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맞는 자세(13화)

개벽의 시간

by 씨킴


아침을 맞는 자세



수풀들이 바람결에 잔잔히 춤을 추고

풀벌레가 목이터져라 힘껏 노래하는 때,

온갖 새들은 흥겨움에 취해 하늘로 높이 날며

신새벽의 동도 울그락불그락거리며 목이 메여 서머히 터 오르는 때에,


무수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뜩이는 시상들은 머릿속에 가득 채워져서 오락가락하는 때에,


혹, 이 아침을 어찌 맞아야 좋을지를 나에게

묻는 이가 있거든,


이리 답하리라.


- 동이 터 오를 때는 등을 켜지 말아라!


그대 안의 온신한 정념들이

빛의 손아귀에 사그라져 내릴 터이니,

나는 어둠이니 어스름을 안고 간다마는

나 또한 이 한때를 어찌 대항해 볼 재간이 없노라.


그리고는 기도하리라.

어둠을 품어 내는 개벽의 울음소리에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스러지는 지경을,

바라건대 사람들이 보다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 아침을 맞이하기를...














[개벽의 시간]


​창밖의 수풀들이 낮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잔잔한 군무를 추고 있었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밤의 끝자락, 풀벌레들은 제 존재를 증명하려는 듯 목이 터져라 마지막 노래를 쏟아냈다. 곧이어 깨어난 새들이 그 선율에 취해 하늘 높이 날아오를 때, 먼 지평선 너머에서는 신새벽의 동이 울그락불그락 핏빛 근육을 비틀며 서서히, 아주 고통스럽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무수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번뜩이는 시상들이 형체도 없이 오락가락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통스러운 축복이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묻는 듯했다.


이 거대한 아침을 대체 어떤 자세로 맞이해야 하느냐고.


​나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방 안에서 혼잣말처럼 사그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를 어둠이라 부르며 이 어스름을 품고 가려 노력해 보았지만, 나 역시 밀려오는 태양의 압도적인 기세 앞에서는 대항할 재간이 없었다.

빛은 모든 고뇌를 평범한 일상으로 박제해버린다.

​나는 떨리는 손을 모아 쥐었다. 그리고 창밖,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햇살이라는 거대한 울음소리에 밀려 하나둘 스러지는 지경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것은 별들의 장례식이자, 빛의 탄생이었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이 아침을 맞는 모든 이들이, 단순히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개벽의 순간 앞에 잠시 멈춰 서기를. 소란스러운 일상의 소음을 잠재우고, 보다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 장엄한 침묵의 이동을 목격하기를.

​세상은 다시 환해졌지만, 나는 여전히 어둠의 잔상을 눈에 담은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답을 내뱉었다.


​"동이 터 오를 때는, 결코 등을 켜지 말게."


​인위적인 전등의 노란 불빛은 이 경이로운 개벽의 순간을 방해할 뿐이다. 등을 켜는 순간, 밤새 고이고이 길어 올린 내 안의 온신한 정념들은 무자비한 빛의 손아귀에 붙들려 한 줌 재처럼 사그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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