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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Jun 24. 2022

안타까운 빌드업으로 색을 바랜 후반부

영화 <마약왕> 리뷰

 마약왕의 개봉 당시 저는 화려한 라인업에 매료되어 흥미가 생겼지만, 마약왕의 평가가 매우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관심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제 기억속에서 지워지고 있었죠.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이 영화가 제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고, 갑자기 이 영화를 보고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마약왕은 의외로 평가만큼이나 나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장점은 엄청나다고 생각이 드는 영화였죠. 오늘도 잡설이 길었습니다. 마약왕 리뷰 시작합니다.


이 영화의 특징은 아쉬운 조연, 다소 부족했던 초중반부 빌드업, 뛰어난 저점 묘사, 음악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1. 아쉬운 조연들



 마약왕을 보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여럿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스카페이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아이리시맨같은 영화들이 떠오르는 구조입니다.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를 손에 넣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과 그로 인해 뒤따라오는 부와 방탕한 삶을 즐기던 주인공이 결국 실패를 맛보며 끝을 맺는 구조 말이죠. 이러한 구조는 꽤나 많이 사용된 구조이기도 하고, 실패하기 힘든 구조이기도 합니다. 높은 곳에서 추락할 때의 쾌감을 잘 살리는 놀이기구 같은 영화구조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왕은 흥행에 실패했고 전반적인 평도 좋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점들이 조연들과 초중반부 전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조연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두삼은 밀수를 하다가 마약 사업에 들어서게 되고, 그 사업을 확장시키며 여러 인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저의 개인적인 감상평을 담아서 말하자면 대부분의 조연들이 매력이 없습니다. 그에 비해서 숫자는 너무 많고요. 당장에 이두삼을 돕는 인물만해도 간통죄로 인해 감옥에 갔다가 만나게 된 동료, 자신에게 오줌섞인 술을 마시게 한 자의 보스, 야쿠자들, 김정아, 중앙정보부 사람들, 제약회사 사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이 나고 기억에 남는 조연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인물들 중 주인공에게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무언가를 요구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으며 인물간의 성격이 너무나도 겹치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조폭 보스, 야쿠자 보스들, 제약회사 사장을 대하는 주인공의 자세가 모두 똑같습니다. 필로폰을 들고 가서 로비를 하면 다 마음에 들어하고 흡족해하며 일을 주죠. 관객의 입장에서 봤던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되니 지루하게 느낄 수 밖에 없고 인물의 성격이 너무 겹치니 각 인물들의 개성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인물들이 플롯 전개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버려집니다. 특히 조연들은 잠깐 얼굴을 비췄다가 한동안 안나오고, 또 얼굴 비추고 퇴장을 몇번이고 반복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조연들의 문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두삼의 아내라고 생각합니다. 잠깐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의 비교를 해보죠.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조던 벨포트의 아내는 그가 부당한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안겨줄 당시에도 그에게 합법적인 루트로 돈을 벌자며 돈의 맛을 보기 이전의 그의 양심을 담당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이두삼의 아내는 극초반에 밀수가 나쁘다는 투의 대사를 친 이후 그가 불법적인 루트로 감옥에서 석방되는 것을 도와주고, 마약을 통해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자 그를 예찬하는 듯한 대사를 하면서 그의 범죄를 돕고 그의 돈을 바탕으로 자신의 학원까지 세웁니다. 하지만 이두삼이 김정아와 바람을 핀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더러운 돈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이두삼의 미래를 저주합니다. 저런 대사가 이두삼이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위해서는 그녀가 조던 벨포트의 아내같이 미약하게나마 이두삼의 양심을 담당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저런 대사를 날리니 전반적으로 대사에 힘이 실리지 않게 된 것이죠.


2. 아쉬운 초중반부 묘사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인물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즉 고점과 저점의 체감 차이가 클수록 이 영화는 위력적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저점을 굉장히 잘 묘사한데에 반해 고점에 대한 묘사가 빈약합니다. 초반부 야쿠자와 함께 간 술집이나 중반부에 간 스트립 클럽이나 제약회사 사장과 함께 참여한 파티나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고로 이런류의 영화는 고점에서 폭발하는 장면이 있어야 합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사무실에 스트리퍼들과 각종 광대들을 불러 난장판을 벌이는 장면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묘사가 꽤나 빈약합니다. 배에서 돈을 뿌리는 장면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자신을 잡으러 왔지만 결국 성과 없이 돌아가는 FBI 요원들을 조롱하며 돈을 뿌리는 장면이 훨씬 강렬했습니다. 김정아를 안고 금고에서 춤을 추고, 태극기를 휘날리는 장면들도 있지만 그 힘이 약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후반부 멋진 장면들이 즐비해도 그 장면들에 힘이 담기지 않습니다.


3. 뛰어난 저점 묘사 송강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마약을 제조하는 곳이 돼지 축사라는 점은 마약에 중독되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메타포를 담고 있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이 영화의 중요한 장면에 담긴 붉은 색채는 이 영화가 다루는 광기와 뒤틀린 열정을 상징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독재자의 죽음과 마약왕의 몰락이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는 것이 국가가 정상화 되는 과정에 몰락하는 두 군주가 오버랩 되는 느낌을 받았기에 이 영화와 남산의 부장들을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졌습니다.



 이두삼의 집 디자인은 마약왕의 위엄과 웅장함이 드러났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송강호의 연기입니다. 특히 후반부 광기에 사무친 이후의 연기들은 제가 생각하는 송강호 배우의 인생연기입니다. 오히려 영화의 실패로 인해 색이 바랜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영화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압도적입니다. 특히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은 정말 소름이 돋는데, 그녀에게 속죄와 후회의 말을 전하며 울다가 불현듯 증오와 광기에 사로잡혀 저주를 퍼붓고, 환영에 시달리며 정신적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연기는 가히 압도적이었습니다. 이 장면만큼은 감독이 얘기했듯이 송강호의 리어왕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4. 음악 선정


 또한 후반부 음악 선정들도 아름다웠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음악들은 마왕과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인데요. 우선 마왕이 나오는 씬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모든 연줄이 끊겨버린 이두삼은 마약에 빠지고 피해 망상 수준의 생각에 빠지며 추락합니다. 그런 와중에 병마의 환영을 보며 공포에 질려있다가 결국 아버지의 품에서 사망하고 만다는 마왕이 나온다는 것은 현재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겪는 이두삼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암시하는 바입니다.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의 경우에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노래로 사랑을 위해서는 죽을 수 있다는 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노래를 이두삼이 자살시도를 할 때 틀었다는 것은 그가 지금껏 이루어온 잘못된 방법으로 만들어진 성공, 돈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숙이지 않는 자신이 주인인 삶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다는 마약왕의 울부짖음과 같은 느낌으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저에게 있어서 상당히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장점들이 아름다웠지만 단점이 너무나 커서 그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한 채 꺼져버린 느낌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입니다. 초중반부를 조금 간소화하고 몇몇 장면들은 손보고, 조연들을 조정하면 이 영화도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장점은 굉장한 편이니 악평때문에 관람이 꺼려지셨던 분들은 한 번 쯤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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