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신뢰와 반복되는 의심, 로망

08

by 언데드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가 좋았기 때문인 걸까. 줄곧 꼬꼬마시절부터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이상한 꿈이 있었다. 사람들은 '네가 그걸 해서 뭘 알려주겠냐', '아는 것 없이 무계획적으로 그게 현실적이냐'며 비난하는 일이 많았지만 그것에 대해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누그러지고 다시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 처음엔 온갖 신경이 부정의 판에서 피어난 송곳처럼 곤두서있었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고 하던가. 나는 과연 어떤 값어치의 막대한 빚을 지려한 것일까. 코웃음으로 지나쳐도 문제없을만한 겨우 단 한마디에 수많은 시간을 갈았고 그것에 죽자고 달려들었다. 오만상을 쓰며 부정에 오염되었다고 때를 쓸 나이는 한참이 지났다. 그런 힘이 있다 해도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이 꿈을 이루면 정말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적은 단 한 시도 없었다.


'교사'


어렴풋이 듣는다 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걸 넘어 철학자와 시인, 소설가, 배움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펴낸 예리한 내용의 논문들이 상상의 나래로 펼친 장소에서 칼바람처럼 휘날린다. 어떤 종이라도 잡아보자.

거기 무엇이 쓰여 있는가?


교사는 직권으로 권력을 남용해 사회의 도덕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 거대한 내면의 조잡한 힘을 깔끔하게 정제하여 필요시에 적절히 쓸 줄 알고, 잘못됨을 올바로 붙잡아 제시하는 역할이다. 그들은 인격이 성장된 인간의 고양감을 널리 가르치고, 사회적인 지식 성장을 촉구하는 매개로써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그들은 한 과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범주의 방식으로 재미있고 알아듣기 쉽게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 말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교사란 이러한 결론으로 정립된다. 이것은... 마치 이룰 수 없는 꿈. '원하는 길'의 한 빛줄기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일본챔프에서 연재되는 만화 [원피스]에서 오다 에이치로 작가가 한 말을 평생 가슴 깊은 곳에 품어왔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소설책을 좋아했던 만큼 만화책은 몇 배로 좋아했으니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어설프지만 작은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꿈의 초석은 미술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 짧은 순간 우연히 현실과는 다른 공간에 잠시 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교무실로 불려 와 상을 주신 미술 선생님의 미소에서 금니가 반짝였고, 초등학생 2학년부터 4학년까지 미술치료를 받았던 친구들 중 한 친구가 머리가 아파 짐을 대신 들어줘서 그날따라 더 뿌듯했으며, 5학년 가을에 옅은 비가 내리는 모네 박물관에서 하늘에서 또 다른 예술작품을 보았다는 말에 말없이 웃으신 선생님이 생각났다. 도화지를 오리고 입체감 있게 돌돌 말아 수십 번의 가위질로 마무리 지은 작품 '청룡'으로 A+를 받은 중학 1학기 미술기말고사, 고등학생 2학년 시절에 생활관 복도와 복도를 잇는 로비에 도배할 그림을 완성하고 칭찬하신 엄마수녀님의 가지런한 치열, 크리스마스 한 달 전... 마지막 예술회 때 소품 총괄 감독을 맡았던 기억들이 뇌리에 단번에 스쳤다. 그리고 만화책이 펼쳐졌다.


원피스는 해군과 해적, 정부라는 삼대세력이 등장하는데 이 중 해군은 '절대적 정의' 아래 정부직속해상치안기관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해적의 약탈과 범죄를 예방하는 일을 담당하며, 모든 해적은 적이라는 신념을 모토로 정의관을 내세워 각 해적의 수배서마다 값어치를 매겨 체포한다. 무력이 강한 해적일수록 대장을 붙인 군집단위로 해적단과 대립한다. 장교급 이상인 해군은 각자의 정의관을 가지고 일에 임하는데 소수의 해군들은 모든 해적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므로, 때때로 마린포드 내부에선 사상누각에 의한 정의관 분란이 일기도 한다.

