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어떻게 빚을 갚는가

—빚을 생산으로 갚고 있는가 아니면 가격으로 갚고 있는가.

by 헤롤드 용

우리는 ‘빚을 갚는다’는 말을 들으면 개인을 떠올린다.

더 벌거나, 덜 쓰거나, 자산을 팔아 원금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 논리는 직관적이고 도덕적으로도 명확하다.


하지만 국가의 채무를 이 기준으로만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국가는 개인이 아니며, 국가의 빚은 단순한 대출이 아니라

경제 전체가 미래에 생산하겠다고 발행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국가 채무의 핵심은 상환이 아니라 정산이다. 매달내는 월세와 소득의 비율과 관리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국가는 빚을 갚기 위해 반드시 원금을 줄일 필요가 없다.

대신 그 빚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경제의 크기를 키우거나,

혹은 돈의 가치 자체를 바꾼다.


첫 번째 방식은 생산성과 성장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성이 오르고, 고용과 임금이 늘어나면

부채는 그대로 있어도 경제 전체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가벼워진다.

시장은 이를

“이 국가는 과거의 약속을 실제 생산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느리지만 가장 건강한 방식이다.


두 번째 방식은 인플레이션이다.

통화량이 늘고, 물가와 자산 가격이 오르면

부채의 실질 가치는 낮아진다.

원금을 줄이지 않아도 빚은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이 경우 국가는 빚을 ‘안 갚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격을 통해 정산하고 있는 셈이다.


이 방식은 빠르고 효과적이지만 부작용이 따른다.

현금의 가치는 줄고, 자산 가격은 오르며,

불평등과 변동성이 커진다.

그래서 시장은 인플레이션을 이렇게 읽는다.

“이 국가는 시간을 벌고 있다.”


현실의 국가는 대부분 이 두 방식을 섞어 쓴다.

가능한 한 생산성으로 갚고,

부족하면 인플레이션으로 시간을 번다.

중요한 것은 빚의 크기가 아니라 갚는 방식이다.


여기서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등장한다.

모든 국가는 인플레이션으로 빚을 정산할 수 있지만,

그 비용을 감당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가 인플레이션을 선택하면,

그 정산은 통화 가치 하락으로 나타난다.

환율이 흔들리고, 수입 물가가 오르며,

자본은 빠져나간다.

시장은 이를

“이 나라는 빚을 갚기 위해 화폐 신뢰를 희생하고 있다”고 읽는다.


반면 기축통화국은 다르다.

그 나라의 통화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무역, 금융, 자산 시장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의 비용은

환율, 자산 가격, 무역 조건, 외환보유 달러의 가치 변화로

세계에 분산된다.

이 점에서 미국은 예외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시스템의 중심에 서 있다.


그래서 국가의 재정 뉴스를 볼 때

“부채가 많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나라는 지금,

빚을 생산으로 갚고 있는가,

아니면 가격으로 갚고 있는가.

그리고 그 비용은

누가 떠안고 있는가.


이 질문이 서면,

재정·통화·자산 시장의 움직임이

비로소 하나의 언어로 읽히기 시작한다.



사진: Pixabay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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