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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레쌤 Nov 04. 2022

통번역 출신 영어 강사의 은밀했던 과거 1

당신,,후회 안 하겠어요?

나의 직업은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 강사다.


나의 꿈이 강사였던가... 를 생각해보면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중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학생이었다.

이유는 귀찮아서다.


그랬던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꽤나 오랫동안 해오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다.


사실 학창 시절 나의 꿈은 세계 정복이었다.

나이키, 코카콜라, 애플 등과 같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름만 들으면 아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배우고 익히는 것에는 언제나 자신 있는 학생이었기에

분명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꿈을 꾸며 학창 시절을 보냈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내 의지나 능력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능력이 모자라면 채우면 되니까. 공부하면 되니까.


하지만 환경은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었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의지나 능력과는 별개의 요인으로도 꿈이 좌절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무렵, 나는 사소한 것도 포기하고 타협만 하며 사는 패배자가 되어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꿈을 향해 달렸던 순수했던 마음은 사라졌고

현실을 도피하는 삶을 살아갔다.


첫 번째 도피는 집과 학교로부터의 도피였다.

공부를 포기하려는 생각이 드니 전공인

영어가 너무나도 싫어졌다.

통역과 번역이 너무도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서 모든 지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교 중퇴를 생각하며 군 휴학을 빼고는 써 본 적 없는 휴학을 모두 걸어놓고 학교를 나왔다.


학교를 나오기 일주일 전에 마지막 학교 생활이라는 생각으로 통역 알바를 했고 그 돈으로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를 시작해보니 다음 달부터의 생활비를 고민하게 되었고 공부가 아닌 다른 쪽으로 일을 해야겠다는 이상한 반발심으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력서 보고 신기하기도 해서
면접 와보라고 했어요
왜 공부 때려치우고 요리하려고 해요?
당신..후회 안 하겠어요?

면접을 봤던 사장님의 첫마디였다.


그렇게 나는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요리를 시작했고

그걸로 돈을 많이 벌어서 요리사로 성공하겠다는

남들 눈에는 다소 이상한 생각을 하며 살아갔다.


다행히 일식집 식구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군대만큼 군기가 세다는 주방 문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가게였다.


살면서 요리라고는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나에게 선배들은 칼질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세세하게 잘 알려주었고 사장님도 본인만의 레시피라면서 공부하라고 메모장을 던져주셨다.


일주일이 지나자 어느 정도 가게 생태계에 익숙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한 시간 전에 먼저 출근해서

가게의 야채란 야채는 죄다 엉망진창으로 썰어놓으며 칼질 연습을 했다.


두께가 들쑥날쑥하게 썰린 야채를 보며 선배들이 혼내기도 했지만 뭐가 문제인지 알려주면서 개선할 점을 짚어주는 그들의 새침하지만 따뜻한 격려를 받으며

칼에 익숙해져 갔다.


영업이 끝나면 가게를 정리한 후 한 시간 동안 남아서

찐 새우에 랩을 감아서 새우가 말라서 바스러지지 않게 한 후 초밥 쥐는 연습을 했다.


사장님이 보여주신 간결하지만 우아한 초밥 쥐는 동작을 따라 하며 미스터 초밥왕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초밥을 한 번에 쥐는 손끝 돌리기 일수법을 향해..!!


그런데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요리에 정을 붙이고 시간이 지나

어설프지만 그래도 어엿하게 일식집 앞 주방에서 초밥을 만들며 지내는 나에게 이상한 제안이 들어왔다.


미국에 있는 식당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었다.


외국인 손님들이 왔을 때 영어를 할 줄 아는 요리사가 나뿐이어서 영어로 응대를 한 것이 그 일의 시발점이었다.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엉뚱한 곳에서

잊고 살았던 영어가 머리를 내밀 줄이야..

미련 없다고 생각했는데 미련이 마구 차올랐다.


요리하며 지내는 나의 모습이 대학생으로 살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던 대학생 시절의 간절함이 다시 차올랐다.


일주일간의 고민 끝에 "go"를 외쳤다.

사장님 이하 모든 선배들이 응원을 해주었고

미국으로의 취업은 일사천리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인생에서의 두 번째 도피를 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 영어 전공을 하면서도 돈이 없어서 못 가봤던 미국을 공부가 아닌 초밥을 만들기 위해 떠나게 되었다.





- 투 비 컨티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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