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달리기를 66일차, 달려왔던 이유
어디서 처음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66일 법칙'을 좋아했다.
어떤 행동이 습관으로 몸에 자리 잡으려면 최소 66일 동안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생각을 넘어 실제 행동으로 좋은 습관을 몸에 새기는 이 기간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발전이라고 믿었기에,
나는 늘 좋은 습관을 만들고 싶을 때 66일을 목표로 삼았다.
물론 그 시도가 항상 성공한 건 아니었지만, 성공했을 때는 분명히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졌다.
내가 꼭 습관으로 만들어 내 몸에 새기고 싶었던 행동을 시작한 지 66일이 되었다.
지난 4월 22일부터 나는 매일 달리기를 시작했다.
하루에 3KM로 출발해 점차 4KM, 컨디션이 좋을 땐 5KM까지 달렸다.
중간에 걷지 않고 꾸준히 뛰는 것, 빠른 속도보다는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무리해서 페이스를 올리기보다는 매일 달릴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목표였고,
주변 풍경을 바라보거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달리는 시간을 즐겼다.
하루씩 쌓아온 시간이 어느덧 66일에 닿았다. 6월 28일, 정확히는 67일째이지만,
지난 6월 1일 하루를 뛰지 못해 그날을 빼고 셈했다.
아침, 낮, 저녁, 밤을 구분하지 않고 내 몸이 달릴 준비가 되었을 때 뛰었다.
비 오는 날이면 비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을 찾거나, 다리 아래 산책로처럼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때로는 비를 맞으며 달리기도 했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운 날도 있었으며,
한 걸음 떼기조차 버거운 날도 있었다.
다행히 지난 66일 동안 크게 아프거나 힘들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은 없었다.
결국 이 꾸준한 건강 덕분에 오늘의 기록을 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달리기 자체를 좋아하게 된 건 꽤 오래전이다. 정확히는 2년 전, 2023년 여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걷는 것부터 시작해 3분 걷고 1분 뛰기,3분 뛰고 1분 걷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쉬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그 거리는 짧을 땐 1KM도 안 됐지만 점차 늘어나며 어느 날은 12KM까지 쉬지 않고 달리기도 했다.
다만 규칙적이지 않았다. 매일 뛰는 것도 아니었고, 마음이 내킬 때만 달렸다.
그 간격이 일주일일 때도 있었고, 한 달 넘게 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랬던 내가 이런 불규칙한 패턴을 바꿔 꾸준한 습관으로 만들기로 다짐한 건 지난 2월이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지겹도록 말해온 경험이자, 그만큼 내게는 미칠 듯이 소중했던
한 유치원에서 학생 교사로 2년 넘게 근로했던 시간의 마지막 달이었다.
지난 2년간 나는 36명 정도의 아이들을 돌보고 챙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글을 모르던 아이가 편지를 쓰고, 부끄러워하던 아이가 반에서 가장 활기찬 장난꾸러기가 되고,
웃고 울고 화내고 기뻐하며 감정의 깊이를 쌓아가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졸업식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졸업식을 준비하며, 그 작고 어린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큰 감정의 파도를 일으켰다.
평생을 이 일을 해온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울 정도로, 나는 그 졸업식이 자랑스럽고 감격스럽고 뿌듯했지만
내 마음 한편은 텅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역할은 졸업 때까지 아이들을 지켜주는 것이었고,
졸업식까지 함께했다는 건 그 역할을 다한 것이지만,
아이들과 헤어지는 순간마다 느꼈던 마음속의 공허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감정의 기복은 심해졌다. 퇴근길에, 밥을 먹으며, 집에서 쉬다가도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평소에도 기복이 있지만, 이렇게 심한건 처음이었다.
그런 모습을 아이들에게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 나는 매 순간 마음을 다잡았다.
그랬던 어느 날, 아이들과 점심을 먹으며 졸업 선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이들은 부모님, 담임선생님, 그리고 내게도 작은 선물을 주고 싶다며 귀엽고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때 한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순수한 마음으로 물었다.
"선생님은 우리한테 줄 선물 없어요?"
사실 나도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긴 시간 함께해왔고 헤어짐이 너무 아쉬웠기에, 작은 선물 하나라도 꼭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유치원 외부의 물건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 아쉬움과 미안함을 늘 안고 있었던 내게 아이의 질문은 내 마음 가장 깊숙한 곳까지 찔러버렸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이들에게 못 해줘서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고,
그 미안함을 아이들이 느낀 건지, 아이들이 내게 괜찮다며 계속 유치원에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미안하고 또 아쉬웠다.
지난 시간 나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고, 좋은 기억도 너무나 많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미안했던 순간들뿐이었다.
아이가 아픈 걸 눈치채지 못했던 날, 아이와의 작은 약속을 잊어버렸던 날, 내 실수로 아이를 울게 했던 순간좋았던 기억은 점점 흐릿해지고, 내가 더 잘해주지 못한 순간들만 선명히 떠올랐다.
