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위의 풍경
횡단보도 위에서
정지선 앞 횡단보도 위를
남녀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건넌다.
초록불이 막 깜빡거리는데
술에 취한 남자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여자의 한 손에는 개의 목줄이,
다른 한 손에는 남자의 멱살이 쥐어져 있다.
백두 대낮에 개 두 마리를 끌고
한 여자가 비틀거리는 횡단보도 위를 건너고 있다.
[정지선 위의 풍경]
아스팔트 위로 지열이 끓어오르는 백주대낮이었다. 신호등의 숫자가 한 자릿수로 떨어지며 초록 불이 위태롭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정지선 앞에 멈춰 선 차들은 마치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경주마처럼 신경질적인 엔진 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그때, 기이한 행렬이 횡단보도 위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아, 좀! 정신 차리라고!"
여자의 날 선 목소리가 경적 소리를 뚫고 터져 나왔다. 여자의 왼손에는 팽팽하게 당겨진 가죽 목줄이 들려 있었다. 목줄 끝에 매달린 누런 개 한 마리는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연신 바닥의 냄새를 맡으며 걸음을 늦췄다. 하지만 여자를 정말 미치게 만드는 것은 오른손에 잡힌 '또 다른 목줄'이었다.
술 냄새를 풍기며 고꾸라지는 남자의 멱살.
남자는 이미 척추가 녹아내린 생명체처럼 흐느적거렸다. 초록 불이 깜빡일 때마다 여자의 눈동자에는 초조함이 서렸고, 남자의 발끝은 아스팔트 위를 무의미하게 긁어댔다. 남자의 입가에 고인 침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는 자신이 지금 차도 한복판에 있는지, 아니면 꿈속의 늪을 헤엄치고 있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듯했다.
주변의 시선은 차가웠다. 사람들은 혀를 차며 그들을 지나쳐 뛰어갔다. 여자는 악에 받친 듯 멱살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한 명의 여동물과 두 마리의 짐승이었다. 본능에 충실해 바닥을 핥는 짐승 하나와, 이성마저 마비되어 부축 없이는 직립조차 불가능해진 인간이라는 이름의 짐승 하나. 여자는 그 두 마리의 생명을 양손에 움켜쥐고,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삶을 지탱하듯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자, 제발 좀 가자고!"
여자의 비명 같은 외침이 허공에 흩어졌다. 신호등은 마침내 붉은색으로 바뀌었고, 정지선 뒤에 엎드려 있던 거대한 기계 괴물들이 일제히 으르렁거리며 전진할 준비를 마쳤다.
백주대낮, 뙤약볕이 내리쬐는 횡단보도 위. 한 여자가 개 두 마리를 끌고 사선을 넘듯 위태로운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구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지독한 형벌에 가까운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