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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Sep 11. 2024

자식이 뭔지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출근하는 길이라는 친구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있다. 내 목소리도 덩달아 울컥한다. 수시원서 접수 기간이다. 아들을 보낼 만한 대학이 마땅치 않다. 친구는 풀이 죽었다.

  친구는 마흔을 한 해 앞두고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얻었다. 부부의 피나는 싸움을 보고 자란 아들은 착했다.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걸 아이는 듣고 자랐다. 친구의 어린 아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 들었었다. 나이 든 부모의 잔소리를 듣고 흘렸다. 뒤늦게 얻은 아들을 반듯하게 키우려는 친구의 노력은 끝없는 잔소리로 이어졌다. 그 아들은 얼굴을 찡그리긴 해도 쉼 없는 엄마의 잔소리에 대답을 꼬박꼬박 했다. 착해도 너무 착하다. 아들이라 욱해서 거친 행동을 할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행동을 했다는 말도 못 들었다. 친구의 아들이 공부는 못해도 친구들과 사이도 좋고 인성이 좋다고 담임이 걱정 마시라고 했단다. 그 아이가 어려서 짧은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의 나가라는 말에 집을 나갔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마트의 시식코너를 돌아다니면서 배고픔을 달랬다고 한다.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겠다며 우리는 깔깔 댔다.  

  우리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시대에 살았다. 부모가 쫓아다니는 집은 교육에 극성인 집 말고는 별로 없었다. 부모가 아는 게 많아도 탈이다. 공부 못 하는 아이들 부모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 지방대에 가서 사고 칠까 걱정이고 공부도 안 하는데 지방대 재정에 도움을 주는 것도 마땅찮다. 자취를 시키면 행여 무슨 탈이라도 날까 걱정이라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기를 쓰고 보내려고 한다. 공부를 안 하니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재능을 성적표로만 평가한다. 학교에서 성적으로만 아이들을 가늠한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자기 자식을 공부로만 평가하는 건 그 부모도 교사와 다르지 않다. 공부를 안 하니 네가 뭘 잘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자식하고 사이가 나쁘지 않은 부모 중에도 부드럽게 충고하면서 네가 하기 힘들다고 단정 짓는 사람도 있다. 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해보라고 격려하지 않는다. 이건 폭언이다. 잎이 나기도 전에 싹을 잘라버린다. 고3이나 된 아들을 붙들고 너 혼내는 거 아니니까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얘기해 보라고 살살 달래면서 넌 수학을 못 하니 이건 안 되고, 넌 공부하기 싫어하니 이건 안 된다고 넌지시 아버지의 의견을 말한다. 아들은 말할 수가 없다. 아들이 말을 잘 못 한다고 걱정하는 부모였다. 부모가 앞질러 얘기를 하니 자식은 말을 삼키게 된다.

