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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즌정 Nov 16. 2022

총잡이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

<로스트 인 더스트(Hell or High Water)>, 2016

로스트 인 더스트(Hell or High Water)

서부 총잡이들의 법

서부극의 액션 영화인데 배경이 지극히 현대시대라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영화이다. 그런데 그게 맞다, 영화는 '시대착오적'인 총잡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텍사스 같은 남부 지방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다. 텍사스 지방은 흔히들 얘기하는 미국의 서부극으로 대표되는 도시로서(실제로는 남부지방에 가깝다, 동쪽 해안으로부터 시작한 서부개척이기 때문에 서부극의 배경이 되기도 함.)

옛날로 따지면 카우보이, 총잡이들의 도시이기도 하고 지금도 미국 내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도시로 꼽힌다.

 

 지역의 특색을 요약하면 대충,


 (1) 옛날 영국 식민지적인 전통으로 흑인 노예를 거느린 백인 대지주(주로 큰 규모의 농장을 운영함)들이  

       노예제 폐지를 반대했으므로 인종차별주의/백인우월주의가 아직 남아 있으며, 농장/목장이 많음.


 (2) 카우보이, 마초스러운 면모로 총자루를 쥐고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지킴, 법보다 자구책이 우선인 지방

       오래된 이웃끼리라 알음알음 그런 부분을 다 이해하고 연대함.


 (3) 미국 내에서도 종교적으로 가장 독실한 신자들이 많은 지역

       (미국 영화를 볼 때 항상 생각하는 부분인데,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배를 타고 온 이유가 종교가 주됨을 생각해보면 꽤 신실한 신도들이 많은 종교적 국가라는 점)

  

영화를 보면 이 3가지 대목을 다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역사에 대해 잠시 아는 척을 해보자면,

처음에 이주해 온 백인들은 주로 동부지역에 정착해서 살았다. 하지만 이주해오는 인구들이 많아지자 확장을 위해 서부로 향한다. 서부로 가서 '개척'해서 갖는 땅과 재산은 그 사람이 갖는 것이었으므로  총을 들고 떠난다.


그 과정에서 원래 그 땅에서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학살당하기도 하고, 또 서로 재산과 목숨을 빼앗고 빼앗기는 무법천지의 삶을 살던 시대가 바로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인 것이다.


 그러니까 텍사스 같은 서부의 옛 지방은 총으로 강도짓을 하고, 또 총으로 강도에게서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지켜내는 것 자체가 법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한다,


영화에서 한 카우보이가 말했다.



21세기에 말을 타고 소를 몰고 있다니,
퍽이나 좋아서 우리 아들에게도 하라고 했지 뭐요.




강산이 바뀌면 주인도 바뀐다

시대의 법은 그 시대의 주인이 만든다.

이 도시는 더 이상 총잡이들이 주인인 도시가 아니었다.

원래 그 자리를 지키고 살던 인디언들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석유를 캐는 자본가나, 많은 돈을 가진 은행이 주인이 되었다.


 그래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돈을 벌어야 했으며, 돈이 없으면 은행에 돈을 빌려서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 시대를 적응하지 못하자 가난이라는 저주는 대물림되었고, 가족이라는 전통적 공동체는 붕괴되고 있었다.

외지인들이 와서 도시를 무너뜨리고 땅을 차지했어요.
150년만 해도 우리 조상들 땅이었어요.
저들의 증조부모들이 빼앗기 전까진.
이제는 그 후 손놈들이 착취하고 있죠.
이번엔 군대가 아니라
(은행을 가리키며) 저 개자식들 손으로



가장으로서의 무게

 영화의 주인공은 두 형제,

형은 껄렁껄렁하고 불량한 모습으로, 공부나 정도(正道)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Outlaw라면


 동생은 병든 홀어머니와 농장을 지키며, 가난하지만 범법행위 없이 나름의 선량함으로 삶을 살아왔으며 침착성을 가진 상반된 모습이다.


그런데 이 둘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목적과 행동의 근거는 같다. 그것은 바로 '가족을 지키는 일'

 가족은 사회 공동체의 가장 전통적이고 기본적인 단위이다. 이는 유교 맥락에서도 일치하는 바이다. 남자의 도리는 가족을 부양하고 가정을 지키는 것.

 동생은 어머니의 막대한 빚, 그리고 벌이가 없어 고민하는 자신의 가난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식을 부양하기 위한 노력으로 돈을 필요로 한다.


 형은 범죄를 저지르는 방식과 행동적 특성에 대해서는 충동적인 빌런의 모습이지만, 자신을 비롯한 가족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살해했고, 동생의 계획에 기꺼이 참여해서 동생을 도우려 했던 점 등을 미루어보아 '당연하게도' 형이자 가장인 본인이 책임지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범죄의 당위성을 갖고 있다.


자식을 위해선 못할 게 없지



드라이한 표현 방식

영화의 감정선은 참 '상남자'스럽다. 드라이한 흑맥주를 마시는 느낌이라고 할지, '이게 남자들의 방식이다.'를 보여준다고 할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눈물은 일절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에 겁은 일절 없는,

 '엿 먹으라'는 농담을 한다든지, '인생을 끝내주겠다.'는 농담을 하며 웃는 것.


스테이크나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 '감히' 음식에 취향을 논하느냐,

모욕을 하는 언사에 마음의 상처 따위를 왜 받느냐,

그런 건 'Sissy'들이나 하는 짓이지 하는 것.


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당연히 신파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죽음을 슬로로 표현한다든가,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의 장면을 배치한다든가 하는 감성적 순간은 철저히 배제된 모습.


그럼에도 시대라는 변화를 곱씹어보다 씁쓸한 뒷맛을 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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