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에 담긴 시간의 기억
소면을 삶아 찬물에 헹군다.
빠꼼이에 서리서리 담는다.
서리서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국수, 새끼, 실 따위가 헝클어지지 않도록
둥그렇게 포개어 감아놓은 모양을 뜻한다.
뜻보다는 말맛이 좋다.
이 말이 좋아서 잔치국수를 해먹는가, 그런 생각도 한다.
물이 끓어오른다.
국수를 한 줌 잡아 빙 둘러 넣는다.
가는 국수 가닥이 부챗살처럼 빙그르르 퍼진다.
그 모양을 보면 능숙한 주부의 증명인 양 기분이 좋다.
굵고 긴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준 뒤 또 국수 가닥을 넣는다.
잔치국수를 좋아하는 남편 산더미만큼 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물이 끓어넘치기 때문에 잘 지켜봐야 한다.
알고 있는데 끓어넘치기 일쑤이다.
가만히 지켜보는 게 지겨워 한눈을 팔기 때문이다.
국수사리의 물기가 빠질 동안 다시국물을 낸다.
멸치 한 줌과 양파 속껍질 말린 것
그리고 다시마 한 조각을 넣어 만든다.
애호박과 양파는 채친다.
다시 물이 어느 정도 우러나면 그 물에 넣어 같이 끓인다.
볶는 것보다 다시물에 넣어 익히는 걸 더 좋아한다.
계란지단도 부친다.
이 나이쯤이면 꾀도 나고 그럭저럭해도 그까이 지단쯤이야.
프라이팬에 계란 두 개를 탁 깨뜨려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면 얇은 지단이 된다.
잘 익은 김치도 송송 썰어놓는다.
오이도 채 썰어 무치거나 무생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이다.
이런 것들은 정녕 부수적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양파 양념장이다.
정말 맛있다.
보통 생각하는 양념장에 양파를 굵게 다져 잔뜩 넣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양파에서 물이 나와
간장과 어우러져 진한 맛을 낸다.
이것 하나면 사실상 잔치국수는 끝난다.
셋째 형님한테 배운 양념장이다.
이 형님은 나와 동갑이다.
같은 해 4월과 5월에 결혼하여 우리는 동서지간이 됐다.
막내인 남편이 형들을 둘이나 제치고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의혹을 품기도 했다.
사실 연애 기간도 오죽 길었나.
그러나 아이는 형님이 먼저 가졌다.
어머님은 내가 형님 대접하느라
아이를 뒤에 가졌다고 칭찬(?)을 하셨다.
나는 일 년이 돼가도록 애가 안 생겨서 속이 탔는데.
우리는 친구처럼 잘 지냈다.
셋째 형님은 손맛이 정말 좋다.
뭘 해도 맛있다. 아무따나 해도 맛있다.
특히 잔치국수와 팥죽은 정말 끝내준다.
아버님도 형님이 해드리는 잔치국수를 좋아하셨다.
그냥 양파 양념장에 비벼 먹어도 맛있다.
다시물을 잔뜩 부어 잘 익은 깍두기랑 먹어도 맛있다.
말 그대로 잔치 때 먹는 음식이다.
긴 면발이 장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신랑신부의 인연이 오래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겼다.
예전에는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요즘은 저렴하고 맛있어서 대접받는다.
젊을 때는 잘 안 먹었다.
지금은 잔치국수를 좋아한다.
사 먹어도 맛있고 내가 해먹어도 맛있다.
서리서리 담긴 사리가 술술 넘어간다.
언제 국수 먹여줄 거야?
언제 결혼할 거냐는 말을 그렇게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먹는다.
으슬으슬할 때 뜨거운 국물에 말아 먹는다.
더울 때 찬 국물에 말아 후루룩 먹는다.
남편이 산더미만큼 많이 담아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