해적은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이 최종보물 '원피스'를 손에 거머쥐기 위해 해군과 정부를 따돌리고 다양한 모험을 하는 집단이다. 그러므로 혼자서 유유히 바다를 떠 다니는 [전 칠무해] 매의 눈 '쥬라큘 미호크'와 같이 동료를 두지 않는 해적도 있다. 바다의 황제라고 불리는 대해적 사황은 4명으로 유지되는데 '해적 중 최강'으로 평가되는 해적단의 선장이 획득할 수 있는 칭호다. 이중 한 명인 여해적 빅맘은 자신의 수많은 자녀들을 선원으로, 자신은 선장으로 군림했다. 이처럼 해적은 자유를 위해 원피스, 혹은 자신이 원하는 가족을 목적으로 항해하며, 해군은 정부 명령하에 그들을 잡아들이고, 정부는 세계의 비밀(노예제도, 인종차별, 무차별적인 대학살, 각종 인간실험, 인권남용 등)이 드러나지 않도록 세력을 조정하고 인간을 소모품처럼 부린다. 그러나 이들 정부에 대항하는 한 집단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혁명군.'

주인공 루피는 현재 해적의 정점이라 불리는 사황이 되었고, 그의 의형제 중 한 명인 포트거스. D. 에이스는 해군에게 사살당했으며, 사보는 혁명군의 참모총장이 되었다. 혁명군 코알라는 그녀가 11살 적에 죽을 위기를 맞았다. 그녀는 천룡인(속칭 세계정부가맹국의 왕족)의 부림으로 노예생활을 하다가 태양해적단의 선장인 피셔타이거에게 보호받아 무사히 집으로 귀환했다. 코알라는 그들이 평생 잊지 못할 은혜를 준 덕에 혁명군에서 어인공수도(어인전통무술)를 배워 사범대리를 담당하고 있다. 그녀와 같은 인물들이 모인 집단이 혁명군이다. 차별을 받아 갈 곳이 없으나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 비록 무소속을 원하나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자들이 소속된다.

그녀의 사수로 있는 사보는 고아왕국의 귀족출신으로 아버지에게 미움을 샀다. 이후 비아냥대기 일쑤인 의붓동생 스테리가 들어오고 자신을 천대하는 부모의 야박한 태도로 사보는 가출을 결심한다. 자유를 얻으려 아담한 나무배에 올라탄 사보는 천룡인에게 발각되고 포탄을 맞는다. 그때 루피의 아버지 드래곤이 이를 발견. 사보를 혁명군 본부로 데려가 치료해 대간부로 성장시킨다. 그가 혁명군에 있을 동안 루피는 해적선을 타고 동료를 모은 뒤 정상전쟁에서 에이스의 사망을 목격하고 혼절하고 마는데 동료와의 약속과 징베(동료/조타수)의 일침, 레일리(해적왕의 부선장)의 수련, 행콕(대여제/칠무해)의 간호로 정신을 금방 회복한다.

2년의 수련 후 동료들은 더욱 강해져서 드레스로자 왕국에 도착한다. 칠무해(해군동맹 준최강의 해적단)의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천룡인/해적)는 돈키호테 패밀리의 선장이다. 그는 리쿠 골드 3세의 왕위를 차지해 공포정치로 국민을 조종한 대국범죄를 저질렀다.

그가 주최한 이벤트는 콜로세움에서 시작되었다. 에이스가 복용한 이글이글열매를 우승을 차지하는 자에게 주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루피와 사보가 재회하게 되는데 몇십 년 만에 원본작에 재등장해 루피는 충격을 금치 못한다. '혁명의 불'을 상징하는 그에게 뒷일을 맡기며 루피는 도플라밍고의 만행을 저지하기 위해 로우(루피를 포함 1억베리 이상의 신세대해적 '초신성'/전 칠무해)와 함께 그를 왕위에서 끌어내린다. 이후 도플라밍고는 임펠다운 레벨 6(흉악범죄자를 가둔 임펠다운의 최상층)에 수감된다.


에이스 처형 당시 그를 탈환하려는 해적단, 저지하려는 해군이 서로 대립했다. 임펠다운 수용소에서 막 참수대로 이동한 에이스의 행방을 알게 된 혁명군과 루피, 그를 도우려는 수감자들은 어찌어찌 이전에 적이었던 크로커다일(전 칠무해/현 사황 최고 간부)과 버기(전 칠무해/현 사황), 징베(전 칠무해/현 동료)를 필두로 탈출한다. 크로커다일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범죄조직회사 [바로크 워크스]의 소속 봉쿠레도 이들 대열에 가담하게 되는데 루피는 감옥 침입죄로 임펠다운 서장에게 독공격을 받아 죽음의 갈림길에 섰었다.

봉쿠레와는 이전에 전투를 했으나 현재는 친구로 그를 살리려는 바람이 간절했는지 이명 '기적의 인물'로 불리는 이반코프가 등장한다. 자꾸만 루피가 되살아날지 의심하는 봉쿠레의 호소에 참다못한 이반코프는 그의 사상을 통째로 뒤흔드는 말을 외친다.


