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그냥 해!'라는 뜻인데, 도대체 무엇을 그냥 하라는 것인가? 아니, 무엇을 어떻게, 왜 하라는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수식어 없이 그냥 하라니, 도대체 이 외계어같은 슬로건은 무엇인가. 니케의 날개를 상징하는 로고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슬로건이건만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의 난 따지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항상 선생님께서 무언가를 시키시면 '왜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무엇이든 '그냥' 해야 하는 것은 내게 있을 수 없었다. 세상은 늘 합리적인 이유로 돌아가는 곳이어야만 했고, '그냥 해'라는 말은 비합리적인 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가 들고, 대학을 다니고, 로스쿨을 다니고, 법무관 생활을 하고, 마침내 로펌에서 회사생활을 하면서, 여러 경험을 하면서 바뀌었다. 세상은 별로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였다. 언젠가 <불쉿 잡>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의 요지는 가장 이윤을 추구하여야 할 존재인 기업이 쓸모 없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자본가들이 중세 봉건영주와 같이 회사를 자기만의 왕국으로 생각하고, 위엄을 떨쳐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것처럼 세상은 때때로 누군가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특히 높으신 누군가(기존의 나는 이 개념조차 부인했다)의 기분을 위해 돌아간다.
그리고 너무나도 불친절하게도 세상은 내게 '왜'를 얘기해주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이유를 알려주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내가 왜 '어른'이나 '윗사람'에게 이러한 '예의'를 갖춰야 하는 것인지, 왜 내가 당연히 '아랫사람'이 되고 그들은 '윗사람'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모난 돌' 취급받을 뿐이었다. 로스쿨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런 '당연한 것'에 대해 나름대로 저항하고자 애썼지만, '모난 돌'이 되는 것은 멘탈 약한 내게는 꽤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사랑받진 못해도 미움받고 싶진 않았다.
세상은 내게 '높으신 분'의 기분을 신경쓰라고 말하지만 정작 세상은 나의 기분을 신경쓰지는 않는 곳이다. 하긴, 누군가의 언짢음과 불쾌함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너에게 불이익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왜 이러한 규범이 일방향으로만 작용한다는 말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원래 그런 것이다, 그게 당연한 것이다, 외에는 아무런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나는 가끔 좌절스러웠다. 나는 이른바 '윗사람'들에게 아주 공손하게, 혹시나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결례를 저지르지 않을지 굉장히 신경쓰면서 말을 하고, 문자를 보내고, 이메일을 보내는데 어째서 그들은 내게 그러지 않을까?
내가 그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서 신경쓰는 만큼, 그들도 나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게 아닌가?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하는 세상인데 어째서 그런 류의 예의나 규범은 일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것인가? 로스쿨 1학년 때 지도교수님과 식사를 하면서 교수님이 식당에 들어온 순간, 나는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는 와중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러한 행동이 그 누구에게도 의기 있는 행동으로 보이기는커녕, 그저 나를 바보로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도 파트너변호사들과 소통하는 것이 내겐 너무도 신경쓰이고 힘든 일이다.
지난번에 블로그에 글을 올렸을 때 어떤 분께서 댓글로 달아주신 말이 힘이 되었다. '생각보다 타인은 내게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걱정하는 일의 99%는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이었다. 혹시나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결례나 실례가 될까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조언이었다. 실제로 우리 회사 동료 어쏘변호사님도 '너무 그렇게 예의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약간의 결례를 저지르더라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파트너변호사 사이에서 ~~라는 말이 돌더라, 라는 말을 간접적으로라도 듣는 순간, 온 신경이 곤두서는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하긴, 그것조차 그저 가십일 뿐이겠지.
군생활을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3년차에 근무하던 부대의 법무실의 어느 수사관님께서 '장법무관이 여기 오시기 전에 장법무관님의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막상 같이 일하니 너무 좋은 분이라서 너무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알았다. 아,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돌았구나. 사실 그 원인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2년차에 근무하던 부대가 더 상급부대였는데, 거기서 내가 일을 3년차에 근무한 그 부대 법무실로 하나 던진(?)게 있어서, 그 일을 짬맞은(?) 법무관이 나에 대한 부정적 소문을 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 그냥 하하하 그렇군요 하면서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든, 아니든, 그냥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파트너변호사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괜히 신경이 쓰인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다른 걸까. 군생활은 3년 기간제이고 로펌은 그렇지 않아서? 근데 지금의 나는 이 로펌에 오래 근무할 생각이 별로 없고, 어쩌면 3년(어쩌면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이직할지도 모른다. 사실 남의 시선에 그렇게까지 신경쓸 필요는 없다. 세상은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당연히 누군가는 비합리적인 이유로 날 좋아할 수도 있고, 날 싫어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어느 파트너변호사님은 별 합당한 이유도 없이 내게 우호적이기도 하니까.
법무관 생활, 로펌 생활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일을 겪다 보니, 이제야 'Just do it'이 무슨 뜻인지 막연하게나마 알 것 같다. 괜히 쓸데 없이 복잡하게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프고, 내 마음만 아프다는 말이다. 사실 3월이 되고 나서, 일이 엄청나게 많이 쌓였다.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 출근까지 각오해야 할 정도로 일이 많이 늘어났다. 그 와중에 내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파트너변호사와 소통하며 일을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고. 기한은 다가오는데 아직 시작조차 일한 일도 있고(지금도 18일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시작도 못 했다). 하필 오늘은 작년 담낭염 때문에 대학병원에 진료받으러 와서 연차를 써서 일도 제대로 못 하고.
해야 할 일은 많고, 파트너변호사와의 소통은 늘 스트레스를 주고, 그 와중에 살은 점점 찌고 운동할 시간은 없고. 근데, 이렇게 하나하나 불평하고 걱정하고 신경쓰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것 같다. 머리를 비워야 한다. 그냥 막연한 긍정으로, 막연한 희망으로, 사소한 즐거움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해!'라는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가짜 웃음을 지으며, 가짜 미소를 짓고 가짜 콧노래를 부르며, '그냥' 내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회생활, 회사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끝없는 근심걱정에 질식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아나, 가짜 웃음, 가짜 미소, 가짜 콧노래가 진짜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세상은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세상은 평등하지도 않다. 세상은 이유를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냥 해! 그냥 어떻게든 해내다 보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어쩌면 지금의 커리어를 바탕으로 조금 덜 빡센 곳으로 이직에 성공해서, 이 비합리적이고 불평등하고 불친절한 세상에 대해 고찰할 여유를 부리게 될지도 모른다. 아, 사회과학이란, 돈 걱정 없는 자들의 전유물일지니! 그래서 오늘도 난 병원 진료를 마치고, 회사에 출근해서 '그냥 해!' 정신으로 밀린 일을 처리할 것이다. 연차 썼는데 왜 출근하냐고? 그냥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