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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Dec 24. 2020

8살, 코로나 입학생 #38  메리집콕크리스마스

D+298  2020년 12월 24일  


#코로나19는나쁘기만했을까

과연 21세기 세계사에 기록될 무서운 바이러스의 공포와 위력이었다. 몇십 년 품어왔던 2020 원더 키디의 환상은 중국 우한에서 퍼진 바이러스가 아시아를, 유럽을, 아메리카 대륙을 금세 잡아 삼키는 것을 보고 무너졌고, 어렸을 때부터 주입식으로 배워온 '글로벌 시대'라는 걸 몸으로 체감한 한 해였다.


일 년 전 초등학교 취학통지서를 받고 아이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예비소집일을 다녀왔다. 서류 내고 서류받는 (1분 만에 끝나는) 짧은 시간이 너무 아쉬워서 교실 안을 하염없이 구경했었다. 그 1학년 교실에서 3월을 시작할 줄 알았지만, 코로나19는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기후에도 무색할 정도 그 괴력을 뽐냈다.


EBS 초등학교를 더 많이 다닌 1학년이지만, 일 년을  돌이켜보니 실 보다 득도 많았음을 느끼고 있다. 엄마들은 이 시기를 '두 번째 신생아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24시간 엄마 껌딱지였던 그때로 돌아왔다는 의미다. 2시간마다 수유하고 기저귀 갈고 쪽잠을 자던 시절이 힘들었을까, 삼시세끼 #돌밥돌밥 하며 숙제 봐주고 놀아주고 그러다 서로 짜증 내는 지금이 힘든 걸까? 전자가 아이를 키운다는 '정서' 없이 '생존'에 가까웠던 시간이었다면, 후자는 '생존'보단 '공생' 때문에 갈등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코로나19로 어린이집 졸업식과 초등학교 입학식을 빼앗긴, 1학년 3반 교실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며 공부할 일상을 도둑맞은 이 꼬마가 안쓰러웠다.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10년 근무한 회사를 퇴사하는 나의 상실감을 어루만질 여유가 없었다. 나보다 오롯이 아이의 마음을 달래는 데 쏟아붓다 보니 '코로나 우울감'이 남들보다 더 빨리 찾아오기도 했다. 어쩌면 빨리 그 감정을 터득했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간 싸움을 별 내색 없이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코로나19와 상관없이 8살 아이는 끝없이 성장했다. 키가 한 뼘은 자랐고 스스로 성취하는 효능감도 매우 높아졌다. 혼자 2발 자전거를 타게 되었고, 자유형, 배영, 평영을 터득했고, 승마 평보와 경속보는 물론 손잡이 없이 고삐만으로 자유자재로 말을 이동시키는 실력도 늘었다.  다양한 재료로 보고 느낀 것을 뚝딱 표현하고, 피아노 연주도 늘고, 무엇보다도 책 읽기가 능숙해졌다. 아마 코로나19가 없었더라도 아이는 이 만큼 쑥쑥 컸겠지만, 함께 라이딩하며 꽃과 나비, 나무를 관찰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일이나, 책을 고르고 서로에게 읽어주는 기쁨, 동물들과 따뜻하게 교감하는 기회는 드물었을 것이다. 공원을 더 자주, 동네를 더 많이 산책하며 보물을 발견한 시간이 나와 아이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학교도 원격수업으로 전환되면서 일찍 찾아온 겨울방학이라고 마음을 먹었다. 3월까지 3개월 정도가 남았으니 뭐하고 놀아야 이 1년이 억울하지 않고 '그래도 좋았다'라고 남을까? 누군가를 만날 수도, 여행지로 떠나기도 조심스러운 겨울이기에 겨울방학 플랜은 더욱 겨울 자연과 가까이 지낼 수 있도록 계획해야겠다. 작년 LA에서 토성을 관측했던 추억이 있기에 목성, 토성 라이브 관측 쇼도 즐거웠던 것처럼 경험치를 늘려 봐야지.   




#그래도크리스마스니까  

지난해부터 핼러윈, 크리스마스 파티를 함께해온 지인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준비했다. 내년엔 키즈카페에 모여 놀길 바라며 Zoom으로 가족들이 모이는 #랜선파티를 기획했다. 비밀리에 아이들을 위한 도전 골든벨 퀴즈 문제를 출제하고 아이들이 화상으로 40문제를 풀면 카카오톡으로 선물을 보냈다. 5살부터 8살까지 OX 문항과 객관식 문항을 집중해서 푸는 모습이 귀여웠고, 소파에 앉아 TV 모니터로 각 가정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아이들을 보는 즐거움도 꽤 괜찮았다. 우리 집 꼬마는 맥도날드 1만 원 상품권을 받아 다음날 근처 드라이브 스루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올해 학교, 학원 선생님과 친구들, 가족, 친지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카드를 한 달 전부터 준비했는데 2.5단계 격상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학교, 학원을 못 가는데 어떻게 주지?' 학교와 학원은 새해에 문이 열리면 그때 연하장으로 만들어 주기로 하고, 가족, 친지,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직접 보내기로 했다. 멀리 계신 분들은 우편으로 보내고, 어린이집엔 겸사겸사 인사드리러 다녀오고, 친구들은 직접 포장한 초콜릿과 함께 카드를 집 문 앞에 몰래 놔두고 오는 산타 서프라이즈 놀이를 했다. '누가 먼저 확인할까?' 궁금한 마음에 나와 꽁이는 순서를 정해 내기를 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간식 사주기로... 첫 번째 친구 엄마, 두 번째 친구 엄마에게 고맙다는 연락이 왔고, 다음날 세 번째, 네 번째 등 순서대로 온다. 오! 꽁이가 얘기한 순서가 정확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집을 깜짝 찾아온 산타가 계셨으니... 꽁이 특공무술 관장님과 사범님이 캐롤도 부르고 선물을 주고 가셔서 더욱 즐겁고 특별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다.




#코로나19가더길어진다면

일 년 간 집콕하면서 요리 실력이 꽤 늘었다. 올 가을부터는 내 인생 처음으로 뭔가를 만들어보고 있다. 아파트 정원에 풍성하게 열린 모과를 허락받고 따와 모과청을 만들었고, 주민센터 행사로 공주 밤을 1kg 사 와서 리틀 포레스트 속 밤 조림에 도전했다. 유자, 레몬도 청을 담고, 청국장 만들기도 체험했다. 며칠 전 동짓날엔 적두와 찹쌀가루로 팥죽을 쑤었다. 계절과 절기를 느끼는 방법으로 아이와 만들어보는 것도 즐거운 놀이였다. 모과가 그렇게 딱딱한 과일인지, 유자에 씨가 왜 그리 많은지, 밤 껍데기 까는 게 손이 아릴 정도로 아픈 것이었는지... 몰랐던 그 과정 속에서 친정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내 딸의 행복함이 교차했다. 겨울 방학 동안 만들어 먹는 재미를 좀 찾아야겠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각자의 일과 공부, 놀이, 휴식이 뒤엉켜 있다 보니 공간이 각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뭉개져 있는 기분이다. 길어진 방학 동안 비우고 덜어낸 뒤 서로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아이디어를 찾아봐야겠다.


우리는 소원 빌 타임엔 언제나 코로나19가 사라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코로나19로 애쓰시는 모든 분들의 수고 덕분에 방역 체계 안에서 그래도 안전한 일상을 보내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웃는 얼굴 보며 인사하는 날이 오기를...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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