 의례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명절에 차례는 안 지내지만, 명절마다 온 가족들이 모여서 밥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 굳이 울산에서 모일 필요도 없고 대구에서든 어디서든 모여서 맛있는 거 먹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올 추석에는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있는 한정식집에 가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제사, 차례 등등 집안 행사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았던 사촌누나, 사촌형들도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차례가 없는데 가족들이 잘 모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기도 했다.
사실 관혼상제가 다들 그러하지만 특히 '상'과 '제'는 아무래도 경건한 마음, 조금은 신성한 마음으로 임할 수밖에 없다. 근대화가 이루어진지 한 세기가 지났고 '관'과 '혼'은 서구화가 이루어졌음에도 '제'에 해당하는 차례와 제사만큼은 지금까지 전통적 방식으로 이어져 온 이유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리 부모님 세대는 조상님께 잘 해 드려야 후손이 덕을 본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차례와 제사는 조상님을 모시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많은 집안에서 감히 차례나 제사를 없앤다는 말조차 못한 경우가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법으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무조건 지켜야 하는 규범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서구화와 핵가족화, 핵가족화를 넘어 개인화, 그리고 성평등화가 진행되면서, 비용과 시간만 들고 성평등하지도 않은 이러한 제례를 굳이 유지해야 하냐는 인식이 확산된 것 같다. 특히나 코로나19로 인하여 2~3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 자체가 줄어든 탓도 있을 것이다. 성평등 인식의 확산으로 여성들에게만 과도한 노동력을 요구하는 행사를 굳이 유지해야 하냐는 생각도 늘어났을 것이고. 남아선호사상이나 전통적 가족관이 약해지면서, 불편하게 4촌, 5촌과 같은 먼 친척(?)들을 만나서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를 기려야 하냐는 생각도 확산되었을 것이다. '조상 덕 본다'는 인식도 약화되었을 테고.
'니들이 조상 덕 보려고 차례지내느라 골머리 썩힐 때 진짜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여행 간다.'라는 인터넷 뉴스 댓글이 몇 년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조상을 기린다는 의미의 제례마저도 금전만능주의 앞에서는 별 가치가 없는 행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관혼상제라는 것의 요체는 결국 '의례'이고, 늘 그렇듯 의례에는 돈이 들기 마련이다. 돈을 들여가며 의례를 하는 것이, 더 이상 '조상을 모셔야 한다'는 관념이 희박해진 사회에서는 금전적으로는 오히려 손해일지도 모른다. 조상에 대한 추모, 경건함, 역사와 가문에 대한 존중과 같은 가치들이 '낡은 것', '옛 것'으로 치부되어 버린 세상이다.
물론, 조상에 대한 추모, 경건함, 역사와 가문에 대한 존중 같은 것이 반드시 차례나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현대적인 방식을 통해 어떻게 조상을 추모하고, 앞서간 사람들에 대한 경건함을 표현하고, 역사와 가문에 대한 존중을 표시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하지만, 과거의 규범이 사라지고 새로운 규범이 뿌리내리기 전 과도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우리 세대가 그러한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한다면 완전히 그러한 가치들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제사와 차례를, 단순히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밥을 먹는 것으로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어쩌면 배부른 고민일지도 모른다. 저출생, 고령화로 인하여 제사나 차례는 커녕 '나'를 기억해줄 후손 자체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가문의 존속을 걱정하기는커녕 지역의, 국가의 존속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그리고 죽은 조상님을 기리기 이전에 살아 있는 나의 생존부터가 문제인 시대이다. 이러한 생존의 위기 때문에 제사나 차례와 같은 전통 의례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돈을 버는 것, 단순히 살아남는 것만큼이나 소중한 것들이 있다. '나'라는 개인이 거대한 사회나 국가의 앞에 홀로 서 있는 것보다는, 가족이나 지역사회이라는 방패를 두르고 서 있는 게 생존에도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다음 명절에 우리 가족이 차례를 지낼 일은 없겠지만,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힘들 때 서로 의지하고 기쁨은 서로 나누는 그런 정신만큼은 계속 유지되기를 바란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근황을 나누고, 돌아가신 가족들을 추모하고,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그런 시간들이 이어지기를. 조금 더 성평등하고, 가족애를 꽃피우는 그런 새로운 명절 문화를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한다. '나'라는 사람이 한 명의 개인으로도 존재하지만, 가족과 가문의 구성원으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사회라는 거대한 리바이어던 앞에 홀로 서있지 않다는 것을, 가족과 가문이라는 든든한 방패가 있다는 것을 문득 인식하는 그러한 명절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