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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Nov 05. 2024

경포대

  경포대 맛집이 어디야? 어! 나도 경포대 가는 길인데. 아들과 나는 지난 토요일에 경포대를 향해 각자 달리고 있었다. 친한 후배와 함께 오랜만에 경포대 앞바다를 보러 갔다.

  근래에 속초를 향해 섭죽을 먹고 설악산을 휘리릭 둘러보고는 외옹치항에 가서 좋아하는 물회 한 그릇을 먹는 걸로 강원도 당일 여행을 다녀오곤 했었다. 무슨 출근도장 찍는 것처럼 늘 가는 곳에 잠시 들렀다 돌아왔다. 관광객이 많이 없을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에 올라 권금성 성터와 봉화대를 보면서 시원한 바람에 머리를 씻고 내려왔다. 해마다 설악산을 가지만 해가 갈수록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서 고요하고 조용한 설악산을 구경할 수가 없다. 번잡스럽고 수선스러워진다. 속초 중앙시장은 외국인 아르바이트생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음식점도 대부분 외국인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점점 속초가 낯설어진다.

  날씨가 청명해서 영동고속도로는 차들이 꽉 밀려있었다. 후배는 차가 너무 밀려서 운전하는 나를 걱정했다. 걱정하는 후배를 안심시키려고 서해도 찾아보고 충청도 쪽도 찾아봤지만 날이 좋아서 그런가 다 서너 시간 이상이 걸렸다. 어차피 경포대 앞바다 보겠다고 길을 나섰는데 늦으면 또 늦는 대로 재미가 있지 않냐고 조용필의 20집 전곡을 꽝꽝 틀고 들썩거리며 천천히 밀려갔다. 휴게소 화장실에는 한 떼거리의 외국인이 줄을 지어 있었고 관광객을 태운 버스는 거의 외국인들이었다. 지난번에 태안 쪽으로 갈 때는 외국인들이 많지 않았는데 강원도 쪽은 확실히 외국인이 많다. 아침 9시 30분에 출발했는데 2시 30분이 넘어 도착할 예정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후배는 경포대 맛집을 뒤졌다. 아직 강릉은 속초만큼 외국인이 넘쳐 나지는 않았다. 어디 갈까 고민을 하다가 아들이 경포대로 가끔 놀러 가는 것이 생각나서 아들한테 전화를 했다. 아들도 마침 경포대 바다를 보러 오는 중이라고 했다. 다음 주부터 바빠질 예정이라서 바다를 보러 간다고 했다. 친구가 사는 김해로 가려다 경포대로 온다고 했다. 모자가 마음이 통했다. 아들은 초당마을의 패널로 만든 아이스크림 가게 뒤에 있는 집이 맛있다고 했다. 패널이라는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나는 대충 위치를 감잡고 찾아갔다. 여기가 맞아. 후배는 우리 모자의 죽이 척척 맞는 대화에 깔깔댔다. 아들은 4시 30분쯤 도착 예정이라면서 밥을 먹고 순두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완벽하다고 했다. 저녁에 회를 같이 먹자고 했지만 아들은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며 바삐 돌아가야 한대서 횟집에서 포장만 해가겠다고 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배가 부른 우리는 경포대에 자리를 깔고 바다를 봤다. 느긋하게 바다를 즐기고 싶은 후배와 달리 나는 오 분을 앉지 못했다. 아들에게 줄 회가 마음에 걸렸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내 정신은 횟집에 가 있었다. 가려고 했던 횟집의 가격을 찾아봤다.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 회 포장 가격이 이십만 원이 넘어 부담이 컸다. 예전에 강릉중앙시장의 지하에 있는 횟집에서 횟감을 저렴하게 샀던 기억이 났다. 아들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우리에게 왔다. 후배는 엄마가 여기 있는 줄 알면 다른 데로 가지 왜 이리 왔냐고 농담을 건넸다. 모자의 맛집 추천에 완벽한 점심이었다고 후배가 활짝 웃었다. 아들 얼굴이 많이 밝아졌단다. 아들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중앙시장의 한 횟집에 참돔, 우럭, 소방어 포장을 주문했다. 아들이 집으로 가는 길에 가져가겠다며 회 거래가 끝난 뒤에 후다닥 인사를 하고 사라지려고 했다. 경포대에 와서 만난 지 삼십 분도 안 돼 헤어지는 아들이 아쉬워서 나는 뒤돌아 가는 애를 불러 세워 약 먹어라, 회 잘 챙겨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후배는 바다 보러 고독을 즐기러 가는 애를 왜 자꾸 부르냐고 한다.

  우리 모자는 경포대 앞바다에 자주 왔다. 아들과 나는 가끔씩 바람을 쐬러 밤늦게 출발해서 인적이 별로 없는 밤바다에 오곤 했다. 아들이 어렸을 때도 남편과 한바탕 싸우고 나면 아들을 데리고 분노와 어둠으로부터 탈출하려고 경포대를 찾았다. 경포대를 찾으면 아무 말이 없어도 바다가 우리를 위로해 줄 때가 많았다. 경포해변으로부터 강문해변까지 우리 모자는 새벽이고 밤이고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오곤 했다. 아들한테 아버지같이 다정히 대해주던 분한테 언젠가 아들이 답답하면 혼자 경포대 앞바다를 자주 찾곤 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아들의 기억에도 바다는 위로였고 출발이었나 보다.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아들이 마음을 다지기 위해 바다를 찾았나 보다.

  마지막으로 후배가 한 번도 못 가봤다던 테라로사 본점을 향해 출발했다. 테라로사는 6시 30분에 마지막 주문을 받는다고 쓰여 있었다. 우리가 도착할 시간이 6시 30분이라 포장주문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부지런히 어둠 속을 달렸다. 11월이라 노을을 느낄 새도 없이 해가 졌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네와 뜨문뜨문 있는 가게와 주택을 지나면서 마지막 갈림길에서 그만 고속도로로 들어서고 말았다. 후배는 강릉에 올 때마다 한 번도 못 와봤는데 역시 오늘도 못 본다고 깔깔댔지만 우리는 아쉽지 않았다. 다음에 또 함께 올 곳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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