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가끔씩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동료들과의 관계, 해결되지 않는 문제, 과중한 업무 등 갖가지 일들이 나를 괴롭게 하기 시작하면, 평소엔 금방 처리할 수 있는 문제들도 버벅거리기 시작한다. 오버클럭. 과열된 머리를 차게 식혀줘야 한다.
우선 주변을 정리한다. 서랍도 좋고, 정리할 것이 없다면 하다못해 컴퓨터 바탕화면이라도 정리한다.
필요없는 문서들은 지우고, 바탕화면을 어질러놓고 있던 바로가기들도 한군데 모아놓는다. 색인에 맞춰 자료를 한군데씩 모아도 본다. 마지막으로 생산된 색인들의 연도에 따라 연도별로 묶는다. 폴더가 10개도 되지 않는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마지막으로 냉침한 고소한 메밀차 한 잔으로 다시 일을 시작한다.
육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봄이'는 사랑스럽지만 매일 매순간이 사랑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애정의 반댓말은 증오라고 누군가 얘기했는데, 사랑하는만큼 가끔 더 화가 나는 순간들이 있다.
엊그제, 7살 망나니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아빠가 편한하다고 해도 그렇지, 화가 난다고 내 뺨을 때린것이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 대처를 못하자, '겨울이'가 대신 대노를 했다. 가족에게 폭력은 아주 나쁜 행동이라고 단호하게 훈육을 하는데, 훈육받는 와중에도 '봄이'는 나만 흘겨본다. 그러다 '겨울이'가 취침 준비를 하러 방에 들어가자 '봄이'는 몰래 내 팔을 콱하고 깨문다.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아 단호하게 '안돼. 하지마!'라고 이야기했지만 '봄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너무 화가 나 손발이 떨린다.
복잡한 머리 탓에 '봄이'를 재우고 해야할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또 '청소'를 한다.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화가 풀릴 때까지 걷는다고 하는데, 나도 분노가 걷힐 때까지 청소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늦은 밤까지 걸레를 들고 여기 저기 닦아본다. 야밤 중에 소파도 분리해서 먼지도 닦아내고, 책장에 꽂힌 책들도 각을 맞춰 정리한다. 분노가 잠식했던 내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마음이 진정되자, '겨울이'기 '봄이'를 재우고 나온다. 후끈후끈한 여름의 밤, 고소한 메밀차 대신 차가운 맥주를 둘이서 기울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