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뒤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가장 순수했던 때로, 가장 행복했던 때로, 내가 가장 나일 때로.
이 초라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으로 돌아간다. 손목에 찬 낡은 금시계의 시침이 12를 가리키며 한 초씩 뒤로 자리를 바꾼다. 마치 퇴보하는 자의 서글픈 위로 같달까. 내 발걸음도 초침이 거꾸로 가는 데에 맞춰 뒤로 간다. 이것은 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심장 속에 가볍게 찰랑이는 달콤한 기억에 의존한 생물로써의 회귀 본능이다. 가장 따뜻한 집, 화목한 가족이 있는 그리운 집이 머지않았다. 타임머신이 아니다. 태초에 있어야 할 어둠, 땅의 신 가이아의 자궁인 것이다.
'여긴... 어디지?'
가진 것 없는 아이들이 제각기 알 수 없는 이유로 도착한 그곳. 아이들은 낙심한 표정으로 각자의 위대를 소비할 데 없는 낡은 꿈의 지갑을 여닫다가 이내 푹 덮었다. 그들은 세상이 두려워 눈과 귀와 입과 코를 막았고 미세하게 열린 손틈사이를 호흡기 삼아 간신히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둠에 잠식된 늪지에서 본 곳이 바로 여기, 우리가 밟고 있는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영롱한 샘이자 거룩한 성수인 장소이다. 나는 이곳이 나의 첫 우물이 아니기를 바랐다.
소년의 집.
검은 늪의 벽은 무연고(無緣故)인들의 삶으로 점철된 붉은 샘이다. 이를 잔잔하게 비추는 무수한 횃불은 삶의 회고가 필요할 때마다 샘을 비추어 가련한 영혼들을 위로한다. 보이지 않는 부모들의 마음이 한데 담겨 갈망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곳은, 삶과 죽음. 그 중간의 어딘가.
심오한 둥지는 긴고아(손오공의 머리에 둘러진 테)를 튼 원숭이들을 내뱉었고, 이들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해 수천 년간 이어져왔던 동면에서 깨어나 단단한 알껍질을 비집어 나왔다. 황량한 세상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그들은 정조(釘彫)된 손으로 새카만 벽을 짚어 동굴을 향해 희미하게 반사되는 빛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어찌 되었건 내 삶은 시작되었다. 웃어른들의 말마따나 유아기 시절의 나는 야윈 몸을 자의적으로 이끌기 힘들었다고 하며, 주변에서 부추길 정도였다고 한다. 미숙아에게 이 세상은 평범하게 걸어 다니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러나 나는 두 손을 쥐락펴락 해 작은 근육을 단련했고, 짧지 않은 수련기간을 거쳤다.
몇 년간 나를 괴롭게 했던 꿈 속에서 우연히 본 검은 창고는 빵공장이었다. 어둑한 구불길을 따라 심한 허기를 견디어 간신히 이정표를 보고 또 보고 나서야 도착한 것이리라. 구수한 빵냄새에 침샘이 아렸고, 마른 혓바닥이 점차 침으로 적셔지는 게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빵공장은 매우 조용하고 한적했다. 그러나 어딜 두리번 거려도 빛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식탁으로 달려가 입 안에 빵을 욱여넣었고, 잘게 부서진 빵조각을 침이 발린 혀로 누르며 녹여 삼켰다. 어느 정도 허기가 채워지자 나는 추위에 벌벌 떠는 또 다른 존재에게 다가갔다. 신발도 없고 낡은 거죽데기만을 걸친 옷차림이었지만 왠지 그 아이와 같은 바닥에 발을 붙이는 것 만으로도 가슴깊이 따뜻함이 도졌다. 우리는 서로를 잠시 안았다가 떨어졌다. 살갗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틀림없이 그가 인간임을 입증했다.
