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주의자 앨리스 Jul 27. 2023

미쳤었나봐

8년의 수도생활

꿈을 꿨다. 집이였고 어머니가 계셨다. 

나는 분홍 체크 무늬 잠옷을 입었고 막 잠에서 깨어난 참이다. 늦잠이었는지 커튼 사이로 노란 햇빛이 방에 들이치고 있었다. 내 방에서 잠이 깼다는 데 놀라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서 어머니가 채소를 다듬고 계셨다.

"엄마, 나 미쳤었나봐. 꿈에 수녀원에 들어갔어."

그리고 잠에서 깨었다. 


벽의 회색 페인트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직 기상 음악이 울리기 전이었다. 기상 음악이 울리면 몸을 일으켜 랩을 하듯 빠른 속도로 기상 기도를 하고 소리없이 민첩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수련을 받는 동기들이 많고 세면대와 화장실은 수가 적다. 엉키지 않고 무사히 볼일을 마치려면 눈치 싸움이 일어난다. 말없이 그리고 몸짓이나 눈짓을 나누지 않고도 먼저 씻을 사람과 먼저 수도복을 갖춰 입을 사람으로 나눠야 한다. 그래야 대침묵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원만하게 수도복장을 갖추고 시간에 늦지 않게 묵장 장소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기상 음악만 스피커를 통해 울릴 뿐 그 외는 어떤 소리도 용납되지 않는 순간에 머리 속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복도에 나온 동기 수녀는 4명, 그 중에 화장실은 2명이 들어갔다. 세면대 수도꼭지는 4개이니 두 자리가 아직 남았다. 화장실을 포기하고 세면실로 들어선다. 아차차 이미 세면대를 차지한 2명이 있었다. 다시 화장실로 향해야 하나, 남아서 기다릴까?

이 소리없는 아우성을 몇 번이나 견뎌낼 수 있을까? 여유로운 아침 티타임은 이제 나와는 인연이 없다. 아니 여유라는 단어와의 이별이다. 기상 후에는 이미 짜여진 일정이 있다. 일정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침대 안에 누워있다. 그 일정 속에 했야 하는 일을 놓칠까, 실수하지 않을까 신경이 곤두서고 편치 않다. 

그런 시절을 8년을 보내고 나서야 이제 그만하자고 수녀원을 나왔다.

그 뒤로 10년이 흘렸다. 그동안 수녀로 산 시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거나 이해하려 했던 적이 없었는데 허공에 흩어져 사라지기를 바랐던 마음 뿐이었는데. 그 때 일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희망을 잃은 나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