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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Sep 23. 2023

14개월 만에 떠나는 맑눈광 신입사원에게

앞으로 열심히 배우겠다던 그녀의 퇴사 통보

작년 7월이었다. '앞으로 열심히 배우겠습니다.'라는 포스트잇이 붙여진 초콜릿을 건네주던 맑눈광 MZ 신입사원 그녀. 그녀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렸던 후로 14개월의 시간이 흐른 오늘, 드디어 그녀가 사표를 던졌다. 앞으로 열심히 배우겠다며 전의를 불태우던 그녀는 이 조직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뜻깊은 성취를  이루며 좋은 관계를 이어갈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정확히 14개월이 되던 오늘, 그녀는 잘 퇴사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게 되었다. 마치 잘 퇴사하는 것도 열심히 배우겠다는 의지가 가득하게 말이다.


공시 준비를 위해 떠나겠다는 그녀는 물론 지속적으로 공시를 준비했다. 기업이라는 조직보다는 공직으로 안정된 삶을 보장받고 싶기도 했고 명확한 업무 R&R을 통해 조금은 예측된 삶의 바운더리를 영위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으리라. 또한 그녀가 꿈꾸던 사회생활의 루틴과는 다른 하루하루의 무거운 공기를 견디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지역 기업으로는 연봉이 높은 편이라 달콤한 월급의 유혹에 안주했을 법도 한데 그녀에겐 그게 다가 아닐 수도 있었다. 자기 주도적인 삶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나는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팀장이 아닌 옆 부서 실장으로서 바라본 이유는 이렇다.


1.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직군은 업무에 있어 조금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는 R&R이지만 스팟으로 내려오는 뜬금없는 지시들이 많았다. 그 지시들은 늘 촌각을 다투며 조조익선을 표방하며 그녀를 압박했다. 이 다양한 지시들은 그녀의 직군에 커리어를 쌓아주는 오더가 아니라 '아무나' 할 수 있는 허드레 일에 불과할 때가 많았다. 그게 원래 그녀 직군의 일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2. 자존감이 무너졌다.

킬링 포인트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어떤 일이든 보람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물론 이런 일 역시 그녀의 업무 바운더리에 있는 일이지만 그 일을 할수록 그녀는 깊은 모멸감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런 일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3. 관계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

어떤 조직이든 마찬가지로 그녀를 둘러싼 모든 환경의 관계 컨디션을 '상'으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임원, 팀장, 팀원, 타 부서, 그 외에 업무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가까운 곳의 사람들까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고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들이 양식이 되어 그녀는 공무원이라는 뚜렷한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1년이라는 기간은 꼭 채우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켰고 퇴사가 다가오는 시점까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업무력을 발휘 중이다. 곧 떠날 회사, 대충 하루하루를 루팡으로 지내기보다 첫 입사했을 때의 그 열의 그대로 하루하루 치열하게 함께 전쟁을 치러주고 있는 그녀가 대견하고 고맙다.


퇴사가 잦은 시대, 취업도 어려운 시대, 그래도 이만한 회사가 없다며 그녀를 잡고 또 잡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녀를 지지하며 응원해 줬다. 공무원을 준비하되 어려워 다시 기업으로 입사를 하더라도 돈의 가치보다 일의 가치에 무게를 두었으면 한다고 했다. 맑눈광을 끝까지 유지해 그 조직에서 행복으로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한다. 부러운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 말이다.

그녀를 보내는 송별회, 바쁜 업무로 회식을 하지 못했던 지난 1년을 반성했다. 그녀가 가고 싶은 곳에서 함께 한 마지막 저녁식사. 그녀의 끊임없는 물개박수가 고마운 밤이었다. 그녀의 부재가 한동안 많이 아쉽고 힘들겠지만 그녀가 행복하다면 더 큰 응원을 보낼 자신이 생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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