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제주도 겨울여행 4>

기행문

by 진다르크

창문 너머로 화사한 아침햇살이 비치는 아침이었다. 평온한 제주바다와 맑은 뭉게구름이 보였다. 잠을 설칠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컨디션은 양호했다. 아침 7시, 이른 수업 시간에 미리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몸을 풀고 있었다. 의외로 남성분들이 많이 보였다. 나처럼 여행객들로 보이는 듯했다. 오늘은 폼롤러를 이용하여 몸을 푸는 수업이었다. 나보다 더 마른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매우 여리한 여자 강사님은 인상과 어울리지 않는 노란 머리로 첫인사를 강렬하게 심어주었다. 수업 내내 폼롤러에 기댄 부위들이 예상외로 너무 아파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 되고 있을 찰나,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혹시 중국인 아니시죠?"

"네? 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었다. 가뜩이나 혐중 사회라 중국인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중국인이라니. 내가 정말 그렇게 보이나. 작은 얼굴에 비해 높은 콧대와 큰 눈을 가진 인상이라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제주도에는 중국인들도 많이 오니까. 그럼에도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선생님의 질문에 수업이 끝나는 동안 불쾌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채로 요가 매트를 소독하고 제자리에 정리한 후 부랴 예약했던 식당으로 달려갔다.

어제처럼 미리 준비라도 해놓은 듯 5분도 안돼 뜨끈한 추어탕이 내 앞에 놓여졌다. 앞뒤 테이블에는 나와 함께 수업을 들은 숙박객 여성분들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처럼 혼자 요가 수업을 들으러 온 분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은 티브이도 없어 명상에 아주 적합한 특색 있는 일인 전용 숙박업소이기 때문이다. 어제저녁을 일찍 먹은 터라 배가 무척이나 고픈 상태였다. 추어탕을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솜사탕처럼 녹았다. 허겁지겁 바쁘게 입안을 움직이며 굶주린 배를 채웠다. 정말 맛있었다. 이번 여행은 요가보단 이 식당의 음식들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을 듯하다.


어제저녁 미리 짐을 싸놓은 가방을 들고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택시를 잡았다. 위치가 서귀포라서 그런지 10분의 소요시간이 걸린다는 안내창이 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마지막인 12월 제주의 바다를 다시 바라보았다.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바다는 평화롭고 고요해 보였다. 달리는 택시안에서 넋 놓고 내내 뭉게구름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역시나 멀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생활 패턴이 바뀌거나 피곤하면 늘상 오는 신체반응이었다. 눈이 서서히 풀리고 올라오는 구역질을 소리 없이 간신히 참아내며 가방을 배게 삼아 새우자세로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러자 멀미가 한결 나아지는 듯했다. 김포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기사님은 상냥한 목소리로 혹시 멀미가 있으시냐며 물었다. 섬세하고도 다정한 질문이었다. 나는 무기력한 목소리로 작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힘든 나의 몸과는 다르게 제주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맑았다. 차에 내려 공항에 도착해 다시 걷다 보니 멀미는 다시 사그라들었다. 탑승시간이 20분 지체되었다는 소식에 주문한 커피를 마시며 면세점으로 향했다. 서울로 돌아가면 지인들에게 나눠줄 초콜릿과 과자를 한가득 구매했다. 그리고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소품샵에는 집에도 가득 있는 손수건과 볼펜들도 구매했다.


나의 비행기 탑승 자리는 창문 가장 안쪽 자리였다. 세 명의 좌석이 붙어있는 터라 들어가기 힘들었지만 하늘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이륙하기 전, 팝콘이 선생님에게 도착시간 문자를 보내고 활동한 콘이 사진을 훑어보았다. 가엾어라. 엄마가 얼른 달려갈게. 역시 나에겐 이박도 너무 길고 일박이 제일 알맞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반려견이 있는 견주는 마음 편히 여행도 못 가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집에서 챙겨온 최진영의 비행문을 펼쳤다. 내용이 흥미로워 집중하며 읽고 있는 찰나 내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분이 한두 살로 보이는 남아 아이를 안고 입맞춤을 하며 연신 촬영을 했다. 이모와 조카는 보이는 듯했다. 문뜩 정신이 산만해졌다. 그러다 바로 앞자리 창문 빈틈 사이로 하얀 털과 까만 눈이 보였다. 흰 털을 가진 포메라니안이었다. 주인 품에 쏙 숨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히 손을 뻗어 강아지를 쓰다듬고 싶었으나 행여 민폐가 될까 내내 미소만 지으며 바라보았다. 몇 년 전, 콘이와 함께 제주도를 간 적이 있다. 비행기 안에서 내내 낑낑대며 힘들어하던 콘이를 보며 나의 욕심으로 인해 아이를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잠시 그때를 회상하며 저 아이도 힘들어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시 눈길을 책으로 돌려 한 장을 넘기려던 찰나 딩동, 안내방송을 알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곧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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