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by 송나영

돈을 버는 건 쉽지 않다. 신문이나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돈이 잘 벌리면 얼마나 좋을까? 오십 년을 살았지만 돈 버는 건 늘 쉽지 않았다. 그게 다 운이다. 돈이 잘 벌릴 때도 있지만 고생고생을 하면서 간신히 밥벌이나 용돈 정도 돈을 벌 때도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늘 돈이 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늘어가는 일이어서 어쩔 수 없이 돈 버는 일을 따로 구해야 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꾸준히 해온 애들 가르치는 일이 나의 밥벌이가 되어주었다. 이십 대에 취업을 해야 하는데 딱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우연히 접한 방송작가는 재미가 있을 듯했다. 하고 싶다는 마음과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은 따로국밥이다. 같이 어우러지면 정말 좋으련만 돈 따로 일 따로였다.

방송일을 해보고 싶어서 작가교육원을 다니는 동안 나는 엄마에게 돈 몇 만 원 받으면서 갖은 구박을 들었다.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너무 싫어서 결국 학원을 찾았다. 주 2회 나가는 학원을 두 개 찾아서 내 용돈벌이를 했다.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면서 작가일로 밥벌이를 하는가 싶었는데 돈벌이로는 시원찮았다. 애만 있는 대로 쓰고 건강이 무너져서야 일을 쉬었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지 않았는데 아직도 나는 애들을 가르치는 일을 놓을 수가 없다. 애들을 가르치면서 보람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의 풍선은 영 다른 데로 달아난다. 아직도 글쓰기에 미련이 남은 건지 글을 붙잡게 된다. 내 글이 처음 돈벌이가 된 건 조그마한 잡지에 글을 보내서 받은 원고료였다. 작가라는 막연한 미래가 불안했다. 카드 결제금액을 카드로 막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카드값만 늘어갔다.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자니 돈을 벌어야 하고 돈 버는 일에 몰두하면 하고 싶은 일에 소홀해진다. 이십 대와 삼십 대의 돈벌이에 대한 목마름은 줄었지만 여전히 나는 두 개의 줄타기를 하고 있다. 어쩌다 하루 종일 시간이 나서 글을 쓴다고 흐뭇해하다가도 자식 뒷바라지도 못할까 걱정을 한다.

아들은 사춘기 시절에 진로에 대해 걱정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무언가 꿈이 있는데 본인은 아무것도 정한 게 없다는 것이 불안했던 거 같다. 아들이 고민을 적어놓은 것을 우연히 읽었었다. 네가 그렇게 게임을 좋아하면 게임 관련 일을 하라고 했더니 자기는 코딩을 잘못해서 자기하고 안 맞다고 했다. 그럼 게임 기획을 하면 되지 않냐고 IT미디어과를 권했었다. 콘텐츠 기획 위주로 가르치니까 너하고 맞을 거라고 했더니 관심을 보였다. 게임 콘텐츠 개발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대입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막상 지원은 전혀 다른 신소재나 건축학과 쪽으로 한 거다.

인생은 참으로 애꿎다. 재수는 절대 하지 말자고 최저로 맞춰 넣은 식물학과에 합격을 했다. 생각지도 못한 식물학과에 입학한 아들은 2년을 투덜거렸다. 아들은 기숙학원에 있었고 저가 관심 있는 신소재와 건축학과를 제외하고는 엄마 마음대로 지원해 달라고 했었다. 피라면 질색팔색하는 아들을 동물학과로 보낼 수 없었다. 식물학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입시원서를 작성했다. 바이오 쪽이라면 먹고사는데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은 생각보다 건축학과에 진심이었다. 수능 시험을 끝내고는 건축 관련 영상만 열심히 찾아보았다. 딸기, 배추를 배우는 식물학과는 마음에 찰 리가 없었다. 2년이 넘도록 식물은 아니라면서 나한테 눈을 흘겼다. 처음 식물학과에 합격했을 때 수능 성적이 너무 아쉬워서 재수를 하자고 했더니 그건 안 하겠단다. 전과를 하라고 했더니 공부하기는 싫은지 미적거렸다. 군대를 다녀오고 2학년 2학기에 복학한 아이는 논문 쓰겠다고 자원하면서 조금씩 학교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식물은 아니랬다. 복학하면서 아이는 복수전공을 택했고 건축학과에 대한 미련을 실내공간디자인으로 대신했다.

아이는 교수에게 자기는 아직 진로를 못 정했다고 솔직하게 고민 상담을 했단다. 교수는 인턴을 해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아이는 인턴자리를 알아보고 지원을 했지만 정부가 R&D 비용을 대폭 삭감하는 바람에 연구원을 뽑는 곳이 줄었고 동물학과만 합격을 했다. 4학년이 되면서 학교 연구실의 인턴자리를 지원했다. 연구실의 형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식물에 대한 애정이 조금 는 거 같다. 연구 쪽이 너랑은 적성이 맞을 거라는 내 말에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부터 부쩍 바빠진 아들은 눈 뜨자 연구실로 달려가고 밤늦게 퇴근하곤 했다. 아들은 꼭 출퇴근이라고 한다. 지금 하는 공부도 바쁜데 실내디자인을 하기 벅차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물어봤더니 이미 복수전공은 취소했다고 한다. 아들은 자기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살아보니까 하고 싶은 일이 나한테 꼭 맞는지 그건 알 수 없었다. 헛돈을 쓰고 실패를 깨닫는다. 내 일이 아니구나 알 수 있으니 돌아보면 헛돈도 아니다. 나는 일과 돈이 따로 오는 삶을 살았지만 아들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는데 차츰 재미를 느끼고 있다. 내가 꿈꾸는 일이 돈벌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돈 안 되는 일을 벌이면서 애들 가르치는 일을 조금 덜 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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