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 다잉, 웰웰

자작시를 올리며

by 심풀


팔순 엄마가 감기로 앓아눕기 전날 이야기입니다. 동네 이장님의 마을방송이 아침밥을 미처 다 차리기도 전에 느닷없이 쩌렁쩌렁 울립니다.

"박사님이 마을 회관에 오셔서 행복한 노년을 위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동네 어르신 여러분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동네 회관에 날마다 모이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할머니들입니다. 마을에 할아버지는 몇 분 계시지만, 모두 환자신세 회관 나들이가 어려운 상태인지라. 각자 바깥출입은 꿈일 뿐.

어쩌다 정 많은 동네 이웃들은 동네에 얼굴을 뵈지 않는 아버지 안부를 묻고자 예고 없이 방문하시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아버지가 귀가 어둡고 소통이 안 되어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날마다 통화를 하는 엄마의 동갑내기 친구 분한테서 전화가 옵니다. 점심을 잡수시고 동네 회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는 사이. 전화로 남의 눈과 귀를 피해서 나눠야 할 이야기가 따로 있다면서요.

"아이구, 그런가보네. 어차피 화투나 치고 노는디. 강연이고 자시고 들어봐야지유, 친구는 워떠?"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오는 줄 이미 압니다. 부엌일을 하다 보면 귀를 닫을 수 없어서 들려오는 소리에 난처한 경우가 많습니다. 고무장갑을 낀 채 엄마가 통화하는 안방 문을 슬그머니 닫아놓습니다. 그 정도만 해놓아도 나름 고요해 설거지하는 손길이 편안합니다.

저녁 무렵, 엄마는 서너 장짜리 A4 서류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십니다. 어떤 강연인지 궁금해 한 장 한 장 읽어봅니다.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 먹것어. 영어인지 한국말인지, 웰 뭐라고 하던디~"

강연 제목 아래, '웰빙 웰에이징 웰다잉' 부제목이 영어를 그대를 써놓은 우리말 아닌듯한 우리말.

도시에서 온 박사님은 진짜배기 시골 할머니들의 눈높이를 전혀 모르는 눈치이니 어쩌랴. 우리말 중 어려운 용어조차도 쉽게 풀어서 할머니들에게 전해야 하거늘, 오늘의 강연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혼자 상상해 봅니다. 절뚝대는 박사님의 강의 모습이 눈앞에 그대로 보일듯합니다. 갑갑한 마음이 들어도.



웰 다잉 , 웰 웰


팔순 엄마가 동네회관에서

박사님 강연을 듣습니다

웰 다잉, 웰 웰

동네친구 할머니 짝지어

웰다잉, 웰 웰

못 알아듣는 코쟁이 말

너도나도 까막눈

죽어도 잘 죽자 공부합니다

연명치료거부서약서

호스피스 병동

어려운 말은 몰라도

콧줄은 안 낀다

그 말만 외워둡니다

웰 다잉, 웰 웰


엄마와 다른 할머니들의 마음을 자작시에 담습니다. 알아듣지 못하지만 너도 나도 잘 죽자고 외치고 싶을 테니. 아직 팔팔 뛰는 심장과 셀레는 감정이 살아있을 때, 평생 하지 않던 공부 이른바 가장 삶의 막바지 공부를 해두는 겁니다. 엄마는 식물인간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십니다.

"거 참, 사람 앞일은 장담할 수 없지만도 나는 콧줄끼고 누워서는 살고픈 생각이 읎으니께."

부모님 두 분 모두, 이미 연명치료 거부 서약서를 작성해놓은 지 오래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뇌졸중 발병이 계기가 된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