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일기(4): 함께 살자 대한민국, 상상하라 ???

by 장파덕

2012년 대선의 '씬 스틸러'였던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선거 슬로건은 '함께 살자 대한민국, 상상하라 코리아연방'이였다. 비록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 및 내란선동 사건 관련한 수사과정에서 통합진보당과 북한과의 일부 연관성이 밝혀져서 빛이 바래기는 하였으나, 그러한 맥락을 떠나서 선거 슬로건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굉장히 잘 드러낸 좋은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살자 대한민국'은 자유, 평등, 연대라는 진보정치의 주된 가치를 잘 드러내었고, '상상하라 코리아연방'은 (북한의 고려연방제를 연상시킨다는 문제점이 있으나) 통일에 대한 금기를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2025년 현재를 2012년과 비교하여 보면, 분명히 진보정치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발전한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과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을 제외하고는 사회경제 정책 면에서 보수정당과 큰 차이가 없던 민주당계 정당이 비교적 '좌클릭'하였고, 최근 이재명 정부에서 노동계의 숙원인 노란봉투법이 입법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13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오히려 더 레드 콤플렉스와 매카시즘에 더 절여진 사회가 되기도 하였다.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 분단 체제에 아주 조금의 의문을 제기하기만 해도 '빨갱이' 취급받기 일쑤이다. 여론을 의식한 진보좌파 시민들의 자기검열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경제적 양극화, 정치적 양극화가 더 심해진 지금이야말로 기존 체제의 대안을 찾기 위한 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 사회시스템이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낳고 있는 지금, 새로운 체제를 위한 대안을 상상하지 않으면 결국 사회는 과거로 퇴행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인 극우화의 물결, 우리나라에서의 이른바 '윤 어게인' 세력의 발호 등을 보라. 기성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대안적 시스템을 모색하지 않고 현재 시스템을 지키기에만 급급하다면 언제든지 사회는 퇴행할 수 있다. 현재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중국인 혐오 따위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을 상상하는 것이다.


경제학에 대한 식견이 썩 깊지는 않다. 그러나 언뜻 생각해 보면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은 내재적인 모순이 있다는 점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을 소수의 자본가가 소유하고,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대다수 노동자들로부터 잉여가치를 수취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자본가들이 그들 사이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높여야 한다. 이윤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물론 임금을 깎는 방법도 있지만, 결국에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최선이다. 동네 슈퍼마켓이 대형마트를 이길 수 없고, 동네 잡화점이 다이소를 이길 수 없고, 동네 옷가게가 무신사를 이길 수 없는 것이 예시이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여러 산업 분야에서 초기에는 여러 작은 기업들이 경쟁하였으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결국 소수의 독과점기업만이 남게 된다. 그러나 소수의 독과점기업만이 남게 되면 더 이상 자유경쟁시장과 같이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다.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소수의 독과점기업은 노동자로부터만 잉여가치를 수취하지 않고, 하청업체로부터 잉여가치를 수취하고, 종국적으로는 소비자와 사회 전체로부터 잉여가치를 수취한다. 이미 우리나라의 상당수 산업분야는 소수의 대기업들이 지배하고 있고, 더이상 자유경쟁시장이라고 볼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가령, 통신3사가 치열하게 가격경쟁을 하는가?


그런 독과점시장의 폐해를 오래 전부터 겪은 미국과 유럽의 선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100여 년 전부터 이른바 '반독점법'을 제정하여 독과점시장이 야기하는 전 사회적 악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였다. 한때 미국 내 석유시장을 거의 독점한 록펠러의 스탠타드 오일이 미국 정부에 의해 수십 개로 쪼개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오늘날 애플, 알파벳, 메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IT기업들이 전 세계적인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반독점법의 칼날은 예전같지 못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현대기아차, 삼성전자, 쿠팡, 배달의민족, SPC같은 기업이 사실상 특정 산업을 독점하고 있으나, 규제는 무디기만 하다.


대자본의 경제적 지배력이 결국에는 정치적 영향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본 권력을 견제해야 할 정치권력이 오히려 자본 권력에 포획되고 있다는 점이 현대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큰 문제이다. 앞서 보았듯, 자본주의 체제에서 '규모의 경제'에 따른 이윤 극대화 추구는 필연적이고,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독과점기업의 등장 역시 필연적이다. 그러나 독과점기업은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결국 노동자, 소자본, 소비자, 사회 전체로부터 잉여가치를 수취한다. 그러므로 독과점기업은 민주적 정치권력에 의해서 반드시 제어되고 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도리어 정치권력이 자본권력에 포획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결코 완벽하지 않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독과점기업의 등장과 그로 인한 전체 후생의 감소라는 내재적 모순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민주적 정치권력에 의한 상시적인 통제, 그리고 주기적인 '땜질'을 통해 교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적 정치권력은 자본권력을 통제하지도 못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의 모순 완화를 위한 '땜질'에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 시장 지배력과 정치 지배력을 확보한 자본권력이 결국에는 노동자를 쥐어짜고, 하청업체를 쥐어짜고, 소비자를 쥐어짜고, 종국에는 사회 전체를 쥐어짜내고 있다. 장기간 수리하지 못한 기관차는 곧 폭주기관차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넘어선 대안을 상상하여야 한다. 자본주의라는 기관차가 오랜 기간 수리하지 못하여 폭주기관차가 되어 모든 승객들을 파멸시키기 전에 우리는 새로운 열차로 갈아탈 준비를 하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열차 안전한 것 맞아?'라는 아주 작은 의문제기만 하여도 사람들은 '너 빨갱이지?'라고 철지난 색깔론을 들이밀곤 한다. 정치권력과 여론권력을 장악한 대자본이 시민들로부터 새로운 대안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가고 있다. 구 소련식 사회주의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맑스-레닌주의를 추구하자는 말도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새로운 대안을 상상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내재적 모순을 지적하고, 결국 자본주의 사회가 붕괴하고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맑스가 사회주의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운영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말한 바가 없다.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상상하는 것은 이제 21세기 현대인들의 몫이다. "함께 살자 대한민국, 상상하라 OOOOO!"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할이다. 철지난 반공주의와 '멸공' 구호가 횡행하는 와중에서도 우리는 '불온한 질문'을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변호사일기(3): 사회생활의 예의범절, 어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