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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Sep 11. 2024

두려움

  서해 바다로 달렸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너무 좋아서 웃음이 계속 새어 나온다. 나 혼자 훌쩍 떠나본 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터져나갈 듯 노랫소리를 최대한 높이고 달렸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내 목소리가 안 들린다. 아마도 뒤에서 따라오는 차에서는 내가 들썩거리는 게 보일 거다. 당진을 지나 예산을 거쳐 서산을 넘어 태안반도로 갔다. 엎어놓은 국대접처럼 둥글둥글한 야트막한 산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길 양편으로 논이 펼쳐졌다. 습기가 가신 9월의 햇살이 쨍하다. 추석이 다음 주인데 날씨는 한여름이다. 짱짱하게 펼쳐진 햇살을 받은 논과 산은 나 좀 보라는 듯이 눈부시게 빛났다. 언덕을 오르면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이 나타나고 구불구불한 국도를 달리다 보면 고속도로에서는 절대 안 보이는 삶의 속살들이 보인다.

  자주 다녔던 동해바다가 아니라 서해바다로 가고 싶었다. 관광객과 외국인이 넘쳐 나는 속초와 강릉보다 갯벌과 바다가 함께 있는 서해로 가고 싶었다. 짠내 물씬 나는 비릿한 갯벌이 아니라서 안면도의 바다는 좋다. 흥분한 마음을 달래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명란젓처럼 알알이 작고 동글게 뭉쳐진 모래가 발 앞에 펼쳐져 있었다. 누가 이렇게 부지런히 모래를 둥글게 만들어 퍼 나르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 바닷가 모래밑에 아주 바쁜 공장이 있나 보다. 게껍데기가 물결에 실려 다닌다. 세 분의 아줌마들은 갈매기 사진과 자신들의 추억을 부지런히 남기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한 갈매기는 꼼짝도 안 하고 멈춰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 목적지향이 된다. 빨리 목적지에 다다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도로 왔더니 마음이 느긋해진다. 평화로움에 감사함이 절로 느껴진다. 이 더운 날 걷지 않아서 감사하고 이렇게 멀리까지 달려올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어서 감사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배가 불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풍성했다. 왜 이렇게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을까 생각해 보니 오롯이 나만을 위해서 바다를 보러 온 것이 처음이었다. 나를 만난 게 처음이고 나를 대접해 준 게 처음이었다. 늘 누군가와 함께 했다. 지인들이나 아들과 함께 했다.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어디로 갈까 궁리하느라 나는 풍경을 즐길 수 없었다. 나는 늘 뒷전이었다. 함께 가는 사람들 수발드는 일에 마음을 다하다 보니 내가 늘 지워졌다. 게다가 가는 차 안에서 그들과 함께 얘기를 하느라 바깥의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말하랴 운전하랴 머릿속이 분분했다. 먹을 것과 말이 풍부했지만 나는 허기졌다. 또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은 장거리는 내 두려움으로부터 탈출할 때였다. 삶의 고민과 바뀌지 않는 답답한 현실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을 때 나는 바다를 찾았다.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엉킨 것들을 하나씩 끄집어내며 달리다 보면 목적지에 닿아있곤 했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혼자 훌쩍 떠나곤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 몰라서 답답했다. 미래와 현재의 좌표 위에서 방황을 했다. 어지러운 정치로 세상은 시끄럽고, 그런 세상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들은 불쌍하고, 불의한 지도자에 대한 분노로 공부를 놓고 거리로 나와야 하는 현실이 한심했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화염병을 던지는 학생이나 그들에게 최루탄을 쏘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애들이나 모두 스무 살 무렵의 청춘이었다. 학교에 다다랐다가 발길을 돌려 서울역으로 향했고 그 길로 해인사로 내려갔다. 서울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무모했다. 시골에는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르면서 합천으로 향했다. 아는 스님이 거기 계시다는 이유만으로 갔다. 왠지 그분에게 내 삶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물어봐야 할 거 같았다. 버스는 종점이라 모든 사람을 부리고 떠났다. 산골짜기라 저녁 8시인데 해가 똑 떨어져 칠흑같이 어두웠다. 나한테 달려드는 민박 주인들이 두려워서 멀찍이 달아났다. 민박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거기서 하루 밤을 지내야 할 정도로 서울에서 먼 거리인데 그것도 모르고 간 거다. 당돌하게 여학생 혼자 왔다고 자꾸 뭘 묻는 극성맞은 할머니들을 피해 뒤처져 있던 젊고 수더분하게 생긴 아줌마한테 갔다. 마지막 버스가 언제 있냐고 물었다. 내가 타고 들어온 버스가 마지막이라고 알려줬다. 갑자기 공포스러웠다.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호기롭게 서울역을 출발할 때는 언제고 여기에 도착하니까 무서워 죽을 거 같았다. 어디 다른 행성에 똑떨어진 거 마냥 혼란스러웠다. 말도 다 통하는데 말이다. 아줌마를 따라갔다. 혼자 우두커니 빈 방에 앉아 있다가 나는 아줌마를 불렀다. 무서워서 도저히 혼자 못 있겠다고. 서울을 떠나면 머릿속이 좀 개운해질 줄 알았는데 웬 걸 두려움이 가득해서 그동안의 고민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아줌마는 내 방에 와서 자기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해 줬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나는 그 방에서 밤을 지새웠다. 아줌마의 위로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줬다. 이른 새벽 해인사 마당에서 만난 새 한 마리는 나에게 괜찮다고 하나씩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면 된다고 알려줬다. 스님을 뵙지도 않았지만 난 용기를 얻었고 답을 얻어 서울로 올라왔다.

  두려움은 삶의 굴곡마다 나타났다. 용기를 잃게 했고 한없이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미래는 암담해 보이고 현실은 처참하게 느껴졌다.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혼자 여기저기로 떠났지만 늘 나와 동행했다. 여전히 두렵긴 하다. 저축보험을 몽땅 깨고 투자랍시고 했던 주식은 무모한 내 행동에 걸맞은 성적을 보여준다. 아들의 학비를 못 해줄까 봐 두렵고, 내 노후대책이 안 돼 있어서 두렵다. 다달이 돌아오는 대출이자가 두렵고 공과금과 신용카드 결제금액을 통장의 잔고가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수입이 줄까 두렵고 능력이 안 돼 일을 더 못할까 봐 두렵다. 그 두려움으로 몸이 아플 새가 없다. 두려움이 나를 부리지 말도록 깨어있어야겠다. 지금까지 버텼고 헤쳐 나왔으니 또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서해바다에서 나를 만났다. 두려움을 잊은 오롯한 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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