  수학에 좌절을 하고 아이가 공부에 손을 놓기 시작했다. 못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다른 과목도 무너졌다. 고1 때까지 열심히 노력했던 아이는 텅 빈 눈으로 마지못해 학원을 다녔다. 답답한 마음을 밤새 웹툰으로 달래고 비몽사몽 중에 하루를 보냈다. 고3이 되면서 성적은 더 떨어졌고 부모와 줄다리기를 심하게 했다. 엄마를 무시하고 부모의 말에 귀를 닫았다. 정시는 망쳤고 지방대학을 갔다. 아이와 줄다리기에 지친 엄마는 용돈을 줄였다. 아이는 알바를 쉬지 않고 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돼 집에 돌아오자마자 간에 좋다는 약부터 찾았다. 아이는 밤새 술을 마신 날이 많다고 했다. 부모의 참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한 학기를 보냈다. 아이는 학생회 일도 해보고 수업도 기웃거려 보고 알바도 열심히 하면서 자신을 탐색했다. 6개월이 지난 뒤 아이는 반수를 했다. 부모의 손에서 멀어졌던 6개월이 아이를 키웠다. 아이는 몰라보게 씩씩해졌고 스스로 자기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알바를 해서 열심히 모은 돈으로 국내로, 해외로 열심히 다녔다. 할 줄 아는 게 늘어나니 아이의 자신감은 날로 커져갔다.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들은 척도 안 하던 아이는 자신의 속얘기를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지극정성으로 학원으로 모셔다 준 큰 아이는 치대를 갔고, 공부에 관심이 전혀 없던 둘째 아이는 학교 앞에 늘 대기 중인 엄마의 관리에 따라 의대를 갔다. 공부하기 싫어했던 둘째 아이는 학교에서 말썽을 많이 일으켰다. 아이의 수발이 되어 일상을 포기하고 아들 둘만을 위해 살았던 엄마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다. 머리를 자르는 일조차도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다. 미용실에 예약을 하고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한다. 가족여행도 짐 싸는 일부터 현지에서 어떻게 할지까지 모두 엄마가 계획을 세워야만 아이들이 움직인다. 자기 손으로 무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의사협회와 정부의 힘겨루기 싸움에 의대 다니는 둘째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없으면 아들은 굶는다. 아들의 삼시세끼 수발에 외출도 안 하는 엄마는 아들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힘들어한다. 큰 형에게 좋은 차를 사줬다고 둘째는 당연히 그에 버금가는 차를 요구한다.

  나의 갱년기는 아들의 사춘기에 졌다. 웬만하면 참고 넘기던 아이가 엄마의 부당한 간섭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일 년이 넘도록 아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의 활화산 같은 분노는 학교에서 터져 나왔다. 엉뚱한 일을 벌이고 전혀 내 아이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 노심초사 불안했던 나는 아들에게 제발 평범하게 행동하면 안 되냐고 몰아붙였다. 아이의 진로에 대한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은 고려하지 않았다. 선생의 학생답게 살라는 말에 선생이 선생다워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했을 때도 속으로는 감정조절 못 하는 선생이 아들을 선도위에 보낸다고 협박을 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들만 탓했다. 네가 성적이 좋았으면 그 선생이 너를 건드렸겠냐고 했다. 속물인 엄마가 세상을 제대로 살라고 가르치지 못했다. 내 아이가 약삭빠르게 행동하기를 바랐다. 중학교 때 아들은 친구와 같이 벌을 받은 적이 있다. 한 여름에 엎드려뻗치는 벌을 받던 아이가 땀을 줄줄 흘렸고 아이는 그것을 못 본 척 지나가지 않았다. 그럼 어떡해 친구가 땀을 그렇게 흘리는데 닦아줘야지. 옳다고 생각하는 머리와 내 식구만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공존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한 거다. 자식한테 부끄러운 엄마가 되고 말았다.

  아들은 특공무술을 다녔었다. 굳이 밤 10시 30분에 하는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한 시간 수업이라 집에 오면 밤 12시였다. 숙제를 마치면 새벽 서너 시가 되기 일쑤였다. 아침이면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들을 붙들고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그 학원을 관두게 했고 나는 그 원망을 대학에 입학한 뒤에 들었다. 자기가 스트레스 해소를 거기서 했는데 엄마가 못하게 했다고 울화통을 터뜨렸다. 아들이 알아서 한다고 했고 힘들면 관뒀을 텐데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했다. 내 걱정은 아들이 날 거부하게 만들었다. 아들이 반항해 줘서,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우겨서 고맙다. 엄마한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조르지 않아 섭섭했고 군대에 가서도 어떻게 너는 전화 한 통을 안 하냐고 투덜거렸다. 아들이 날개를 달고 자유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몰랐다. 내 오만은 아들의 세상을 매만져 줘야 하는 줄로 착각한다. 나는 아직 변하지 못한 채 내 사춘기에 머물러 있다. 내 육신은 갱년기를 지나 노년기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내 정신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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