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친구들과 홍콩여행기
막내딸이 초등 4학년 때 던진 한마디로 시작된 여정이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다는 그 순수한 열망에 목적지를 홍콩으로 정했다. 휴양지는 식상하고 미주는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적당한 볼거리와 디즈니랜드가 있는 홍콩은 꽤 괜찮은 선택지였다. 5명의 어린이들과 5명의 엄마들이 함께 한 이번 홍콩여행은 그야말로 왁자지껄 코미디 한마당이었다.
낯선 홍콩 공항에 내렸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우리'라는 익숙함이었다. 우왕좌왕 우버 탑승장을 찾아 헤매면서도 "너희 먼저 가라, 내가 남을게"라고 외치는 엄마들의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과 기시감을 느꼈다. 여행은 결국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모든 걸 결정한다.
란타우섬의 타이파비치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서로의 모습을 놀리며 웃었던 시간. 이곳은 가평인가 홍콩인가를 논하던 코미디 같던 대화. 어른들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는 동안 아이들은 지칠 때까지 바다에서 물놀이를 했다. 발에 상처가 나도 티슈를 감고 다시 바다로 뛰어들던 아이들의 그 무해한 생동감. 가평이면 어떻고 홍콩이면 어떠할까, 그렇다면 너무 멀리 왔나 싶기도.
첫날 저녁, 우리가 이 멤버로 정말 홍콩여행을 왔다는 벅찬 감동이 몰려왔다. 창밖으로 펼쳐진 DB North Plaza의 풍경을 바라보며 모두 둘러앉아 타이 음식을 나누던 밤, 우리는 평소 공유하던 일상을 홍콩이라는 낯선 지평 위로 조금 더 넓게 펼쳐놓았다.
덥고 습한 8월의 홍콩 디즈니랜드는 인내심의 시험대였다. 손 선풍기와 얼음주머니 만큼이나 효용가치가 낮았던 프리미어 엑세스. 더위에 고생하기 싫어서 대기 없이 탈 수 있는 패스권을 준비했지만, 아이들은 대기 없이도 바로 탈 수 있는 아이언맨과 앤트맨을 무한 반복하며 즐거워했다. 어른들이 설계한 완벽한 동선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변함없이 깨닫는다.
하이퍼스페이스 마운틴을 타던 중 갑자기 영상이 꺼진 돌발 상황. 당황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별 경험을 다 한다"며 웃어넘겼다. 겨울왕국 공연이 너무 유치해서 아이들이 내뱉은 "엥?" 소리조차 우리에게는 하나의 유쾌한 에피소드가 되었다. 계획했던 20주년 불꽃놀이를 포기하고 셔틀버스를 택했을 때,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할 것'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휴식'을 선택할 줄 아는 유연함을 발견했다.
식당에서 커피 대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이것이 디즈니의 커피"라고 정의하던 순간. 완벽한 판타지 속에서도 현실적인 재미를 찾아내어 즐길 줄 아는 사람들과 땡볕 아래의 디즈니랜드는 찬란한 기억으로 남았다.
홍콩 과학 박물관에서의 네모 바퀴를 굴리겠다고 끙끙거리던 아이들의 집념, 그리고 피크트램을 타고 오른 빅토리아 피크의 낭만, 밀폐된 대기 공간에서의 정체 모를 불쾌한 냄새에 함께 얼굴을 찡그리며 범인은 너라던 순간. 홍콩의 반짝이는 야경보다 우버 안에서의 수다에 더 열중하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가 찾으려던 진심은 거창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이동하는 차 안, 딤섬을 나누는 식탁 위에 있었음을 느꼈다.
부슬부슬 비를 맞아가며 다녀온 마카오에서는 즉흥적으로 방문한 폴로 공장에서의 쇼핑에 가장 열정적이었고, 촘촘한 인파에 걱정하며 떠밀려 올라가면서도 세인트 폴 성당을 기어코 눈에 담았다. 계획했던 분수쇼를 셔틀버스 창밖으로 훔쳐봐야 했지만, "우린 본 거다"라며 함께 결론지었고, '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쇼'는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함께 이야기하는 이번 여행의 정점이었다.
마지막 날 아침, 베이크하우스의 에그타르트를 사기 위해 빗속을 뚫고 오픈런을 해준 동생들의 진심과, 시도때도없이 간식을 쏴서 아들의 걱정을 샀던 쿨한 언니의 마음까지. 지루할 틈 없는 새로운 자극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존중과 어울림 덕분에 그 따뜻한 에너지를 품고 행복하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함께 길을 잃어도 즐거울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 어떤 빗줄기도 찬란한 순간이 된다. 다음 여행은 무조건 휴양지라며 한 목소리를 내는 우리들의 시선이 새로운 일상을 공유하며 더 깊어졌기를.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따뜻한 인사가 오갈 줄 알았던 단톡방에 사진 한장이 올라왔다. 그건 함께 다녀온 언니의 물리치료 사진이었다. 그리고 사실 여행 첫날부터 무릎이 아팠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10명의 체력과 열망과 유연함은 이렇게 달랐는데, 행복한 기억으로만 급하게 마무리해본다. 정말 다음 여행은 휴양지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