그러나 우린 비슷하면서도 서로 달랐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서로의 이끌림일 수 밖에 없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어둠의 강도 높은 고통은 살을 에는 불씨와도 같다. 창밖으로 끝을 알 수 없는 하늘을 가만히 떠올려 보고 있노라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북극성과 같은 밝은 가능성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어려운 삶을 이겨내는 힘은 명경지수를 유지함과 진실된 노력을 하는 데에서 나온다. 이러한 고통의 진리를 깨달은 뒤, 나는 파아란 하늘이 반듯하게 아래로 쏘는 황선(黃禪)을 바라 보았다.
한 심리상담사의 소견으로는 사회발달 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나. 사회심리 발달장애는 또래와 비교하여 유독 잘 웃지 않고, 달래기 어렵거나, 비협조적이고,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의 사회심리적 갈등을 겪는 대상을 말한다. 이를 겪는 대상의 변주곡과도 같은 독특한 행색은 어릴 때부터 눈에 띄게 발현되며 생후 18개월이 넘어도 말보다 몸짓을 중심으로 이어나간다.
언어발달은 개인차가 크게 작용하여 지능의 업그레이드 시기가 유전학적인 요인과 정서적인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즉, 사회발달 장애에 속할수록 사회에 순응하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는 점에서 타인으로부터 사회적인 인정을 받을 확률조차 떨어진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대상의 해결방법은 전문 교육자들을 통해 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특성, 자원, 성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발달 교육을 1차 목표로 삼는 것이다. 아이들이 대외적인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 작은 단계부터 성취하기 쉬운 목표를 부여하고 성공적인 절차를 밟고 나갈 수 있게 격려하도록 도와주는 교육방식이 적합하다.
노력은 꾸준함이며 곧 사랑이다. 부러운 삶이 있으면, 부러운 삶을 사는 자를 관찰하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그들의 일상과 행동을 주의 깊게 조사하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녹아들 수 있도록 반복적인 시도를 해야 하는 과정이 필수로 있어야 한다. 존경하는 사람이 지향하고 실행하는 삶을 반면교사 삼아 자신의 발전에 자연스레 베이도록 상당한 시간을 기여해야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노력이다.
생명은 산소가 차단되지 않는 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심지 끝에서부터 느껴지는 작열통으로 남은 삶을 맹추격한다. 또한 생명은 진리와 거짓의 선상에 인간을 둘로 나누어 우악스럽고 참혹하게 괴롭힌다. 우리가 생명을 가진 한, 인생의 어느 단계를 만나 그 지점의 흑막을 깨부수는 결정적인 순간에 진실의 발끝조차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생명에 책임을 갖고 산다는 건 상당히 괴로운 일이다. 그 괴로움을 몸소 깨닫는 순간에는 필시 가볍게만 여기거나 에둘러 모른 척해오던 삶의 진실의 일부분을 깨우치기도 한다. 우리의 죽음이 다가오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디 있는지 모를 번뇌 반복 장치가 거듭 발동한다. 진실은 이를 위기로 받아들여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연명하기를 기대한다.
혼돈의 바닷속에서 어린 나는 꾸역꾸역 익힌 헤엄법을 용케 잊지 않았다.
분명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 같은 '불멸의 사랑'을 받았으리라. 이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곳은 부모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 요보호 아동에게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인지적, 정서적인 성장발달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나아가 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재단 단체이다.
이 재단의 창설자이신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 슈월츠' 신부님은 한국전쟁의 상흔으로 가장 혼란스러웠던 1957년에 마지막 피난지인 부산에 가톨릭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의지할 곳 없이 거리를 헤매는 많은 전쟁고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신부님은 병들고, 굶주리고 지친 이들을 위해 기꺼이 그들의 아버지가 됨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 믿었고 1970년대의 고질적 문제였던 영화숙, 재생원 아동들을 받아들이면서 이곳 소년의 집을 설립하게 되었다.
한국 이름 소재건. 소년의 집의 아이들은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을 '소 신부님'이라고 부르며 아버지처럼 따랐다. 소 신부님은 "가난하게 살다 보면 가난한 이들과 같은 파장에 머물 수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남기고 영면하셨다. 그리고 기부금이 생길 때마다 소년의 집 운영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했지만, 당신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살기를 자처하셨다. 나는 신부님처럼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고 있지 않지만, 사회적 통계하에 적당한 삶이라는 범주에서 살고 있다. 신부님의 인본주의적인 헝그리 정신을 물려받아 가난하거나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이 나의 원대한 꿈이다.
