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은 늘 힘들지만, 힘든 이유는 그때그때 조금씩 다른 것 같다. 하지만 주로 회사생활이 힘든 이유는 세 가지인데, (1) 사람이 힘들거나, (2) 일이 어렵거나, (3) 일이 많거나 중 하나인 것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법조계에서 (1)은 깔고 가는 것 같다. 우리 팀의 경우에는 파트너들이 대부분 무던하신 편이다. 하지만 딱 한 분 조금 유별나신 분이 계신데, 처음에는 그렇게 까탈스럽다고 해서 전관 출신인 줄 알았더니 전관 출신도 아니였다. 어쏘 출신으로 파트너까지 달고 지금은 회사에서도 승승장구하고 계신 분인데, 하긴 그렇게 깐깐하니까 그렇게 성공했겠지. 하지만 부림 당하는 어쏘 입장에서는 여간 고역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 9개월 일을 해 보니 나는 꼼꼼함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도저히 꼼꼼하게 일처리를 못 하겠다. 적당적당히 일을 쳐 내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겠는데, 무언가 꼼꼼히 A to Z를 다 따져봐야 하는 일에는 잼병인 것 같다. 그런데 상속사건의 경우에는 그러한 꼼꼼함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때에는 상대방의 '특별수익(망인이 생전에 증여해 주어 얻은 수익)'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결국 상대방이 망인의 생전에 얻은 수익을 알려면 망인의 계좌내역을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수상한 이체내역이 있는지, 그 거래내역이 어디로 연결되는지를 찾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러한 일에 적성이 별로 안 맞는 것 같다. 집중력이 부족해서? 주의력이 부족해서?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한데, 정확하게 딱 떨어지는 무언가가 없으면 사람이 너무 불안해진다. 그런데 상속사건에서 정확하게 딱 떨어지는 거래내역이 존재하기는 어렵다. 마치 강가에서 뜰채로 사금을 채취하듯, 상대방의 특별수익이 될 만한 거래내역들을 몇 가지 추려놓고 그 이후에 또다시 계좌거래내역을 파고파고 들어가야 한다. 로스쿨 시절에 민사법 기록형 시험을 풀 때는 딱 맞아 떨어지는 증거자료들이 제공되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딱 맞아 떨어지는 증거는 거의 없다. 항상 증거는 부족하고, 내가 찾아야 하고, 찾더라도 완벽하지 않다.
또 하나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가처분신청서를 하나 작성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소가가 상당히 큰 사건이고, 아마도 주목을 받을 만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나 같은 사실상 1년차 어쏘 혼자서 이걸 쓰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물론 기존에 진행된 관련 사건들에서 다른 로펌이 쓴 서면을 '복붙'해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기는 한데... 어디까지 베껴야 하고 어디까지 안 베껴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는다. 나는 불명확성, 모호성이 제일 싫은 사람인데, 이 일을 하다 보면 늘 불명확성과 모호성에 얽히게 된다. 세상 무엇이든 확실한 게 아무 것도 없다. 의뢰인도, 파트너도 늘 모호하게 답변할 뿐이다.
또 신건 배당이나 기존 건 재배당도 그렇다. 파트너가 명확하게 업무지시를 하지 않는다. '이제 이 건은 장파덕 변호사가 처리하게'라고 명확하게 지침을 주지 않는다. 그냥 어느샌가 사건 관련된 이메일에 참조로 내가 넣어서 오고 간다든가, 그저 '이 건과 관련하여 도움을 구합니다.'라고 말하고 사소한 일을 시킨다. 그렇다면 일시적으로 내 도움이 필요한 것인지, 아예 이 건을 나한테 맡긴다는 것인지 이것도 전혀 모르겠다. 아 물론 파트너에게 '이거 이제 아예 제 사건인가요?'라고 물으면 되기는 하는데... 두렵다. 내 일이 추가될까봐. 심지어 그 파트너는 아까 위에서 말한 '엄청나게 깐깐한 파트너'님이다. 제일 같이 일하기 두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 나의 회사생활이란 '내가 해야 하는 게 맞는지',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 확실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생활이다. 모든 게 불명확하고 모호하고 불확실하니, 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 사건이 내 사건이 맞는지, 맞다면 내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어떤 일을 하면 되는지, 내가 서면을 써야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써야 하는지, 어떠한 사실관계에 대해서 어디까지 파고들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공을 들여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아 물론, 파트너 입장에서는 말할 수 있다. '파트너는 대략적인 방향성만 알려주는 거고, 디테일한 건 어쏘가 알아서 잘 해야지' 뭐 그렇게 말씀하실 수는 있는데.. 그래도 부림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막막할 때가 많다. 내가 아직 경험이 적어서 그런가. 내가 차라리 파트너라면, 차라리 내가 내 책임 하에 의뢰인과 직접 소통하고 사건 처리 방법에 대해서도 가닥을 잡을 수 있다면 그냥 내가 무대뽀로 부딪히면서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으니 더 답답하다. 파트너 눈치도 봐야 해, 의뢰인 눈치도 봐야 해, 내가 어디까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예 어쏘에게 전부 위임하는 파트너가 차라리 편하다.
아무튼, 지금은 사람이 힘들기도 하지만, 일이 어렵기도 해서 회사생활이 힘들다. 그리고 일이 어렵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어려운 사건도 물론 있지만, 일을 처리할 때 처리 방향이나 처리 방법이 대단히 모호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말 답답하면 파트너에게 물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수십 건의 사건을 수임하고 또 이런저런 대외활동까지 하느라고 바쁜 파트너한테, 서면을 직접 쓰지도 않고 사건의 세부적인 내용은 잘 모를 가능성이 큰 파트너한테, 그런 '마이크로 매니징'을 요구한다고, 나를 '마이크로 매니징' 해 줄 것 같지도 않아서 더 문제이다. 오늘의 하소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