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 뼘 수필 Oct 05. 2024

꼬리곰탕

맛에 담긴 시간의 기억

어떤 집이었는지 잘 생각이 안 난다.

그날 밤, 방안의 풍경만 떠오른다.


두터운 솜이불이 보인다.

우리는 이불 밑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막냇동생이자 유일한 아들이었던 갓난쟁이만 따로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밖에서 놀다 들어왔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너네 엄마, 아기 낳았어.

그 말을 들은 어린 소녀가 신발을 벗다가 약간 멈칫하고 있는 그림이 떠오른다.

그러고 얼마간의 날들이 지나갔다.




잠결에 두런두런 소리가 났다.

애들은 다 자는가?

아버지가 엄마에게 묻는 소리. 

엄마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서 우리가 자는지 확인하는 바람에 나는 잠을 깨고 말았다.

자요!!

확신에 찬 엄마 목소리에 나는 인기척을 내지 못했다.


그때부터 소리가 날까 봐 침도 넘기기 어려웠고 숨소리도 커지는 것 같아 힘들었다.

갑자기 오줌도 마려웠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나려는 순간, 엄마와 아버지의 정답고도 은밀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흐흐흐~~ 호호~~


그만 불고 어여 먹어. 이러다 애들 깨겄네.

아이고 참, 뜨거워서 그러지요.


숨죽이는 웃음소리와 함께 세상 다시없는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꼬리가 정말 잘 삶겼네. 국물도 진하고. 

애들도 먹여야 하는데.

이게 얼마나 된다고 애들까지 먹여. 젖이 잘 나오려면 이런 걸 먹어둬야 혀.


지금은 안 그러지만 천성적으로 고기를 받치는 나는 그 고깃국 냄새에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정말 너무 먹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일어날 수 없었다. 

어리지만 맏이여서 그랬는지 예닐곱 살의 나는 

아기를 먹일 젖이 잘 나오려면 엄마의 꼬리곰탕을 탐하면 안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눈물 나게 먹고 싶었던 꼬리곰탕.


나이 들면서 곰국을 잘 안 해 먹지만 젊을 때 나의 최애 음식이 곰국인 것은 그때 그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곰국이라면 대동강 물만큼 많이 먹을 자신이 있다. 

한통씩 사 먹는 것은 성에 안 차서 들통에다 하나 가득 넣고 온종일 우려내야 직성이 풀린다. 

그 덕에 우리 애들도 곰국을 잘 먹는다.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낳고야 비로소 할머니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는 엄마.

엄마의 고된 시집살이를 나도 기억한다.

엄마와 아버지는 사이가 안 좋았다.

그러나 그날 밤, 

어느 집의 방 하나를 가득 채웠던 아버지와 엄마의 웃음 

그날의 곰탕 냄새는 정겹고 구수했고 그 순간 진심이었으리라.


힘들고 서글픈 삶이라 해도 완전한 깜깜이는 없다.

아주 작은 기억의 한 조각으로도 차가운 삶을 조금은 따뜻하게 덥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기일이 다가온다.

 어린 딸들을 재워놓고 몰래 엄마에게만 꼬리곰탕을 먹인 아버지를 잠시 그리워한다.

작가의 이전글 쌀과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