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은 어떻게 패턴이 되었는가
『위대한 개츠비』는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오해받아온 고전일 것이다. 그 이유 중 번역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 페이지의 내용을 보자.
화자 닉 캐러웨이의 자기 성향 고백으로 시작한다. 아버지 충고의 영향으로 ‘모두가 나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니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라는 가치가 자리 잡았다, 여기까지는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도 알 정도로 모든 번역에 오독은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쉽게 재단하지 않는 성향을 사람들은 참 잘도 알아보고, 내 앞에서 별 얘기를 다 쏟아 놓는다. 안 들으려고 별별 짓 다 해봤다. 왜 듣고 싶지 않냐면… 이후에 이어지는 부분에서 거의 대부분의 번역이 오독을 한다.
for the intimate revelations of young men or at least the terms in which they express them are usually plagiaristic and marred by obvious suppressions.
젊은 사람들의 은밀한 자기 고백은, 적어도 그 고백을 표현하는 방식은 대부분 베낀 듯 진부하고, 기껏 감추려는 얘기들이 오히려 고스란히 드러나곤 하기 때문이다.
해설
1. the intimate revelations of young men
젊은 사람들의 은밀한 고백은
— 자기 고백이지 남들 얘기가 아니다.
2. or at least the terms in which they express them
아니면 적어도 고백을 표현할 때는 쓰는 용어(표현방식)는,
— 여기까지가 주어
3. are usually plagiaristic
대부분 표절‘적’이고
— 오독이 패턴화 된 부분이이다. plagiarism 명사가 아니라 plagiaristic 형용사로, 과장어법(overstatement)이다. 거의 모든 번역이 ’ 표절‘이라는 명사 개념으로 오독한다.
그렇다면 ’ 표절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다 똑같다, 클리셰다, 진부하기 짝이 없다,라는 뜻이다. 부정한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4. and marred by obvious suppressions.
눈에 보이는 (얘기들) 억누름 때문에 (그 모양새가) 성치 못하다.
— 직역을 해놓고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부분이다. 이 번역도 사실은 직역에 가까운데, 거의 모든 번역이 사전적 단어뜻을 1:1로 대응시키는 방식, 즉 mar=훼손하다, 왜곡하다, obvious=명백한, suppressions=압박, 은폐를 써서, 사전적으로 오역은 아닌, 그러나 의미적으로는 완전히 오역인 문장을 만들어 놓았다. 직역을 하면 100% 번역 실패하는 구간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mar는, ‘행동이 의도를 망친다’의 망친다 정도로, ‘그것만 아니면 좋았을 텐데 그것 때문에 금 갔다’ 이런 뉘앙스다. marred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면 어색한 직역문장이 나오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번역자들이 ‘왜곡’이나 ‘훼손’처럼 과도하게 번역했는데 ‘뉘앙스 도구’ 정도로만 이용해야 자연스러운 문장이 나온다.
비슷한 뉘앙스로 예
• The party was marred by the fight.
• The picnic was marred by the sudden rain.
파티가 싸움 때문에 왜곡되었다,
갑자기 내린 비로 피크닉이 훼손되었다..
라고 번역하면 매우 이상하다.
원문으로 돌아가 marred by obvious suppression을 평이한 문장으로 풀어쓰면
(Their stories) are marred(spoiled, unnatural, awkward) by their suppression which is obvious.
누르는 얘기들이 뻔히 보이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모양새가 어색하다.
인 셈이다.
또 하나. 3과 4는 병렬 관계이지, 인과 관계가 아니다.
3. are usually plagiaristic
대부분 표절‘적’이고
4. and marred by obvious suppressions.
눈에 보이는 (얘기들에 대한) 억누름 때문에 (그 모양새가) 성치 못하다.
대부분 표절‘적’이어서 …. 못하다, 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 문장이 전하는 건 ‘젊음의 어리숙함’, 그 빤함을 지겹게도 많이 봤다는 닉의 회상이다. ‘한심한 놈들’ 단죄하는 톤이 아니다. 약간의 냉소+담담한 피로를 전달하는 문장이다.
실제 번역문들을 보자.
