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도발적인 문장이다. 흔히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감정 없는 삶이 가능할까? 아닐것이다. 감정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감정에 함몰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청년기처럼 스펙타클한 감정이 일지 않는다. 젋을 때와 달리 화가 잘 나지도 않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신나는 느낌도 별로 없다. 매일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서일까? 평소 갖고 싶은 물건을 사도, 한껏 꾸미고 나간 모습에 일행들이 폭풍칭찬을 해도 채 5분을 못간다. 이 책에서 이런 나의 감정상태를 '정동'이라고 불렀다. 정동은 사람이 하루 종일 경험하는 일반적인 느낌이라고 한다. 유쾌와 불쾌, 평온과 동요사이에서 끊임없이 변동한다는데, 나는 평온에 갇힌 붙박이 가구같다.
나는 감정이란 누구나 갖고 있는 생물학적 기능이자, 단순하고 고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누구나 이런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책에서 이러한 감정개념을 본질주의라고 말한다. 본질주의는 기본 감정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각 감정은 특정한 뇌 영역에서 고정된 방식으로 활성화된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본질주의를 비판하는데, 첫째 감정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둘째 보편적이지 않으며, 셋째 생물학적 반사작용이 아니라고 한다. 감정마다 일관되고 특수한 지문이 자율신경계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뇌과학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말했다. 그래서 감정은 뇌가 경험, 예측, 개념을 구성하여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라고 한다. 저자의 주장이 획기적이고 흥미로웠다.
나는 평소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예전 독서토론 모임에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을 때의 일이다. 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안나의 죽음을 안타까워했고 슬퍼하며 불쌍해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안나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선로에 발이 미끄러져서 일어난 실족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자살을 앞둔 사람이 어찌 자신의 삶과 인생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톨스토이가 이런 부분은 쓰지 않은 것 같다. 다수가 '슬픔'이라고 말할 때 '어리석음'이라고 느끼는 나의 감정에 대해 나는 '이상한가?'라는 의심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나의 감정은 당연한것이였다. 감정의 특수 지문이 없고, 매우 유동적이며, 각자의 감정개념은 경험과 예측에 따라 달라진다니 당연히 나의 감정은 타인과 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느낌을 알 수 있다는 것은 허구라고 말하는 저자의 주장에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같은 혁신적인 책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처럼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시종일관 저자는 주장의 논거를 뇌과학과 심리학에서 찾는다. 뇌과학 분야를 설명하는 책의 앞 부분은 문장이 다소 길고,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가독성이 떨어지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게다가 각 장의 제목이 페이지 하단에 적혀 있지 않아, 매번 앞에 목차 부분으로 넘어가서 책의 구조를 이해해야 하는 점은 많이 불편했다. 이 부분 때문에 개정판이 절실해 보인다.
저자는 9장에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한다. 감정은 지각하는 사람들의 뇌에서 구성된 것으로, '구성된 감정이론'이라고 한다. 각자의 감정지각을 향상시킬 수 있는데, 이 방법이 싱거울 정도로 건강한 몸을 만드는 웰빙라이프와 비슷하다. 정제설탕, 나쁜지방, 카페인을 줄이고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다. 활기찬 운동을 하고 잠을 충분히 자며, 요가와 마사지도 도움이 된다. 소음이 없는 곳에서 초목과 자연광을 즐기는 것도 좋다. 그리고 제일 눈에 띄는 방법이 있었는데, 낯설고 흥미진진한 일에 몰두하라는 조언이다.
이번에 독서토론 모임에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실천 방안들이 불교의 무상, 무아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과학과 심리학을 아우르는 책을 읽고, 안온한 삶을 설계할 수 있다니 다시 한번 놀라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낯설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애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과 친하지 않다면 완독이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독성이 떨어져서 한 번 읽고는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감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기를 원하며, 나와 타인의 감정차이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