부산에 있는 시설은 현재 영유아를 위한 시설, 초등학생을 위한 시설이 있다. 그 외 다른 시설은 14살부터 19살까지의 청소년 아동이 수녀님들의 보호를 받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기 전까지 시설은 우리의 안전한 울타리가 된다. 서울에도 같은 이름의 재단 시설이 있다. 영유아부터 일부 정신 장애아동, 초등학생 아동이 각기 다른 건물에서 생활하며 두 개의 남녀 생활관에 8~13살 나이의 학생이 주로 생활한다.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생전 모습
정부는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되어 홀로서기에 나서는 청년을 '자립준비 청년'이라 부르기로 했으며, 자립 후 5년간 수당을 지급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나는 9년 전 보육원을 퇴소한 자립준비 청년이다.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보육시설은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 생활한 곳이다. 유아기, 아동기를 이곳에서 보냈으며 유년기는 부산에 있는 보육시설에서 생활했다. 길었다면 긴 시간, 짧았다면 짧은 시간. 그곳에서의 경험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누군가의 손길을 떠나 도착한 이곳은 유럽 중세시대에나 있을 법한 요새 같은 웅장한 건물이 떡하니 위치해 있었다. 탁 트인 정문과 마주한 7층짜리 큰 건물, 깔끔하게 정리된 화단, 가지런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측백나무와 소나무들. 참나리를 붙잡은 오돌토돌하고 반질반질하지 못한 크고 작은 돌담, 그 사이를 시원한 그늘로 가리는 비비추, 보육원에 들어오는 이들을 반기는 고동색 보름달의 해바라기들. 야외 풀장 위로 정지비행하는 고추잠자리 떼와 여린 몸에 비해 커튼만큼 큰 두 날개로 나풀대며 화사한 꽃밭을 날아나니는 배추흰나비.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차가운 기운이 감돌아 적어도 40년의 세월은 훌쩍 넘긴 오래된 허연 건물. 죽음의 숨결이 깃든 화단, 생명을 잃은 연갈색 측백나무와 송곳 끝처럼 노련하게 앙칼진 소나무들, 냉랭한 분위기가 풍기는 진회색의 돌담, 생을 다해 썩어 메마른 흙에 묻힌 비비추, 강추위에 바짝 말라 고개를 들 수 없게 되자 머리를 잃어 본래 모습을 잃은 해바라기들. 툰드라 지대에 견줄만한 매서운 강철바람과 팽팽한 서림, 얼어붙은 야외 풀장. 공허함, 의심쩍은 오래된 장물아비 문짝의 살결에서 거뭇한 촉감이 느껴지는 흉흉함.
살을 에는 적색비로 피부에 스며든 이데올로기적 견해의 풍경은 내 눈으로 직접 보고도 쉬이 믿기지 않았다.
"분명 따뜻한 마룻바닥에서 자고 있었는데..."
아마도 4살. 그때부터였을까.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된 때가. 다시 꾸지 못할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꿈이라면 언제 꿔도 좋을 재미있는 것이라 기대했건만...
꿈을 꾸면 나는 초능력자가 될 수 있었고, 여행자가 될 수 있었다. 동물로 변신할 수 있었고 바다가 아닌 허공까지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었다. 하늘을 마음껏 날아 온누리인 주예수 당신이 되어도 보았고, 하늘보다 깊은 곳에서 원하는 데에 손과 발을 마음대로 뻗어 만물을 창조할 수 있었다.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리는 바람에 몸을 맡겨 전혀 상상해보지 않은 장소를 무한히 탐험할 수도 있었다. 이 끔찍한 악몽을 꾸기 전까지는.
그곳은 왜 나를 어둠으로 이끌었나. 평생 풀어야 할 내 운명의 첫 과제.
[십자가의 길]
빌어먹을 내 삶의 여정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