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이 한국의 조란 맘다니가 되기를 바라며
2016년부터, 군생활 3년을 제외하더라도 7년이 넘게 정의당 당원이다. 당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모두 함께한 평당원으로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이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기원한다. 권영국과 정의당을 응원하는 마음 반, 과연 권영국과 정의당에게 진보정치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반으로 권영국 대표의 신간 <농담도 참 못해요>를 구입했다. 우리나라 진보정치에 대해 쥐뿔만큼도 보탠 것 없는 평당원이지만, 그럼에도 진보정치에 대한 애정을 가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의당이 잘 되기를 바라고, 그런 관점에서 정의당이 과거의 실패를 또다시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며, 비판적 시각에서 이 책을 읽어보았다.
심상정 이후로 오랜만에 정의당에 뉴페이스가 등장했다. 그가 TV토론에서 보여 준 모습은 나름대로 선명성이 있었다. 특히 '내란 옹호세력'이라는 의혹을 받는 김문수 후보에 대해 보여준 명확한 태도와, 한편으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사이에 적당히 협력적이면서도 차별점을 보여주려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오랜 기간 노동변호사로 일한 덕인지, 그동안 정의당에서 늘 강조해왔지만 어째서인지 대외적으로 강조되지 못했던 노동 의제, 불평등 의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왜 진보정치가, 진보정당이 필요한지, 정확히 말하면 민주당이 아닌 진보정당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다만, 당이 원외정당으로 전락하고 현실적으로 유권자들의 주목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권영국 대표과 '목적'은 공유하지만, 그 목적으로 향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거창한 말로 하면 권영국과 나 사이에는 정세 인식의 차이가 있달까. 어쩌면 내가 너무 비관적이거나, 너무 쁘띠부르주아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우리나라 대부분 유권자들의 준거집단은 상위 10%이고, 박근혜와 윤석열 탄핵집회에서 보여준 광장의 목소리는 '민주주의의 복원'일 뿐이지 불평등의 타파와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구조의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권영국 대표와는 반대로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내 주변 사람들을 표본으로 해서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남녀노소와 빈부를 불문하고 자신이 언젠가 기득권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기득권과 부자의 이익을 해치는 정책, 가령 부자증세라든지, 복지정책 확대, 기업 규제 강화에 대해서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언젠가 본인이 부자가 될지도 모르는데 부자의 이익을 해치는 정책을 하면 본인도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이타적인 동기도 있다. 그래도 부자들이, 대기업이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이들의 이익을 해치면 우리나라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나라에 돈이 없다는데 꼭 복지를 해야 할까?
모든 사람은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인 존재이다. 권영국 대표는 그의 저서에서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상위 10%에 안착하는 것보다, 이 비인간적인 경쟁의 시스템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그럼으로써 상위 10%가 아닌 나도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이익이라는 사실을 금방 간파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가 주변에서 만나본 한국인들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회 구조 자체를 의문시하고 사회 구조를 공격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게다가, 상위 1%도 아니고 상위 10%라면 아둥바둥 살다 보면 '해 볼만한' 경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아직까지 대한민국 사회는 흔히 말하는 선진국 중에서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더 열린 사회이다. 80~90년대와 같이 평범한 사람도 적절히 노력하면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2026년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중산층이 될 수 없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들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요즘에는 주식 투자에 나선다. 이렇게 전 국민적으로 '동학 개미 운동'이니 '서학 개미 운동'이 일어나는 나라 아닌가.
물론 권영국의 지적이 타당하다. 오로지 이윤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신자유주의 사회구조 하에서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경쟁에서 승리한 상위 10%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대다수 90%는 비인간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고, 70년 넘게 이어져 온 철저한 반공교육과 북한의 존재로 인한 진보정치 공간의 봉쇄, 갈수록 고착화되는 보수 양당정치와 보수 일색의 언론지형으로 인하여 하위 90%도 상위 10%를 준거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준거집단으로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박근혜 탄핵집회와 윤석열 탄핵집회에 모인 수많은 광장의 시민들을 보며 반문할지도 모른다. 봐라,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수호와 사회 대개혁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박근혜, 윤석열 탄핵집회에서 광장의 시민들이 내세운 것은 '민주주의의 수호'일 뿐이다. 불평등의 타파를 비롯한 사회 대개혁의 목소리는 이른바 '운동 세력'이 광장에 대규모 집회라는 용역서비스를 제공해 준 대가로 시민들이 그저 '용인'해 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촛불 혁명, 응원봉 혁명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현 체제의 수호'를 목적으로 한 대단히 보수적인 집회였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집단들이 있다고,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고, 그들의 목소리를 누군가는 대변해야 한다고. 실제로 흔히 말하는 미조직 노동자들, 다문화가정, 성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기성정치에서 충분히 대변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함으로써 진보정치의 공간이 넓어질 수도 있다는 점은 타당하다. 마땅히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보수 양당제는 공고하고, 보수 일색의 언론지형도 공고하다. 진보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한다면 소수가 아닌 '다수'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도 호소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그걸 알면 내가 정의당 대표 하면 되겠지.. 권영국 대표와 지도부의 여러 분들께서 너무나도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고, 그 분들이 나보다도 100배는 더 정의당과 진보정치의 미래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현 정세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다면 진단도 해법도 잘못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걱정이 된다. 가령, 민주당과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측면에서, 과거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이 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 당세를 확장하는 데 도움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위성정당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척'을 질 필요도 없지 않나.
아무튼, 당대표의 책을 읽음으로써 당원으로서 당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 깊어졌다. 정의당이 도대체 어떤 면에서 민주당과 다른가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 권 대표가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진보정치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민주당과 정의당의 목표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정의당이 만들고자 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잘 설명한 책이다. 권영국이 한국의 조란 맘다니('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신임 뉴욕시장)가 되기를 바란다. 농담도 참 못하는 '노잼' 권영국이지만, 그 특유의 진정성과 선명성으로 많은 서울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나 역시 당원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