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듯 자연스런 대화
고추밭에서 혼자 고추를 따면서 있는 듯 없는 듯 고랑 사이에 숨어 앉습니다. 고추밭은 동네 회관을 곁으로 비켜서는 자리. 버스나 사람 할 것 없이 왕래가 잦은 터입니다.
가만히 쪼그려 앉아서 고추와 둘, 오롯합니다.
도로를 두 아주머니가 스치듯 지납니다. 내려오는 아주머니가 먼저 한마디 건넵니다.
"어디 가는 겨?"
그럼 올라가는 아주머니는 바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답합니다.
"잉~"
그러고는 두 사람은 흘러가는 물처럼 둘이서 어슷하게 비켜서서 자기 갈 길을 가버립니다.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화는 열린 듯 닫힌 듯하여도.
두 사람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들으면서 혼자 피식 웃음을 지어 봅니다.
어디를 가느냐 묻는 사람의 뜻은 분명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대꾸 아닌 대꾸를 하는 충청도식 대화의 말본색이 참으로 제멋대로 멋있습니다. 물어본 사람은 답을 듣지 못하였으나 답을 듣을 듯도 합니다.
어디를 가냐면 어데 간다로 끝나는 식의 판에 박힌 말의 흐름은 충청도 식이 아닙니다. 묻는 말에 딱 맞춘 응답을 하는 것은 교과서, 학교 시험문제에나 맞는 겁니다.
실제로 충청도에 살다 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에둘러 말하길 즐기거든요. 은근히 제 말만 하는 귀머거리 대화법이 토박이 충청도 스타일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런 판에 박힌 말은 절대 쓰지 않으십니다.
어쩌다 차려입고 외출을 하려다 마주친 동네 어르신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인사를 먼저 하십니다.
"아이구, 어디가는 겨?"
다짜고짜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 것이 인사말입니다. 참으로 무례할 수 있는 물음일 수 있습니다. 두서없이 대체 어디를 가는지 왜 묻는지 순간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그 물음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든지 등의 구체적인 답을 건네야 하는지 망설이기도 하였답니다. 동네 어르신들의 말의 세계를 조금씩 배워갑니다.
실은 묻는 사람도 그가 어디에 가는 자기가 궁금한 게 절대 아니거든요. 그냥 실없이 인사말 대신 속없이 건네는 말인 겁니다. 거기에 대고 무엇을 하러 나간다는 식으로 대꾸를 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답을 내놓은 셈입니다.
마치 "안녕하세요?" 가벼운 인사말에 정색을 하고 엉뚱한 답을 물색없이 하게 되듯이 말입니다. 하여 요즘은 어르신들의 물음에 조금 편안한 대답을 합니다.
"아이구, 어디 갔다와?"
하면 편안하게 응답을 드립니다.
"아, 예. 나갔다 와요."
알맹이 하나 없는 대답이 가벼운 인사말에는 제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묻는 사람도 답을 건넨 사람도 그저 인사말을 주고받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것으로 가볍고 가벼워 가장 어울리는 말의 흐름입니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 어르신을 만나게 되면 그때도 '안녕하세요' 그런 식의 말은 하지 않습니다.
주로 이런 말로 인사를 나눕니다.
"밭에 나오셨네요~"
아니면 "일찍 나오셨네요~"
누구나 아는 말은 멀어지고 이 동네에 어울리는 인사말을 다시 배웁니다.
인사를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겠냐마는 좁은 동네일 수록 인사하는 습관을 꼭 필요하거든요.
오히려 아파트에서 살던 시절에는 이웃과 마주칠 시간이 거의 없었던 듯합니다. 도시에서는 서로 생활시간이 다르니, 언제 들어오고 나가는지 다른 탓도 큽니다.
그에 반해 손바닥만 한 시골에서는 새벽이면 논과 밭 사이에서 어르신들을 만나기 일쑤, 자연스레 얼굴을 익히며 살아갑니다. 지역사회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조그마한 곳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