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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Sep 11. 2024

  언제부터 내 잠이 망가졌을까? 잠을 푹 잔 기억이 별로 없다. 깊이 잠에 빠지지도 못할뿐더러 자고 일어나도 개운한 느낌이 없다. 머리만 대면 잔다는 사람들은 진짜 복 받은 거다. 각성과 비각성의 경계가 모호하다. 잠은 쏟아지는데 눈은 감기지 않는 희한한 일도 있다. 졸려 죽겠어서 눈을 감았는데 정신은 너무나 말똥말똥해서 도로 눈을 뜨게 된다. 그러면 아이패드나 핸드폰을 쥐고 글을 찾아 헤매거나 영화를 찾으며 서너 시간을 그냥 보내게 된다. 푹 자고 싶다.

  나는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이면 눈이 떠져서 중고등학교 때도 새벽에 공부를 했다. 초저녁 잠이 너무 많아서 내 정신은 8시를 넘으면 휴업을 했다. 잠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고3부터다.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강제학습은 저녁 6시부터 10시 30분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담임과 일주일이 넘도록 제발 야자에서 빼달라고 입씨름을 벌였다. 저녁에 졸아서 공부를 전혀 못 하니 제발 나를 집에 보내달라고 했지만 혼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단체로 공부하는 것이 대입에 훨씬 효과가 좋다고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담임은 야자의 효과를 맹신하고 있었다. 야자가 없어도 내 성적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는데 나는 졸려 죽는 시간에 억지로 앉아 있어야 했다. 게다가 학교에서 5시부터 6시까지는 저녁 먹는 시간이라 이 시간에 밥을 먹으면 더 졸렸다. 밥을 먹고 야자시간이 시작되면 식곤증과 함께 나는 자연스럽게 책상에 엎어져 잤다. 친구들이 집에 갈 시간이라고 깨울 때도 있었다. 한 번도 안 일어나고 그대로 잔 적도 종종 있다. 어쩌다 일어나면 공부를 하는 건지 자는 건지 모를 정도로 눈을 떴다 감았다 정신을 못 차릴 때도 많았다. 야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실컷 자서 그런지 머리가 맑았다. 공부를 한다고 책상에 앉아 두세 시간 책을 뒤적거리다 잤다. 학력고사를 시원하게 망쳤고 담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믹스커피 맛에 빠졌다. 대학에 들어가서 믹스커피를 처음 마셔봤다. 커피 자판기에서 매일 7잔에서 8잔이 넘도록 뽑아 마셔댔다. 거기다 친구들하고 몰려다니면서 학교 앞 다방에 가서 커피를 또 마셨다. 공부하겠다고 도서관에 새벽같이 와서는 믹스커피 한 잔 마시고 잠에 빠졌다. 한 시간이 넘도록 자고 일어나면 정신 차리겠다고 또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책 읽다가 잤다가 커피 한 잔 마시는 도서관에서 일상이 반복됐다. 처음 마시는 커피를 그렇게 많이 마시니 저녁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처음으로 술을 마신 날에는 금방 잠에 빠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술로 인한 흥분으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 때 갑자기 기운 가세로 고민이 많아지면서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 매일 술이었다. 고민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는데 잊히기는커녕 정신은 어쩜 그렇게 맑기만 한지 세상을 뿌옇게 보고 싶어서 술을 마셨는데 세상도 잘 보이고 잠도 안 왔다. 술이 모자라서 그런가 싶어 집에 와서 또 위스키를 한 잔 가득 따라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술을 마시면 잠이 안 와서 밤새 취기에 젖어 책을 읽었다. 취기에 읽은 책은 나를 감성으로 이끌기도 하고 각성시키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집에 굴러다니던 돈오점수였다. 세상을 보는 눈을 다시 잡았다.

  기획일을 하면서 시간 안에 원고를 작성해야 하니까 밤샐 일이 많았다. 그리고 방송 작가 일을 하면서 잠은 더욱 엉망이 됐다. 취재도 해야 하고 원고도 써야 하고, 홍보물도 써야 하는데 24시간밖에 없으니 잠을 잘 시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밤새 작성해서 아침까지 방송 기획안을 써서 보내야 하는데 컴퓨터로 타자를 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하필이면 내 손가락이 삭제 키 위에 있었다. 9시까지 원고를 송고해야 하는데 눈을 뜨니 6시였다. 화면은 하얗게 한 자도 남아있지 않았다. 시간의 압박에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온 우주의 기를 모아 그 원고를 써서 보냈다. 몇 달을 엉망진창으로 잘 때도 많았다. 시간에 쫓기는 일을 하다 보니 잠은 뒷전으로 밀렸다. 시간이 나면 잠부터 잤다. 한꺼번에 몰아서 자는 습관이 생겼다. 이십 대를 지나 서른다섯 살쯤 나는 잠이 완전히 망가졌다. 아무리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주말에 이틀을 몰아자면 그래도 피곤이 풀리곤 했는데 그 효과가 사라졌다. 방송 일을 내려놨다. 쉬엄쉬엄해서 일을 해나갈 수가 없었다.  

  애들 어려서는 육아로 하루종일 동동 거리다 보면 잠이 시도 때도 없이 쏟아졌다. 애가 아토피가 심해서 며칠 같이 못 잘 때도 있었다. 아이는 밤새 긁고 나는 긁지 말라고 애를 말리고 애랑 나는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러니 낮에 조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이의 아토피가 생기기 이전에는 하루종일 애를 붙들고 잤다. 그 시간에 채운 잠으로 아들이 아토피로 고생하는 몇 달을 버텼다. 아들의 사춘기에 덩달아 밤을 새우다가 또 잠이 이상해졌다. 아들이 학교에 가면 그때부터 한낮이 되도록 잠을 잤다. 방과 후에 아이들을 가르쳤던 나는 저녁 늦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카페인을 들이부었다. 투샷의 진한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다섯 잔 이상 마시면서 각성하려고 했다. 몽롱하고 멍한 정신이 바짝 차려지도록 진한 커피를 선호했다. 나이가 드니까 저녁에 마시는 커피가 부작용을 일으켰다. 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두세 시에는 잠을 잤는데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커피는 홍삼으로 바꾸고 정신 차리자고 하루에 홍삼을 열 개 이상씩을 마셨다.

  오십 초반을 넘어서면서 어린 시절처럼 새벽에 눈이 떠진다. 새벽 두세 시에 자도 새벽 네다섯 시면 눈이 떠지고 정말 피곤한 날이라도 여섯 시 전에는 눈이 떠진다. 몸이 피곤해서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는데 눈을 감으면 잠이 안 온다. 뻑뻑한 눈을 꿈벅거리고 기사를 찾아 읽는다. 책을 펼쳐서 읽기는 귀찮다. 눈이 점점 감기면 살짝 잠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눈이 떠지면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잠이 쏟아지기 전에 베란다에 나가 화초에 물도 주고 집안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러다 졸리면 또 아무 때나 한숨을 잔다. 요즘엔 좋은 일이 생겨서 흥분해도 잠이 안 온다. 그러다 갑자기 살포시 잠이 들기도 한다. 깊지 않다. 잠시 후에 또 눈을 뜨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영상을 보고 기사를 본다. 가르치는 영상이 제일 잠이 잘 온다. 심리나 교육 영상을 듣다가 그 목소리에 잠이 든다. 잠 좀 시원하게 자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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