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제주도 겨울여행 3>

기행문

by 진다르크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전 10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사이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가운데 원형 기둥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악 장비들이 금세 설치되어 있었다. 원형 매트 안에는 싱잉볼, 다양한 색깔의 빛이 나는 전자 피아노, 노트북, 요가벨, 복잡하게 얽힌 장비선들까지 생소한 악기들이 놓여있었다. 남자 선생님은 노트북으로 차분한 인도음악을 틀어주시며 분주하게 준비하고 계셨다. 수업이 시작되자 우리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서로에게 나마쓰떼 인사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전형적인 요가 강사의 차분한 톤으로 우리들에게 악기의 명칭과 수업 안내를 해주셨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매트에 누워 불이 꺼진 동시에 눈을 감자 고요한 선생님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싱잉볼을 시작으로 피아노 소리와 함께 어릴 적 놀이터에서 놀았던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음향이 흘러나왔다. 눈을 감고 어릴 적을 회상하였다. 나는 행복한 유년 시절이 아니었기에 상상 속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떠올렸다. 계곡물이 흐르고 참새가 지적이는 소리가 흘러나올 땐 자연으로 돌아가 평온한 기분을 상상하였다. 수업이 중후반으로 흐르자 사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요가실 안을 울렸다. 살짝 눈을 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편하게 잠든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쉽게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늘 쉽고 깊게 잠들지 못하는 나에겐 그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천장까지 뻗은 원형 기둥에 전자피아노 빛이 반사되어 알록달록 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무지개색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나의 시선을 끌었다. 뒤에는 노을이 비치는 쓸쓸한 갈대밭이 흩들리고 있었다. 문뜩 영화 아바타에서 식물들과 머리카락으로 교감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바타 세상 속에서 살 수 있다면 참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울텐데. 지금 세상보다 더 행복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천천히 손가락, 발가락 끝을 움직여보라며 수업 끝을 알리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땀을 빼며 격동적인 요가 수업만 주로 좋아했는데 오늘처럼 명상하며 현재에 집중하는 수업도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숙소 옆에 위치한 작은 식당에 요가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장어덮밥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체크인을 할 때 숙소 이용자들에겐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다. 해물탕, 낙지덮밥 등 다양한 메뉴들이 있었지만 워낙 먹는 양이 적은 나에겐 일인분 장어덮밥이 가장 적합해 보였다. 요가매트를 정리하고 부랴부랴 식당으로 향하였다. 숙소 근처에는 그 흔한 편의점이나 카페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예약한 식당 하나만 덩그러니 혼자 있었다. 식당에 도착하니 베트남 억양인 친절한 여성 직원이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음식을 미리 준비하여 언제 오나 기다렸다는 듯이 5분도 안되어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장어덮밥이 앞에 놓여졌다. 장어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많이 먹으면 느끼한 터라 그닥 기대를 안했는데 입에 넣은 순간 마법처럼 장어가 사르르 녹았다. 이렇게 부드렇고 맛있는 장어덮밥은 정말 처음이었다. 오바가 아니다. 정말 맛있었다. 워낙 느리게 먹은 편인데도 허겁지겁 쉬지 않고 음식을 해치웠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차도를 건너 바다를 향해 걸었다. 12월 제주도 노을빛 바다는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며 얼굴을 반쯤 숨기고 외롭고도 고요한 모습으로 내 곁을 떠나고 있었다. 낮에는 그래도 따스했는데 저녁이 되니 다소 바람이 차갑게 느껴져 얼른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방에 도착하니 모든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탁 편해졌다. 내일 서울로 가는 옷을 미리 꺼내고 가져온 영양제를 챙겨 먹고 여행 가방을 정리했다. 역시나 저녁을 안먹는다는 콘이 선생님의 문자를 보며 나와 떨어져 있으면 단식을 하는 콘이 생각에 얼른 서울로 가고 싶어졌다. 여행도 좋고 제주도도 좋지만 늘 걱정되는 콘이와 집이 제일 편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기에 순간 이 방안의 공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천천히 낮에 활동했던 콘이 사진을 보았다. " 짜식, 나만 없으면 엄청 얌전하다니까, 이중인격 강아지야"

샤워실로 들어가기 전, 충전기에 핸드폰을 꽂고 매일 챙겨 보는 뉴스 라디오 볼륨을 크게 올렸다. 늘 듣는 친근한 기자의 목소리에 낯설었던 공기가 조금은 편안해졌다. 우리 집에는 보일러 온도를 올려도 물이 뜨거워지지 않아 겨울이 되면 매번 동네 목욕탕에 갔었는데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 찬 샤워를 할 수 있는 생각에 마음이 행복해졌다. 이렇게 뜨거울수가. 이렇게 좋을수가. 진짜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 연신 속으로 감탄을 외치며 뜨거운 샤워물이 이렇게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젖은 머리를 말리며 문뜩 바다가 보이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캄캄해져 모든 것이 까매졌고 형광등에 반사된 나의 실루엣 사이로 바다는 점점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새벽은 늘 나를 외롭게 하면서도 가장 편안한 시간을 가져다준다. 창문 가까이 다가가 손차양을 하고 바다에 비치는 작은 불빛들을 찾아보았다. 왼쪽 저 멀리엔 배 몇 척이 외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부 아저씨들도 외로우시겠다. 늘 하는 습관으로 머리를 대충 말리고 침대에 누워 낮에 일층에서 가져온 소설책을 펼쳤다. 옆에는 낮에 산 지렁이 젤리와 귤칩을 놓고 한 글자 한 글자 고요히 책을 씹었다.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땐 늘 하는 패턴으로 눈으로 유심히 외우고 은유법이 나오는 구절에는 은밀하게 머릿속으로 기억하려고 했다. 생각보다 책이 재미있어서 시간 간 줄 모르고 읽다가 또 늦게 자면 오늘처럼 멀미할게 뻔하므로 내일을 위해 불을 껐다. 자기 전 SNS를 훑어보고 오늘은 진짜 일찍 자야해,를 외치며 과감히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우리 집이 아닌 낯선 공간. 차가운 이불. 순간 불안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좋은 생각만 하자. 평온한 생각만 하자. 나는 힐링하러 여행 온 거고 내일이면 집에 가고 팝콘이도 볼 수 있잖아.


작가의 이전글<무죄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