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시티로 스페인어 어학연수를 가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고민하다가, 1996년 당시 나름 취업이 잘된다는 서반아어(스페인어) 학과에 들어갔다. 어리버리 신입생 시절을 보내고,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에 스페인어 어학연수의 필요성을 느꼈다. 당시 대부분의 학과생들이 스페인 혹은, 중남미로 어학연수를 가는 트랜드였고, 확실히 6개월 이상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우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곳은 멕시코, 당시 한국회사들의 진출이 많은 곳으로 대학 동문 선배들이 많은 곳이었다. 운 좋게도 재학 시절 친했던 선배가 막 멕시코에 취업한 후였고, 선배의 집에서 함께 지낼수 있었다. 도착과 함께 멕시코 국립 UNAM 대학 스페인어 어학당에 등록하여 본격적으로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멕시코시티에도 많은 스페인어학원이 있었지만, 대학에서 운영하는 어학원이 보다 체계가 있어 보였고, 대학교 시설도 일부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 대학 중앙도서관은 그 시설만큼이나, 주변 환경도 좋았기에 자주 찾는 장소였다.
멕시코로 오기 약 5개월 전부터 종합 기초 스페인어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번 완독하면서 문법적 이해도는 매우 좋았지만, 아직 내 스페인어 말하기는 부족한 상태였다. 가능한 멕시코 친구들을 많이 사귀려 노력했지만, 초반에는 같은반 일본 친구들과 주로 어울렸다... 아무래도 일본인들은 스페인어를 배우는 목적도 한국인과 비슷했고, 문화적으로도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첫 1~2개월은 수준이 비슷했던 반 친구들과 스페인어로 대화하면서 기초를 쌓았던 것 같다.
외국에서 언어 공부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3개월 정도 지나고 나니 나름 스페인어에 대한 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멕시코 현지인 친구들도 사귈수 있었다. 한번은 멕시코 친구의 초대로 파티 (Fiesta) 에 간 적이 있는데, 1차, 2차를 넘겨 새벽까지 지속되는 그들의 파티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새벽까지 쌩쌩한 그들의 체력은 넘사벽이었다. 이후로도 종종 현지 친구들과 어울릴때는 밤샐 각오가 필요했다. 참 좋았던 것은 멕시코 사람들의 유쾌한 유머였다. 쉴새없이 농담이 오가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그들의 스타일... 멕시칸의 유머감각은 정말 뛰어난 것 같다. 나의 학생시절의 기억이기에 좀 더 긍정적인 모습을 기억할 수도 있지만, 스페인어가 아직 부족한 나의 말에도 잘 경청해주고, 실수를 하거나 틀리더라도 아주 관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아직 서툰 나의 스페인어에도 "Hablas muy bien Español" (너 스페인어 정말 잘한다) 하고 칭찬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다만, 동양인들만 보면 "치노 (중국인!)" 를 연발하는 길거리 풍경도 멕시코의 일부였다. 멕시코를 비롯한 많은 중남미 국가에서는 동양인들을 "치노" 라고 부르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다. 멕시코 생활 초기에 "치노" 라는 말을 들었을때는 그냥 넘기지 못하고, "No soy Chino, Soy Coreano" (나, 중국 사람 아니야, 한국 사람이야!!) 꼭 집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렸었다. 동양인을 치노 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뜻없이 단순히 동양인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감정을 담아 "지저분하고, 못생긴 동양인" 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지금은 치노라고 부르는 것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교육수준이 낮은 중남미 사람들이 잘 사용하는 단어이고, 그들의 경우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부르는 것이 왜 기분 나쁜 일인지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굳이 "멕시칸인 당신을 과테말라 사람이라고 하면 기분 좋을까요? 빗대어 설명을 해줘도, 사실상 별 관심도 없고, 연계성을 잘 이해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2000년 당시에는 사실상 대부분의 멕시칸들은 한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던 시절이었으니, 한국인과 중국인은 다르다고 설명해 주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겠는가?
한번은, 당시 자주 들리던 또르따 (Torta: 멕시코 스타일 햄버거)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바에서 음식을 준비한 직원이 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낄낄대며 웃는 것이었다. "뭐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 밤부터 복통과 함께 설사를 계속 했다. 아마도, 그 식당에서 뭔가 오래된 식재료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 낮에 그 식당 직원의 웃음이 떠올랐다. 설마, 고의로 그런짓을 한다고? 배알이는 3일 정도 지속되었고, 대학 선배가 구해준 약을 먹고서야 회복이 되었다. 해외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을수 있겠지만, 멕시코에서 지내는 동안 겪은 가장 안 좋은 추억이 아니었나 싶다.
