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인에서 PM으로 성장하기
올 한 해는 수능 이후 오랜만에 가진 인생의 기점이었다.
먼저 커리어의 전환점을 가졌다. 일년동안 애정을 가지고 다니던 PR 회사에서 나온 바로 다음날부터 멋쟁이 사자처럼 스타트업스쿨에 들어가 기획자로서의 첫 걸음을 땠다. 그리고 끝나자마자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에 영감을 받아 3달 간 10가지 가설검증을 하는 범블비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현재 내가 잘하는 마케팅과 IT 기술을 접목한 영역인 검색엔진최적화(SEO)라는 아이템으로 계속해서 신규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커리어 뿐 아니라, 개발 공부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인생의 가치관도 바뀌기 시작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한 해 였기에 12월 한 달 동안 한 해에 있었던 일들을 시리즈로 회고해보고자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작년 일기와 올해의 일기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먼저 PR회사에 다닐 때 내 일기장에는 언제나 인생에 대한 물음표 뿐이었다. 이게 맞나? 일이 싫거나 못하겠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맞는 것 같진 않았다. 몇 년간 일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대체로 대답은 이랬다. ‘다 그렇게 다녀, 이게 맞나 싶다가도 월급 받고 그걸로 맛있는 거 사먹으면 이게 맞나보다라고 생각하면서. 나쁘지 않은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해’. 그래, 못하거나 진짜 싫은 건 아니니까. 나는 그렇게 나를 위로하며 일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러면서 다니던 회사도 점차 성장했다. 대표님 두 분과 나 해서 처음 세명이 시작한 PR 회사였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뽑았고 매출도 크게 성장을 했다. 처음에는 정말 가족같았고, 블로그를 만들거나 내부 시스템을 만드는 것 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사람이 많아지고 체계가 생기면서 이제는 무슨 일을 시작할 때 눈치를 봐야했고 실수도 잦아지게 되었다. 나또한 잦은 실수로 의기소침해지면서 전처럼 일도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팀내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등이 버티기 힘들 정도로 커지기 시작하면서 매일매일 울면서 회사를 갔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어짜피 울며불며 회사 다닐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기획일을 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슨 용기인지 모르겠는데 단숨에 박차고 나와버렸다. 이직을 준비한것도 아니었고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전공을 살려서 전문성과 커리어를 기를 수 있었던 이 시기에 다 놓고 나와버렸다. 기획이 너무 하고 싶어서.
기획이 하고 싶은 이유는 단순했다. 생각만 했던게 실제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써보고 좋든 싫든 반응을 주는게 재밌었다. 그리고 팀을 만들어서 같이 지지고 볶는 것도 행복했고 함께 결과물을 낳는 것이 좋았다. 그동안 광고홍보분야에서 일하면서 ‘말만 하는 사람’들에 크게 지쳤었는데, 말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새로웠다.
지금 한 해를 돌아보면 일이 너무 즐거웠고, 밤을 새도 좋았다. 심지어 내 기획도 아니고 다른 사람 기획을 위해 돈도 안받고 밤낮없이 일하는데도 실제로 결과물이 나온 걸 보면 행복했다. 그리고 운영을 하며 결과물이 성장하는 것을 볼땐 마치 아이를 키우것 마냥 애틋했다.
거기다 새롭게 배운 코딩도 여간 재밌는게 아니었다. 개발자 만큼 디테일한 개발실력은 아니지만, 개발자와 새로운 IT 기술이 나왔을때 간단하게 써보면서 얘기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개발도 언어라는 게 배워두니 IT라는 새로운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 매일매일 좋아하는 일과 함께하니 작년의 일기와 비교해보면 올해의 일기는 항상 ‘행복했다’. (물론 모아뒀던 돈이 떨어져가는 걸 보면 불안해하긴 했다.)
나쁘지 않은 것을 찾은 것도 행운이다. 나도 PR 전문가가 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쌓아온 1년, 기자 네트워크, 월급 등등이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일도 나쁘지 않았었다. 역마살이 낀 나에게 매번 새로운 상황이 생겨 질리지 않았고, 글을 쓰는 것도 좋았다. 단지 재미가 없었고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느끼기 힘들었을 뿐.
인생에는 이보다 더 나쁜 일들이 많이 있고, 어떨땐 이 상황을 피할 수 조차 없다. 적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뜻이니 위안을 삼고 상황이 주는 안정감을 잠시 즐기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어느순간 차악의 선택이 아쉽게만 느껴진다면, 과감하게 이 선택을 포기하고 새로운 곳을 나아갈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손에 너무 많은 걸 쥐고 있으면 막상 나한테 정말 필요한게 생겼을 때 놓치 못할때가 있는 것 처럼, 놓는 순간에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건 세상에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