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
초대
만남이 없던 지인에게서 청첩장이 왔다.
딸을 시집보낸다는...
부첨된 <약속>이란 김남조의 시구절에 눈이 갔다.
'우리들 그 첫날에
만남에 바치는 고마움을 잊은 적 없이 살자'
제 인륜대사에 나를 초대해 줘서 고마웠고,
참석하지 못해도 소식을 들었으니 잘됐으며,
이러다가 다시 보게 되면 더더욱 좋은 일이다.
종래 나하고는 관련이 덜한 경사이기는 하나,
금명 시간을 내어 축하의 예는 갖출 참이다.
초대의 대상은 그간 만나지 못한 것이 아닌,
언제라도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
우편함 더미 사이에서 낯선 이름 하나가 적힌 흰 봉투를 발견했을 때, 정우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고서야 떠오른 얼굴. 몇 해 동안 소식 한 번 나누지 못했던 지인이 보낸 청첩장이었다.
'딸아이를 시집보냅니다.'
정우는 거실 소파에 앉아 정성스레 접힌 종이를 펼쳤다. 그 안에는 김남조 시인의 <약속>이라는 시 구절이 조심스럽게 적혀 있었다.
<우리들 그 첫날에
만남에 바치는 고마움을 잊은 적 없이 살자>
정우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첫날의 고마움'. 생각해보면 모든 인연에는 찬란한 시작이 있었다. 세월의 파도에 밀려 서로의 일상에서 멀어졌을 뿐, 그 첫날의 기억까지 퇴색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 지인의 딸은 정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남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정우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경사인 '인륜대사'를 앞두고, 잊고 지내던 자신을 떠올려 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식장에 직접 발걸음을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개운했다. 이 소식을 계기로 언젠가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그건 더더욱 근사한 일이 될 터였다.
"그래, 초대의 대상이라는 게 꼭 어제 만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정우는 달력을 넘겨 예식이 치러지는 날짜를 확인했다. 비록 몸은 가지 못할지라도, 금명간 시간을 내어 정중한 축하의 예는 갖출 참이었다.
정우는 깨달았다. 인연의 끈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을 때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슨하게 풀려 바닥에 닿아 있더라도, 필요할 때 서로를 끌어당겨 안부를 물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초대의 진짜 자격은 '얼마나 자주 만났느냐'가 아니라, '언제라도 다시 기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달려 있었다. 정우는 축의 봉투에 정갈하게 이름을 적어 넣으며, 언젠가 다시 마주할 그 '첫날 같은 재회'를 기분 좋게 상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