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홍보쟁이 엄마표 미디어 놀이 #1
문득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본 엄마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뇌 세포 속 깊숙이 저장되어 있지만, 단지 지금 기억을 못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내 품으로 쏙 안겼다. 어두운 분만실에서 아빠는 간호사가 반드시 플래시를 끄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주의 사항을 들으며 연신 찰칵찰칵 하고 있었다. 어쩌면 딸아이가 자신의 신생아 시절 속 엄마를 기억해 낸다면 분명 한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있는 모습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해지며 속에서 부끄러움이 한가득 올라왔다. 아기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는 자애로운 엄마의 얼굴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눈코입이 가려진 얼굴이었다니…… 8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비슷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내가 볼 아이의 얼굴도 나와 비슷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 슬프다.
사실 엄마는 미디어와 밀접한 일을 밥벌이로 해왔다. 타깃에게 가장 효과적인 미디어를 선정하고 광고를 집행한 뒤 그 효과를 분석한다. 보도자료를 써서 미디어에 배포한 뒤 미디어가 생산한 기사와 콘텐츠들을 모니터링해 미디어 커버리지수와 밸류(가치)를 계산한다. 커뮤니티나 SNS 채널에 키워드를 입력해 온갖 게시물을 살펴보는 것도 내 일의 하나다. 이른바 공중파 TV 메인뉴스, 조중동 신문, 네이버 메인은 20년 가까이 나를 울고 웃게 만든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런 직장인에 엄마라는 역할이 더해졌다. 대체 신생아 엄마의 사과폰엔 뭐가 들었길래 매 순간 손에 쥐고 살았을까? 아기의 순간을 저장하려는 엄마는 눈보다 카메라 렌즈로 아이를 들여다봤고, 모유/분유, 대소변 횟수와 양을 열심히 기록했다. 잘 자라고 자장가도 틀어주고 육아 필수품이라는 것들을 틈만 나면 쇼핑했다.
하지만 육아를 글로 배운 대표적인 엄마로 힘들게 노력해 지킨 것도 있다. 바로 두 돌 전까지 아이가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 회사로 다시 출근하면서부턴 밖에서는 온갖 미디어를 소비하지만 안에서는 TV는 물론,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업무상 연락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잠깐씩 처리했다. 두 돌 전 아이가 미디어를 보면 마치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함으로 신랑을, 친정엄마를, 베이비시터를 단속했다. 그럼에도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엄마의 모습은 차마 버리지 못했다.
아이는 서서히 엄마가 그동안 숨겨온 스마트폰과 노트북 안에 뭐가 담겨 있는지 알아가게 되었다. 하리보 곰젤리를 생애 처음 먹었던 순간만큼 거실의 큰 네모상자 속에 뽀로로와 타요가 나오던 마술을 잊지 못할 거다. TV를 접한 아이는 금방 빠졌다. 새로운 에피소드들을 궁금해했고 아이와 TV 시청 시간을 밀당하며 약속을 지키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훈계했다. 지금은 시간 맞춰 본인의 채널을 틀고, 맘에 드는 게 없으면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미러링해서 원하는 콘텐츠를 보여달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한다. 하루 스크린 노출량을 계산하며 엄마와 타협하는 기술도 늘었다.
올해 8살 아이는 코로나 19로 유례없이 학교 문턱 보다 온라인 대문을 더 자주 방문한다. (같은 반 친구들보다 조금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욕심에 학교 공부를 우선으로 하다 보니 간과한 게 있었다. 코로나 19가 길어지면서 스크린 노출 양이 늘어난 요즘, 온라인이 뭔 지 가르치지 않아도 태생적으로 알고 있는 이 아이에게 광고홍보를 글로 배우고, 밥벌이로 삼아온 엄마는 미디어가 뭔 지 가르쳐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