"기적을 얕보지 말라고!!!! 기적은 포기하지 않는 녀석의 머리 위에만 내려오는 법이야!!!!


죽음은 그리 멀지 않다. 어제의 적도, 내일의 동료가 될 수가 있다. 오늘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을 내 편으로 만드는 순간부터 한 사람의 인생은 달라진다. 인생의 관점이 바뀔 뿐만 아니라, 관점도, 철학도 모두 바뀐다. 내가 원피스를 가히 최고의 만화라고 여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릴 적 행복한 기억을 외면한 채 현실에 안주한 자, 편한 것이 좋은 것이라 여겨 적당함으로 타협하는 알량한 멋에 든 자, 애매한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후비도록 철학과 경험담을 늘여놓고도 정작 본인은 실행력이 낮다는 이유로 무지의 바짓가랑이를 놓지 못하고 미련을 품는 자에게 한마디 인장처럼 새긴다.


'Romance'


직역하면 연애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것을 인생의 심오한 파편과 함께 나열해 보면 보다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로맨스는 다른 사람에 대한 정서적 끌림 및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취하는 구애 행동을 의미하며, 낭만적인 우정, 친구 사이의 매우 가깝지만 일반적으로 성적인 관계는 아니며, 종종 현대 서구 사회에서 흔한 것 이상의 신체적 친밀감을 포함한다. 12~13세기 중세 유럽에서 발생한 통속 소설을 지칭한다. 애정담, 무용담을 중심으로 하면서 전기적(傳奇的)이고 공상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_네이버지식/위키피디아)


형이상학적인 예술작품을 멀찍이 떨어져서 한 팔짱에 다른 팔을 받쳐 턱을 괴고 품위 있게 감상하거나 요즘말로 '깔롱쌈뽕'한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고 SNS에 물질적 풍요가 기름칠된 사진을 도배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로망의 끝은 위 이야기처럼 타인을 의식한 한낱 자랑거리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만도 못하다. 자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 자신을 알기 위해 양분 삼아 가치 있게 쓸 것인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떨쳐낼 정도의 각오가 담긴 꿈을 가진 한 인간의 로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가족을 핑계로, 안정을 핑계로, 친구를 핑계로... 인간의 본성은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을 때 정체가 탄로 난다. 허풍이 들어간 가벼운 영혼이냐, 진지하게 삶을 고찰하는 무게 있는 영혼이냐로.

나 역시 가벼운 인간이고 영혼은 메말라있다. 그러나 좋은 것을 채우기 위한 노력을 굳이 보이지 않아도 찾아서 하는 것이 검은 화면으로 비친 온라인이 아닌, 다채롭고 풍요로운 오프라인의 일상이다. 문화생활을 죄악시하는 요즘의 성공방식은 상당히 잘못된 것 같다. 과연 우리나라는 돈이 많은 것으로 성공이 귀결되는 것일까?

독서는 나의 예술성의 기반을 다듬고 훌륭한 자재를 심게 해 주었으며, 만화책과 애니메이션 장기 시청, 보드게임은 창조성에 향신료와 같은 맛을 첨가했고, 단출하면서도 재료의 개성이 두드러진 공상과 혼잣말과 시와 가사와 장소를 멋대로 벗어나는 의외성과 뇌를 상당히 피곤케 하는 설명충 기질은 할로겐 전등 아래에서 가니쉬가 먹음직스럽게 올려진 접시의 척아이롤 스테이크와도 같다. 예술의 기질을 일정량 가지고 있다면 음악을 듣고, 만화를 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조용한 살롱에 앉아 교양과 도덕이 몸에 밴 사람들과 지식을 공유하고 소담을 나누는 것은 유럽 중세시대 때부터 사람들을 통해 전해져 왔다.


핑계는 로망을 앗아간다. 그러나 로망은 핑계를 파괴한다. 원피스를 찾는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항해는 섬에서 바다로 이동하는 시작을 나타낼 뿐이다. 겨우 서른이다. 이것을 소중히 여길만한 이가 또 있겠는가. 그러니 꿈을 가진 미래의 선생님들을 응원한다. 높은 자리에서 눈을 견줄 정도로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되길. 로망을 담아 빌어본다.


상디 - "반드시 그에 걸맞은 기회가 잠들어 있어...!"

루피 - "목숨을 걸지 않고선 미래를 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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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