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렸던 북토크 당일이다. 강추위에 대비하라는 재난문자를 뒤로하고 영하 14도의 매서운 칼바람을 해치며 무사히 책방에 도착했다. 높은 천장까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도서들은 여전히 나를 편안하게 반겨주었다. 미리 한 시간 전부터 일찍 도착한 터라 오랜만에 주문하는 연유 라테를 기다리며 이층 좌석으로 올라갔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은 잠깐 넋 녹고 있던 순간을 순식간에 지나가게 했다. 어느새 북토크 시간이 다가왔다. 편안한 인상을 가진 문요한 작가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자신의 군대 시절 일화를 시작으로 북토크를 열어주었다. 당시 매우 돈독하게 지냈던 친구가 군대에서 의문사를 당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매우 슬퍼하는 가족, 친구들에 비해 자신은 되려 덤덤하고 눈물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 자신도 슬픈건 매한가지인데 냉철한 자신이 마치 괴물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로 인해 대학을 휴학할 정도로 힘들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심리발달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이 정신과 의사가 되는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정신과 의사를 안했다면 어떠한 일을 했을지 상상이 잘 안 갈 정도라는 말을 덧붙였다.
저자 문요한은 도입부터 토크를 마무리할 때까지 '핵심감정'이라는 단어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우리는 유년 시절 부모님의 양육방식에 따라, 어떠한 학창 시절을 보냈느냐에 따라, 어떠한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자신의 방어기제, 핵심감정, 무의식 등이 결정된다. 부정적인 경험의 심리 도식이 생기면 그로 인한 하나의 핵심감정이 딱딱하게 고착된다. 여기서 핵심감정은 분노, 불안, 무기력, 회피 등이 있을 수 있겠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것은 성인 시절에 겪는 트라우마나 경험은 유년 시절에 겪는 경험보다 더 유연하고 방안들이 있는 반면 유년 시절에 겪는 경험이나 트라우마는 유연하지 못하기에 대체로 무의식으로 형성돼 나의 성격, 상처, 결핍 등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자기개발을 매우 열심히 하고 좋은 성과로 인해 주변에서도 극찬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깊은 무의식에는 일 중독, 자기 착취, 회피 성향 등의 자신도 모르는 모습이 숨어있는 것이다. 집안일 중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는 타인을 절대적으로 우상화한다거나 남 탓을 하여 자신을 투사하는 등 다양한 방어기제도 있을 것이다. 분노 또한 한 가지의 분노만 있는 것이 아닌 무시당하는 느낌, 복수심, 적대감, 질투심 등이 있다. 이처럼 아동기에 겪은 무의식에 억압된 자아, 즉 ‘핵심감정’은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삶을 결정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에 겪은 결핍, 상처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여기서 문요한 작가는 자기 연민, 자기 칭찬, 자기관찰이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언급했다. 건강한 어른 자아인 내가 어린 시절 상처받은 연약한 자아를 어루만져 주고 보듬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단계를 ‘심상화 과정’이라고 하는데 힘든 점은 자신의 아픈 유년 시절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이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신체적 반응이 나타날 수 있고 어떤 이는 흐릿하게 다가오고 다른 이는 냄새까지 선명하게 다가올 수 있는 다양한 반응이 나타난다. 또한 그림, 춤, 작문, 작곡 등으로 자신의 마음을 더 수월하게 관찰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방안도 있다. 나는 이 심상화 과정을 글쓰기를 통하여 끊임없이 나의 상처받은 자아를 바라보았고 그로 인해 많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상처받은 자아를 직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어른 자아가 천천히 유년 시절 자아에게 다가가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시도를 하다 보면 어느덧 옆에는 든든한 건강한 어른 자아가 나를 지켜주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오늘 책방에서 구매한 것이라 대충 훑어보기만 했지 읽지는 못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부랴부랴 오늘의 내용을 더듬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일부러 책을 완독하지 않고 적은 것도 있다. 책을 베끼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의 생각으로 작문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북토크가 끝나고 사인을 받으러 문요한 작가에게 조심히 다가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 지망생입니다. 오늘 선생님의 강연이 너무 알차서 너무 재밌었어요."
작고 소심한 나의 인사가 끝나자 선생님은 지긋이 나의 눈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심리에 관심이 많아 소설의 주인공들의 인간관계를 세심하게 다루고 싶다는 소망을 덧붙였다. 문요한 선생님은 격려의 인사를 해주시며 사인을 마무리해 주셨다. 그렇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택시를 잡기 전 날씨를 확인하였다. 이번 주는 내내 영하 10도 안팎을 유지한다는 예보였다.
당신의 이야기가 과거를 반복하지 않지 않기를, 상처가 시들고 삶이 피어나는 이야기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 문요한, 감정을 마주하면 길이 보인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