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이 전한 메시지

우영우에 나오는 이상한 사람들이 전하는 '정말 이야기'


상한 변호사인 우영우를 보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마는 반강제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농담이다.)


시간이 없어 드라마를 보진 못 하고(넷플릭스 아이디도 없고) 유튜브를 통한 요약 영상만 보고 있는데 이번 9화 내용이 참으로 반가웠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명문 학원이라 일컬어지는 학원의 아들인 방구뽕. 어느 날 그가 자신의 학원 버스를 탄 아이들을 돌연 숲으로 데려가서 한바탕 재미있게 놀고 온다.

납치범으로 잡혀 처벌을 받게 될 위기에 처한 방구뽕.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아이들은 지금 놀아야 한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얘기하는 그의 신념에 점점 우영우 변호사도 동화되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0-NVEogCWVY&t=123s




간형아쌤에서 누누히 말하는 내용이 있다. 이 시대는 혐오의 시대라고. 그럼 왜 이렇게 혐오가 만연해졌을까? 분노를 자주 접해서? 인성이 나빠져서? 바르지 못 한 매스미디어를 접할 확률이 높아져서?


그렇지 않다. 이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일 뿐이다. 무엇이 원인인가?

바로 '놀지 못 해서.' 이고, 조금 더 근본적으론 '자유를 박탈 당해서' 이다.



따지고보면 현 대한민국은 버티고 있는 자체가 놀라운 나라이다.


증조 세대가 일제 강점을 겪으며 나라를 잃은 아픔에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잃었고,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6.25, 베트남, 독재 및 핏빛정치 등 전쟁으로 '스스로 생각, 판단할 수 있는 자유'를 잃었다.

뿌리가 부정 당하고, 주인공으로 살 수 있음을 박탈당한 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되고, 자식을 위해 온전히 희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래도 아이일 때가 있었기 때문' 이 첫째요, '고통과 고난 또한 인생임을 응당 받아들였기 때문'이 둘째이다.


아무리 더워도 넓은 곳을 보면 해맑게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을 '에너지 그릇'으로 볼 때 아이가 갖고 있는 에너지는 굉장하다. 그 에너지를 매일매일 방전해야 고이지 않는다. 그게 되어야 서서히 어른이 된다. 어린이 때에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다고? 공부를 하고, 엘리트 집단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선행 학습을 하고, 얌전하면서도 예의 바른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혹은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자기를 펼치는 공간을 제공한답시고 "그래도 안전하고 허용된 선에서" 놀게끔 한다고? 부모가 볼 수 있는 선에서?


옳지 않다.


이들이 어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도 아이 시절 해가 뜰 때 밖에 나가서 동네 또래들과 뛰놀다가 저녁이 되면 밥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이런 저런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에너지 방전을 할 수 있었고, 온정을 나눌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였다.


허나, 이 과정에서 놓친 것 또한 있다.

설움과 분노, 불안과 걱정이다. 사는 데에 치였기에, 살아내야 했기에

어른이 되었지만, 내면엔 극도의 한을 지닌 어린이가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온정은 있으나, 끔찍한 역사적 맥락 안에 한을 키운 이가 어른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산업화, 근대화가 진행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시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온정은 그들의 자녀에게 한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아픔 말고 편히 살도록 해라."

그 마음이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자본적 우위를 점할 수 있기를 바랐고, 주입식 교육 체제의 확고한 발전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 뛰노는 아이는 건강한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말썽 피는 아이, 공부 못 하는 아이, 미래가 불투명한 아이였다.

그들의 사랑이 치열하고 간절해질수록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놀이에 대한 죄의식',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을 배웠다.


이런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자녀가 소위 MZ 세대라 불리우는 우리 세대이다.

말할 수 있는 자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 뛰놀며 즐거워할 수 있는 자유, 미래를 꿈꾸며 희망을 채울 자유를 배우지 못 한 채로 설움, 분노, 걱정을 동반한 '불안' 아래에 자란 우리 세대이다.

주인 의식을 배우지 못 한 채, 의자에 앉아 성실히 공부하며 스펙 쌓는 게 유일한 성공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노력이 배신하는 경험을 하는 시대. 불안에 갇힌 채 무언가를 새롭게 떠올리지도, 시도하지도, 허용하지도 못 하는 세대이다. 믿음, 성실, 노력 등에 명백히 배신 당하고 덩그러니 버려진 유기감을 느끼는 세대이다. 이런 분노와 불안이 모여 혐오의 시대가 되었다.


그럼 우리의 자녀 세대는 어떨까?


용납 받지 못 한 자유, 나답게 살지 못 하는 죄의식, 막연한 불안, 세상에 대한 불신.

아이들을 뛰어놀지 못 하게 하는 층간 소음, 놀이터를 보낼 때 납치부터 걱정해야 하는 범죄 위험, 새로운 어른도, 또래도 쉽게 만날 수 없게 하는 닫힌 사회, 소위 안 맞는 사람이 있을 때 쉽게 포기해도 되는 그래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여지를 주지 않는 쉽되 얕은 관계망, 안전이라 하지만 실상 불안해서 묶어두는 "하지마" 까지.


그 순수한 에너지 결정체를 가둔 채 동물원같은 보육을 하는데 과연 아이들의 영혼이 자유로이 자랄 수 있을까. 자유를 과연 알까?


다운로드.jpg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씨가 전한 메시지는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이었다.


자유롭자. 지금 당장.

어린이일 때 그렇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선 늦다.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메시지를 드라마를 통해 볼 수 있음이 먹먹하고 반가웠고, 동시에 미안했다.


이 감상을 보다 자세히 보고 싶다면 방구뽕씨 관련 영상의 댓글을 보라.

감동하는 이, 비현실적이라며 실망한 이, 작위적이었다며 욕하는 이, 자유로움을 받아들이지 못 한 이 등 다양한 색채의 감상이 있으니까.

그 감상들이 곧 이 한으로 가득한 트라우마 대한민국을 오롯이 보이는 것만 같아 먹먹함을 느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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