중남미의 후진국으로 생각했던 멕시코, 사실 엄청난 자연 환경과 고대문명의 역사, 라틴 문화, 음식 그리고, 유명한 관광지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나라이다. 멕시코는 지리적으로도 중남미가 아닌 북미에 속한다. 이제는 영화 로도 제작되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마야 (Maya) 문명**, 아즈텍 (Azteca) 문명의 피라미드는 멕시코 역사의 시초로서, 피라미드의 규모면에서 이집트 피라미드 보다 작지만,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도시 문명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아즈텍 문명의 떼우띠우아깐 (Teotihuacán), 마야 문명의 치첸잇싸 (Chichén Itzá) 가 대표적이다. ** 마야 문명 관련 영화 : 아포칼립토/ Apocalypto, 감독: 멜깁슨 2006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멕시코 음식이지만, 한국인에게는 따꼬 (Taco) 정도가 알려져 있다. 멕시코 사람들의 주식이라 할 수 있는 따꼬는, 사실 중동(Middle East) 문화와 결합된 음식이다. 따꼬를 구성하는 또르띠야 (Tortilla) 는 아메리카 원주민 (Indigena) 의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지만, 고기를 꼬챙이에 꽃아서 불에 굽는 형태는 중동의 케밥 (Kebab) 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의 전통 소스가 곁들여지고, 고수 (cilantro), 양파, 파인애플 등이 곁들여지는 따꼬는 완전히 다른 맛으로 재탄생 했다. 학생시절 2~3천원이면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던 따꼬는 내 점심 단골 메뉴였다.
멕시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으로 방문객이 많은 나라이다. 매년 5천만명 수준의 방문객이 온다고 한다. 남한 땅의 약 20배 크기의 멕시코는 각 지역별로 다양한 문화를 가진다. 그중, 관광객이 가장 많은 곳은 칸쿤 (Cancun) 이다.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와 백사장이 펼쳐진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개운하게 해주는 곳이다. 사실 처음 칸쿤을 가게 된 것은 과테말라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였다. All Inclusive 호텔에서 24시간 다양한 부페 음식과 칵테일을 즐기는 호사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천국이 따로 없는 곳이였다. 미국 자본이 많이 투자되어, 5성급 호텔들이 해변을 따라 즐비하지만, 배낭 여행객들도 충분히 즐길 거리가 많은 곳이다.
학생 시절 방문했던 과나후아또 (Guanajuato) 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이다. 멕시코 시티에서 버스로 약 4시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아름다운 마을 풍경이 일품인 곳으로, 거리를 돌아 다니며 사진을 찍을 곳이 정말 많은 곳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풍의 건축 양식이 고스란히 보존된 마을로 마을 전체가 관광지다. 이 외에도 멕시코 아즈텍 문명의 중심지인 떼오띠우아깐 (Teotihuacan) 은 (해와 달) 두개의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고대 문명의 도시가 보존된 곳으로, 멕시코 문화의 근간이 되는 원주민 (Indigena) 문명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거대 태양의 피라미드 (Pramide de Sol) 위에서 바라보는 아즈텍 문명의 도시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지만, 강렬했던 그들의 문명이 현재에도 살아 숨쉬는 듯 하다.
멕시코에 어학연수를 올때만 해도, 단순히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실제 내가 멕시코에서 배운 중요한 것중 하나는 다른 나라의 역사, 문화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땅에 원주민이 정착을 하고, 그들만의 문명을 만든 곳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와 스페인 왕국을 세우려 했지만, 원주민 문화는 그대로 사라지지 않았고, 스페인 문화와 융화되어 지금의 독창적인 멕시코 문화를 만들게 되었다. 현재 멕시코 인구의 60~70% 가 유럽 백인과 원주민 혼혈인 메스띠소 (Mestizo) 라 한다. 그만큼 멕시코 문화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 졌다. 역사를 이해하고 보면 그들의 문화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또 좋아하게 된다. 실제 현지에서 지내는 동안 멕시코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후 내 진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