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장미

by 거미숲

오늘 본 장미는 마치 불에 탄 것 처럼 부서지고 쪼그라들어 있었다. 어제는 분명 생명력이 넘치는 장미였는데.

시든 장미를 보니 얼마전에 본 검붉은 땅거미가 떠올랐다. 안개속의 앙상하게 빛나는 초승달이 떠올랐다. 썰물의 해변, 그리고 불꽃놀이의 요란한 마지막 불꽃과 정적.

장미는 어쩌면 밤을 기다리고 있을까? 마지막 남은 꽃잎들을 소명을 위해 아무도 모르게 저 우주 속으로 흩어버리는 것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까?

떨어진 꽃잎 하나를 주워 책 사이에 끼워 넣었다. 이미 시들고 멈춰버린 붉은 심장처럼 꽃잎이 글자들 위에 누워있다. 이것은 인간의 장례식과 닮아있다. 상징과 암시와 기호 속에 파묻힌 죽음을 닮아있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마치 영원히 살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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