• 김 ㅇㅇ 번역 (ㅁ 출판사, 2003년)
표절을 숨기려다 보니 흠이 나있다? 오역
• 김 ㅇㅇ 번역 (ㅇ 출판사, 2013년)
문자 그대로 표절이라 믿으니 ‘남의 글’이라는 없는 서사가 창작된다. marred를 과하게 옮겨 ‘왜곡 (twisted, distorted)’이라는, 틀린 뉘앙스를 전하고 있다.
• 김 ㅇㅇ 번역 (ㅁ 출판사, 2009년)
오역으로 만든 ‘멋진’ 문장.
• 황 ㅇㅇ 번역 (ㅎ 출판사, 2025년)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길을 잘못 간다. ‘the intimate revelations’도 의미가 다소 어긋난다. ‘비밀 누설’, ‘폭로’가 아니라 ‘자기 속 얘기’ 같은 뉘앙스.
• 김 ㅇㅇ 번역 (ㅍ 출판사, 2015년)
방향은 맞다. (번역의 정답은 없으나 ‘방향의 정답’은 있음) 그러나 ‘남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는 말이 다소 원문에서 벗어나고 ‘볼썽사납기 마련이다’라는 매몰찬 목소리는 부적절. ‘… 빤히 들여다보여서 보고 있기 불편해진다’ 정도가 닉의 점잖은 목소리. 그 목소리를 ‘인지’하고, ‘빤히 들여다보인다’로 멈추는 것이 원문이 쓰인 방식.
많은 번역가들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한, 들을 가치도 없다, 볼썽사납다, 이런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말, 단죄하는 말’을 Nick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거리두기’가 피츠제럴드가 화자 닉에게 부여한 목소리의 핵심. 이걸 놓치면 피츠제럴드의 점잖은 문장이 아닌, ‘싼티 나는’ 문장이 된다.
• 고 ㅇㅇ 번역 (ㅇ 출판사, 2022년)
칼로 잰듯한 직역. ‘명백한 억압으로 훼손되어 있다’ 사전뜻 그대로 단어 1:1로 옮겼다. 엄밀히 말하면 잘못 옮긴 말 하나 없지만 엉뚱한 문장이 나온 대표적인 예. mar를 과하게 옮기면 안 된다는 게 바로 이런 문장. 무슨 억압을 말하는 거며 무엇이 훼손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 황 ㅇㅇ 번역 (ㄷ 출판사 2018년)
‘주워들은’, ‘들어줄 만한 가치도 없다’는 가차 없는 어투는 닉의 목소리가 절대로 아니다. 뒷문장을 ‘거짓말을 한다’는 뉘앙스로 옮겨 방향이 삐끗.
• 유 ㅇㅇ 번역 (ㅌ 출판사 2003년)
‘표절이며’ 단언. 그리고 이어지는 ‘은폐’. 은폐라는 단어를 쓴 번역가가 한둘이 아닌데, 무엇을 suppress 한다는 건지, 방향을 못 찾는 것까지는 이해. 이해할 수 없는 건 ‘은폐’라는 단어 선택. 기업형 범죄 표현할 때나 쓸 단어.
• 김 ㅇㅇ 번역 (ㅂ 출판사 2020년)
걸리는 부분 없이 부드럽게 읽힌다. 그러나 ‘이를(베낌을) 억지로 숨기려다 보니’에서 역시 문장을 오해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결국 내용은 억지스러운데 형태는 좋은 형국.
수십 개의 번역본을 살펴보며 느낀 것은(미리 보기로 볼 수 있는 책만 비교했음. 번역 프로젝트팀, 영한대역 문고는 제외했음), 고전문학 번역계 자체가 원문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능력보다 글 만들기, 문체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 말로는 ‘본래의 맥락과 문장을 최대한 자연스러운 한국말로 옮긴다를 목표로‘라고 하지만, 그전에 ‘원문을 제대로 이해했는가’라는 기본토대가 취약. 모래 위에 호화주택 짓는 꼴.
‘이를 억지로 숨기려다 보니 대개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허점이 노출되기 마련이다.’ 우습게도 많은 번역자들이 만들어낸 문장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다.
-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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