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썼는데
막상 무엇에 대한 글이었는지 남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감정은 충분했고 문장은 나쁘지 않았는데,
돌아서면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그럴 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한다.
“아직 덜 솔직해서 그래.”
“더 자유롭게 써야 했어.”
하지만 정말 그럴까.
처음 글을 쓸 때,
나는 자유롭게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고,
그 말들을 막지 않는 것이 진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유로울수록 글은 길어졌고,
길어질수록 중심은 흐려졌다.
감정은 커졌는데,
의미는 오히려 얇아졌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문제는 자유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통제가 없어서라는 것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쓰는 건 자유지만,
하나를 끝까지 지키는 건 통제다.
그리고 작품은 늘 후자에서 시작된다.
좋은 작품은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벗어나지 않는다.
감정이 솟아도
주제를 넘지 않고,
기교가 가능해도
앞으로 나서지 않으며,
설명할 수 있어도
침묵을 선택한다.
이 통제가 없으면
자유는 곧 산만함이 된다.
예술에서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다.
감정이 깊으면 주제가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주제가 없는 감정은
아무 데나 흐르고,
통제되지 않은 진심은
금세 자기 연민으로 변한다.
그래서 많은 작품이
솔직한데 남지 않고,
열정적인데 기억되지 않는다.
통제란 억압이 아니다.
검열도 아니다.
통제는
“이 작품은 무엇에 대한 것인가”를
끝까지 놓지 않는 능력이다.
말하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마다
그 질문으로 되돌아오는 힘이다.
그래서 예술은
자유로워 보일수록
사실 더 엄격하다.
어쩌면 삶도 비슷하다.
자유롭게 살겠다고 할수록
우리는 더 흔들린다.
하고 싶은 선택이 많아질수록
정작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는 흐려진다.
끝까지 붙잡는 한 가지가 있을 때만
자유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표지: Erik Mclean님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