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며느리가 뭐길래
남편은 4형제 중 맏이이다. 모두들 출가했으니
8명의 부부와 아이들의 시간까지 고려하면
집안의 행사날짜를 정하기는 쉽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단체톡방에
'다음 주에 모내기를 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아휴, 에효―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일주일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마도,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 같다
하루가 한 시간 같이 지나가는
바쁜 직장을 다니는 나에게,
토요일은
평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든든한 원동력 중의 하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 역시
출근하는 시간부터
퇴근을 기다리는 직장인이자
'시 자가 들어가면 시금치도 싫다'는 우리나라의 며느리이다
토요일 아침,
아무래도 남편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나 혼자 시골 다녀올게, 자기는 집에서 쉬어"
라고 말하고는 나갈 준비를 한다
그냥 혼자 가게 두면 끝날 일인 것을...
집을 나서려는 남편을 급하게 불렀다
"10분만 기다려줘, 나도 빨리 준비하고 같이 갈게"
불편한 마음보다 몸의 고단함을 선택하는 편인 나는
이번에도 역시 같은 선택을 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그토록 가기 싫었던 마음은
토요일,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대략 추슬러진다
1시간여를 달려 시댁에 도착했다
내 마음의 무게와는 상관없이
산은 언제나처럼 '따사로운 곁'을 내준다
차에서 내린 남편과 나는
시댁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창고에서 나오신 아버님이
"어머니는 식당에 일가셨다"라고 하신다
그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오면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온종일 분주하시기 때문이다
식구들 한 명 한 명,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는 게
어려운 시간들을 지나며 돋아난 사랑 표현법인 듯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분주함으로 맏며느리인
나 또한 바쁘게 된다
간혹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채,
짐짓 딴청이라도 피우고 있으면
여지없이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해 질 무렵이 되어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달리 유독 안색이 안 좋으시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힘없이 들어오시더니
"아고... 허리랑 무릎이 아프네" 하며 온돌소파에 누우셨다
어머니께서 일하러 가셔서 '집에 안 계시는 동안',
혹여라도 자식과 손주들이 먹을 것이 없을까?
'물김치, 나물, 여러 가지 반찬'을 넉넉하게 만들고
정육점에 '살을 더 붙여달라고 주문한 돼지뼈'를 넣고
끓인 감자탕...
음식들을 만드느라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신 거다
그리고는 나가서 힘든 일을 하셨으니 얼마나 노곤하실까?
'젊은 사람도 힘들어서 하루만 일하면 도망간다'는
식당일이 아니던가?!
"아이고, 어머니...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부항이라도 해 드릴 테니 뒷방으로 가요"
나는 다급하게 이불을 폈다
상태를 살피며 여기저기를 조심스레 주물렀다
몸이 안 좋으시니
아야야― 아야야―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거 보세요. 어머니, 그러니까 며느리에게 잘하세요.
왜 잘못하셨어요?"
내가 농담을 즐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속이 시원해진다
어머니도 내 '우스갯소리'를 들으시더니
신음 소리 위로 희미한 웃음을 덮으신다
손과 귀까지 만져드리고 나니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는 것 같다
부모는 주고 또 줘도 마르지 않는 샘일까
평생 동안 무언가를 주셨는데...
이제 자녀들도 각자 자기 자리를 잡았으니
'마음을 내려놓으셔야 할 때'가 되었다 싶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마음의 속도는 바꾸지 못하나 보다
"어머니, 연세도 드셨으니 이제 그만 일하시고 쉬세요
무리하시면 큰일 나요!"라며 간절히
당부하는 자녀들의 소리가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가는귀먹은 귀처럼,
그렇게 자식에게서
조금씩 멀어져 가시는 걸까?
어려운 살림에 4명의 자녀를 키우시느라
힘겹게 살아온 대로
돌아가실 때까지 지속하는 게 부모의 삶인지 모르겠다
지천명에 가까워가는 내 눈에
협착으로 구부정해지신 어머니의 허리가 담긴다
나의 노년의 모습은 어디쯤일까...
아스라이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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