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자리에 서서, 다른 시간을 건너는 두 사람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며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부인에게
“당신은 좋겠어.” 하고 말했습니다.
이미 이 땅에서
육체가 요구하는 많은 감각을 내려놓고,
다음 세계를 향한 준비를
조용히 앞당겨 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와 동양 사상에서 말하는 연옥과 지옥은
인간이 순수한 정신계로 나아가기 전
정화의 과정을 거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육체가 지상에서 형성한 습관과 감각들을
불태워 소멸시키는 시간과 공간 말입니다.
육체가 없기에
지상에서 행하던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고,
그래서 하고 싶으나 하지 못함에 대한
그리움과 고통은
얼마나 클까요.
부인은 그 고통을
이미 이 지상에서 겪고 있습니다.
그만큼 더 빨리
순수한 정신세계로 들어가
다음 삶을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이 쉬었기에,
다음 삶에서는
다시 많은 일을 하고자 할지도 모릅니다.
수행하는 나 또한
그 과정을 함께
현 지상에서 겪고 있는 듯합니다.
아직 나는
욕구와 감각적 요구를 원하는 육체가
이 땅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기에,
순수한 정화의 세계에서
깨끗한 정신을 갖기까지는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나이 많은 아시타 선인이
아기 왕자가 장차 부처가 될 것을 알아보고도
그 진리를 직접 듣지 못할 운명을 슬퍼하며
울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부인과 다음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시타 선인과
부처가 될 아기 왕자의 관계처럼
엇갈린 인연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득 슬퍼집니다.
그럼에도
인지학적 관점에서
부인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부인은
이미 육체의 시간을 정리하며
다음 세계를 향해 가고 있고,
나는 아직
이 땅의 감각과 욕구 속에서
천천히 그 시간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우리가 건너는 시간은 다르고,
그 다름을 이해하는 일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수행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서두르지 않고,
이 땅의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조심스레 마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