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꽤 바쁜 달이었다. 1월에 타임을 95시간 찍고, 2월에 타임을 66시간 찍었는데, 3월에는 타임을 145시간 찍었다. 회사 워크샵으로 16시간을 타임으로 인정받은 걸 빼도 대략 130시간정도 되니, 2월에 비해 실근무시간이 두 배 늘어난 셈이다. 폭풍처럼 지나간 3월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정도면 그래도 아직까진 할만한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대략 평일에는 월화수목금 중에서 하루이틀 빼고는 9시정도까지 야근을 하고, 두세 번 정도는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을 좀 했다. 1월, 2월에 비해서 헬스장에 가는 날은 눈에 띠게 줄어들었고, 그 결과 다소 살이 찌긴 했지만, 힘들어서 미칠 정도는 아니였다.
이 정도 업무로드가 쭈욱 이어진다고 한다면 그럭저럭 버틸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걸 '버틴다'라고 표현하니, 괜히 힘이 빠진다고 해야 하나. 어찌되었든 지금으로써는 입사한 지 1년이 되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8월 31일만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8월 31일 땡 하자마자 바로 사직서를 던지고 떠날 것은 아니다. 그 때부터 이직할 만한 곳이 생긴다면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솔직히 말하면, 일이 엄청나게 힘든 것도 아니고, 또 엄청나게 머리아프고 복잡한 사건도 (적어도 지금 당장은) 없다. 가끔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떠올라서 서면을 기깔나게 써내려가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기도 하다.
그런데 뭐랄까, 가슴이 설레고 두근대는 일은 결단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이 돈을 많이 주니까, 또 일단 1년은 채워야 하니까, N개월만에 퇴사/이직하면 끈기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어쨌거나 N대 로펌 중 하나니까 그냥 버티는 셈이다. 돈 많은 선생님들, 여사님들 유류분반환 사건이라든지, 손해배상 사건이라든지, 그럭저럭 규모 있는 기업들의 물품대금 사건이나 회생사건, 이런 것들이 공익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라지만, 보람이 느껴진다거나 사회에 기여한다는 효능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물론, 아까도 얘기했듯이 가끔 서면 쓰다가 막막했는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술술 써 지는 순간에는 짜릿하기는 하다.
기껏해야 만 8개월을 채웠을 뿐이니, 승소의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막 사건에 감정이입을 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혹시 모르지, 감정 이입을 할 만한 사건이 아니라서 감정 이입을 안 하는 것일지도? 아무튼, 돈 많은 선생님, 여사님이나 사장님들이 승소한다고 해서 내가 막 엄청나게 기쁠 것 같지도 않고, (실질 1년차 변호사가 말하긴 주제넘은 말이겠으나) 어차피 사실관계는 정해져 있고 결국 승패도 얼추 정해져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차피 법리해석이 문제가 되는 사건은 몇 없으니까. 다만 지금 행정소송 한 건이 법리적으로 좀 골때리는 사건이 있기는 한데, 승소 기대는 안 한다.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군법무관 후보생 시절, 분에 넘치게도 많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응원의 편지를 많이 받았다. 그 과정에서 정말 내가 친애하지만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운동선수 형이 장문의 편지를 써 주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자기는 올림픽에 나가서 꼭 메달을 따고 올 테니, 꼭 인권변호사가 되어 달라'는 취지의 편지를 써 주었다. 어쩌면 서로의 꿈을 응원해준다는 단순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장문으로 구구절절 편지를 써 준 것을 보면 어쩌면 내가 무언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랐던 것이, 정말 훌륭한 인권변호사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삶을 살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였을까.
물론 지금 당장 인권변호사가 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참 길다. 법무관 시절 고등학교 동문회에서 만난 법조인 선배들은, '야, 너는 2년에 한 번씩 진로를 바꿔도 하고 싶은 거 10개는 넘게 할 수 있겠다.'라고 말하며 나의 젊음을 부러워하였다. 괜히 조급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흔히 말하는 N대 로펌에서 차분하게 변호사로서의 실무를 배우는 그런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현재의 삶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그러니까 하루하루 버티면서 '1년만 채우자'...하던 것이 '2년만 채우자. 3년만 채우자..아니 유학만 가자..파트너만 달자'하다가 어영부영 그저그런 평범한 변호사 1이 되어버릴까봐 걱정된다.
그래서 최소한의 '공익인권'에 대한 끈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일환에서 민변 모임에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민변에서는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월례회를, 각 위원회별로 월례회를 한 번 하는데, 나는 1개의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매월 2번 정도는 나갈 기회가 생긴다. 그 중에서 최소한 위원회 월례회에는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월례회에서 하는건 주로 매월 다른 주제로 강연을 듣는 것인데, 그런 강연을 듣고 또 질의응답도 하다 보면,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 '인권변호사'의 욕구가 꿈틀거린다. 나도 저런 일을 해보고 싶다, 내가 저런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소수자 인권 실무학교'에 참여해서 공익인권변론과 관련된 여러 주제에 대해 강연을 들었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소중한 주말에 무려 6시간이나 시간을 냈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 내가 그동안 잘 몰랐던 주제에 대해 알게 되기도 하고, 또 이러한 것이 인권의 문제가 되기도 하는구나 깨닫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소송을 해볼수도 있겠구나, 이러한 소송이 돈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겠구나 배우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저렇게 앞서서 나간 선배 법조인분들이 있기에 지금 강연을 듣는 시점에서는 명쾌해 보이지, 막상 처음 그런 소송을 할 때는 참 어려웠겠구나 생각도 든다.
변호사로서의 활동이 누군가의 삶을 인간답게 만들고, 단순히 소송 당사자뿐만 아니라 더 넓은 범위로 그 영향이 파급될 수 있다면, 조금 더 일에도 재미를 붙이고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일이 뭐 최악이라거나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기득권에 복무한다는 인식을 지울수는 없다. 일단 흥이 나는 일은 아니니까. 게다가 파트너변호사와의 관계, 의뢰인과의 관계는 여전히 어렵고 불편하다. 이것도 언젠간 익숙해지겠지. 어느 선배 어쏘 변호사님은 자기는 절대 '죄송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송구하다'라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하나도 안 죄송하다고 생각하는 게 멘탈관리의 비법이란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러면 넌 돈 버는 게 재미있고 즐거울 줄 알았냐고. 원래 먹고 사는 건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고.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는 타당한 말이다. 남의 돈 빌어먹고 사는 게 즐겁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게 어쩌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적어도 변호사라면, 어찌되었든 라이센스 하나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최소한의 생계 유지에는 지장이 없는 직업이라면, 어느 정도 돈을 포기하고서라도 즐겁고 보람있고 흥미로운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의 차이이다. 막상 인권단체에서 일했는데 또 실망하거나 못 견딜만한 요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로 전환은 신중하게 생각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하지만 하루하루 무뎌지는 삶보다는, 조금 더 불확실할지라도 도전하는 삶이 더 아름답지 아니한가. 2026년 8월 31일까지만 하루하루 무뎌져가는 삶을 살아보기로 해야겠다. 그래도 퇴직금은 받아야지. 군생활 할 때처럼 디데이라도 해 놓아야 좀 더 잘 버틸 수 있으려나. 실질적인 2년차 변호사로서의 내 커리어가 어떠한 전환을 맞이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