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찬 수녀님의 목소리를 듣고 우린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즉 떼지도 않은 눈곱에 면박 주듯 아침 해가 슬며시 눈가에 내리 앉았고, 눕다 일어난 우린 저마다 피곤한 몸을 풀려고 양팔을 뒤로하고 기지개를 켰다. 미간도 함께 찡그렸다. 하품소리가 늘어났고 게으름의 연기가 피어오르자 엄마 수녀님은 문간에서 문을 두드렸다. 그것이 진짜 알람소리가 되었다.
"밥 가지러 올 사람! 같이 내려가자!"
수녀님은 밥을 가지러 올 인원을 호명했고 서울에서도 그랬듯이 배식당번을 정해주었다. 두 세명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도시락을 준비하러 텅텅 빈 밥통과 반찬통, 국통을 들고 수녀님을 따라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을 철저히 지킨 아이들은 국통 손잡이를 나눠 잡고 계단을 올라섰다. 반찬과 밥이 도착하자 식탁 위에 놓인 간식과 수녀님께서 만들어주신 김밥을 비닐에 담아 노란 가방 속에 챙겼다. 차갑던 가방이 따뜻하게 채워지니 왠지 더 설레어 바다에 가 있는 상상부터 했다. 그때의 내가 떠올린 바다는 육중한 밀물이 쓸려와 모래가 반듯하게 썰물에 딸려가는 장면이었다. 해초류 특유의 비릿함과 염분의 짠내는 예상하지 못했다. 바다를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으니까. 공기와 바다의 맛은 도시의 느낌과 비슷할 거란 생각을 했다. 짐을 다 꾸린 뒤 식당에서 제시간에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인원체크, 짐 체크를 마치고 난 뒤 버스 위로 올라탔다. 송도에서 해운대까지는 버스로 약 두 시간이 걸렸다. 늘 정신이 쌩쌩한 친구의 주절거림에 방해될까 창가에 몸을 기대었고, 곧바로 수면을 취했다.
드디어 다대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수욕장에 발을 내딛자 차가운 진흙이 두 발을 감쌌다. 거대한 파이 위를 물색하는 개미 떼의 민감한 촉처럼 발끝이 촉촉했고 푹신했다. 짠 냄새, 비릿한 미역 냄새가 역하게 풍겨왔다. 달랑게들이 우릴 반겼는지는 모르겠다만, 도착하자마자 친구 한두 명이 복불복으로 물렸다. 1박 2일 예능을 찍는 것처럼 실황 예능 같은 우연덕에 까르르. 꼴에 자긴 안 물렸다고 또 한 번 까르르.
2002년 월드컵이 성행하던 당시 우린 모두 붉은 티를 입고 있었다. 행방이 묘연해질까 인식이 쉽도록 한 의도로 깔맞춤이 된 옷이다. 충분히 이쁜 붉은 악마가 된 것 같았다.
수녀님은 수녀복을 입고 계셔서 함께 물에서 놀 수 없었다.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덩달아 신나셨는지 허벅춤까지 장치마를 걷고 바닷속에 발을 들여놓으셨다. 아빠 다리로 갯벌에 앉은 손에 개를 들어 보이며 웃는 우리는 순수하고 맑았다. 알코올 솜에서 피어나는 소독향처럼. 해는 중천에 머물렀고 어느덧 배꼽에서 타임벨이 울렸다. 점심시간이 되어 싸 온 도시락을 꺼내는 도중에 빨래집게로 꼬집은 느낌이 발끝부터 머리까지 전국을 뒤흔들 노래자랑의 마이크 노이즈로 전해졌다. 손에 들고 있는 김밥으로 곤장을 치고 싶었지만 계륵을 겪을 순 없으니 꾹 참았다. 그리고선 징징대며 게를 두 번 떼어냈다. 한 번 떼면 집게 팔만 남루하게 남았다. 자연,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되었다.
김밥을 한 입 베어보니 특유의 뭉클함이 느껴졌다. 향수병일까? 사는 맛을 비유한다면 아마도 이런 맛일까? 이빨모양으로 뜯긴 두툼한 줄에서 모락모락 피어났다. 아가페 맛의 뿌듯함이 미각을 휘감았다. 그렇게 해가 서서히 저물었고 근처 개수대에서 몸을 씻었다. 수영복 속에 기념품 따나 챙긴 모래가 모아져 바닷물과 함께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고 찝찝함을 참는 동안 사흔이 버스바닥에 부스스 깔렸다. 모래사장 공사하는 인부도 아닌데 웬걸. 미약한 열사병의 일환인 환각증세라 추정했지만 현실이었다. 갯벌에 다시 온 건가 싶었다. 활동량이 왕성한 아이인 몸, 그 피곤함을 뒤로하고 보육원에 도착했다. 바다내음 비린내와 모래를 씻기 위해 샤워하고, 기도 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일정대로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 무대 뒤편에 고학년 형, 누나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대기하고 있었다. 진보라색 커튼으로 가려 저서 그땐 형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다만 커튼이 움직여서 사람이 있겠다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게 투명인간 일리는 없으니까. 목차는 평균적으로10개가 있었고 그 뒤로 추가되는 무대는 수녀님들의 특별 공연이었다. 엄마 수녀님은 공연을 준비하는 수녀님들과 함께 대기칸에 있다가 커튼을 빠져나와 함께 공연하셨다. 우린 신기한 듯 무대에서 춤추시는 엄마 수녀님을 가리켜서는 "엄마다!"하고 외쳤다. 엄마 수녀님은 민망하셨을 테지만 어린이들의 동심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다 바칠 열정과 눈빛으로 성공적인 공연을 마치셨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수녀님의 박수를 끝으로 환영 무대가 끝이 나고 작은 오리새끼들은 알프스 산맥처럼 녹진 오리 버스에 전원 안전하게 탑승했다. 오리 버스에 들어서자 기사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모두 버스에 착석하고 나서 기사님은 마이크 테스트 후 헛기침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잘 놀다 왔어요? 앞으로 5시간 걸릴 건데 휴게소에 세 번 들를 거예요. 휴게소마다 10분 정도 있을 거니깐 천천히 갔다 와요."
기사님은 높임말을 쓰시며 상당히 상냥하게 대하셨다. 검은 무광 뿔테 안경에 MC 유재석을 닮으신 일명 메뚜기 기사님의 친절함이 너무나도 좋았기에, 나는 앞자리에 앉아 아저씨와 대화하는 것에 진득한 흥미를 가졌다. 어른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호기심이 많아 애늙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간지러운 입을 통제할 수 없었기에 질문을 귀찮아하시던 어른들도 분명 계셨지만, 메뚜기 기사님은 아이라면 당연하다는 듯 들어주셨고 웃어주셨다. 버스에서 끊이지 않던 웃음소리는 따스하고 하늘하늘한 여름방학과 함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