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지만 아직도 생경한 느낌이다. 개학을 하자마자 인문 동아리 학생과 함께 제주도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지난주에는 장인 어른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또 일주일 자리를 비워야 했다. 그렇게 내가 비운 자리를 대체 선생님이 채워 주셨기에 별 부담없이 출장과 특별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베풂이 내가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사실 내가 이룬 것들도 그래서 다 내가 잘해서 얻어낸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 잘났소” 하는 게 얼마나 의미 없는 행동인가를 깨닫게 된다.
일 주일만에 돌아온 수업 시간. 아이들은 꽤 궁금해했다. 나를 보자마자 어디에 갔었냐고, 왜 안 나왔냐고 한다. 보고 싶었다는 입바른 이야기를 하는 녀석들도 있다. 그래서 내가 지난주에 학교에 나오지 못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런데 참 고민이다. 장인 어른이라고 하면 애들이 알까? 그래, 좀더 쉽게 설명해주자. 일상적인 용어를 쓰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네 아빠의 아빠를 뭐라고 부를까?”
“큰아빠요.”
뜻하지 않은 답변이 돌아온다.
“아니, 큰아빠는 아빠의 형이고, 아빠의 아빠는 할아버지야.”
다음은 엄마로 넘어가야 한다.
“그럼 아빠가 엄마의 아빠를 부를 때는 뭐라고 하지?”
“아버님요.”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다른 말로는 뭐라고 할까?”
“장인 어른요.”
“그렇지. 그럼 장인 어른의 부인은 뭐라고 하지?”
“장인 엄마요.”
확실히 아이들은 언어의 천재들이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생각나는 대로 답하는 게 어쩌면 저리 창의적인지 모르겠다. 중학교 1학년이 이러니, 그보다 어린 아이들은 훨씬 더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뜻하지 않게 친척간의 호칭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형수와 제수씨, 도련님과 서방님, 이모와 고모, 사촌과 오촌 등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내 말을 들으면서 고개는 끄덕이지만 이 시간이 끝나면 아마도 장기 기억으로 옮겨가지 못하고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휘는 쓰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것 이외에는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1학기 기말고사가 생각난다. 시험 시간에는 혹시라도 나올 질문에 답해주기 위해서 해당 과목 교사가 교실을 순회한다. 그러면서 시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아이들의 질문이 많아진다. 대부분은 어휘에 대한 것이다.
“선생님, ‘참신하다’가 뭐예요?”
“‘함축적’은요?”
“‘시제’가 뭐죠?”
다 수업 시간에 나오는 용어들이고 충분히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한테는 어려웠나 보다. 요즘 아이들은 말을 줄여서 사용하고, 맥락에 맞는 말을 사용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영상 세대답게 화면은 즐기지만 글자는 즐기지 않는다. 영상에 나오는 용어들은 대개 구어체인데 책에는 문어체의 용어들이 많이 사용된다. 그러니 공부를 하기 위한 어휘는 잘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책을 읽으라고 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어휘력이 확장되어야 한다는 말을 해준다. 물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늘 국어 교사로서 안타까움을 갖게 된다. 정확한 단어를 구사하지 못하니 갈등을 풀어가는 게 미숙해진다. 아는 것 같지만 자신의 언어로 설명을 못하니 국어를 어려워한다. ‘대박’, ‘헐’ 등의 말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그 단어 하나로 모든 상황에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쓰면 쓸수록 어휘력은 점점 빈약해지게 된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기왕이면 다른 단어로 정확하게 마음을 나타내는 것을 권해주곤 한다.
아이들을 확실하게 글자의 세계로 안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수준 높고 다양한 어휘를 대화에서 사용하고 내 말의 의미가 곡해되지 않고 정확히 통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의 세계가 언어를 통해 더 넓게 확장되기를 바란다. ‘장인 엄마’가 재미있기는 하지만, 세상을 재미로만 살아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