부모님이 왜 늘 우리에게 더 못 해준 것을 미안해하는지, 그 이유를 내가 직접 느껴보니 알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은 더 공허해졌고, 감정은 더 흔들렸다. 아이들 앞에서는 끝까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졸업식이 끝난 후 내가 한없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어느 날, 나는 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이들이 좋아해 준 내 모습이 무너져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나는 무언가를 해내야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의미 있고, 나도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나는 내가 아이들에게 그토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내 몸과 마음에 새겨넣기로 했다.
그 사랑을 지켜내고, 내가 받은 사랑의 의미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리고 먼 훗날 내가 큰 축복을 받아 아이들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들이 좋아했던 모습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미래에 아이들은 나를 못알아보겠지만 나는 알아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의심없이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체력’이라고 생각했다.
유치원의 공식 출근 시간은 오전 9시였지만, 나는 대부분의 날 8시 10분에 출근했다.
교무실 불도 꺼져 있고 당직 선생님만 있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늘 몇 명의 아이들이 이미 등원해 있었다.
비어있고 고요한 유치원 교실에서 조용히 놀고 있는 그 아이들이 눈에 밟혀,
나는 자연스럽게 일찍 출근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곤 했다.
그리고 하나둘 아이들이 등원할 때마다 가방 정리를 도와주며 아이들을 맞이했다.
그때 아이들은 늘 재잘거리며 아침에 먹은 음식, 어제 있었던 일, 오늘 하원하면 갈 곳에 대해 말해줬다.
나는 그 시간, 한 아이 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았다.
선생님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늘 신기해했고, 특히 내 체력이 좋다며 칭찬해주셨다.
아이들을 돌보는 데 체력은 정말 중요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도,
매일 반복되는 칭얼거림과 재잘거림을 온전히 들어주는 것도,
언제나 같은 태도를 유지하며 차분함과 다정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체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체력이 있었기에 다정할 수 있었고, 다정했기에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으며,
돌볼 수 있었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좋은 체력을 내 몸에 습관으로 자리 잡게 한다면, 내가 받아온 그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체력을 내게 새겨보기로 다짐했다.
불규칙하게 하던 러닝을 꾸준히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살아오며 많이 느꼈지만, 나는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원동력을 많이 느낀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그 프로젝트에 느끼는 애정도에 따라 결과물이 상이했고
졸업 프로젝트를 아이들과 관련된 주제를 다뤘던 것도
사랑하는 이들을 다루는 프로젝트라면, 힘들더라도 홀로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지난 66일 동안 나는 총 254KM 정도를 달렸다.
하루하루 쌓아올린 이 꾸준함은 내 몸에 체력을 새겨 넣기에 충분했다.
일상에서도 체력이 좋아졌다는 것을 자주 실감할 수 있었다.
살도 많이 빠졌고, 거울 속 내 모습, 이른바 ‘눈바디’라고 부르는 변화도 확연히 좋아졌다.
처음에는 벅차기만 하던 러닝이 이제는 점점 자연스러워졌고,
숨이 차오르는 순간도 회복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깊이 느낀 변화는 심리적인 안정감이었다.
단순히 매일 건강한 습관을 하나씩 채운다는 성취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내 감정 상태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나는 평소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라 스스로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고,
언제나 감정이 출렁이지 않도록 애써 왔었다.
그런데 러닝을 습관으로 만든 이후로는 그런 기복 자체가 완만해졌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조금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회복되는 시간도 이전보다 훨씬 짧아졌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지금 내가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점점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들떠 있든, 우울하든, 짜증이 나 있든, 그 감정이 어떤 종류든,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언제나 감정은 고요해졌다.
러닝이 나의 감정을 리셋시켜주는 버튼처럼 느껴졌고,
나는 스스로 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을 매일 체감했다.
기분이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만, 내가 ‘의지로’ 감정을 초기화할 수 있다는 경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위안이자 힘이 되었다.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가, 이 66일 동안 내 삶에 천천히, 깊게 스며들고 있었다.
지난 6월 27일, 오랜만에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러 갔다.
그곳엔 여전히 내가 기억하던 풍경이 있었고,
가장 작고 여렸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느덧 최고학년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들은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셨고, 아이들도 여전히 나를 잘 따라주었다. 나도 반가웠고 즐거웠다.
그런데 마음 한편은 어딘가 어색했다.
이젠 내 이름이 적힌 명찰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 자리는 새로운 학생 선생님들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었다.
예전의 내 자리, 내가 지키던 자리, 이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방학부터는 내가 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
처음엔 말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고민도 했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내가 없는 방학이 처음이었기에 꼭 말해주고 싶었다.
여전히 나는, 끝까지 나의 몫이었던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비록 이제는 시간이 흘러, 내가 그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제는 내가 찾아가야 할 나의 자리로 가야 한다.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마음에 잘 담아두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다시 찾아가자.
내가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을 내 몸과 마음에 새겨 넣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실패도 있을 것이고 좌절도,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자.
나를 사랑해줬던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
러닝을 계속할지는 요즘 고민이 많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무릎과 허리, 발목의 통증이 심해졌고, 최근엔 가슴 통증도 느껴졌다.
어쩌면 내 몸이 지금의 페이스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동안의 시간을 생각하면 괜히 멈추기 아쉬워서 계속 달릴지도 모르지만, 고민해볼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