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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리뷰] 유키코(Yukiko)

실수였을까, 운명이었을까

실수였을까, 운명이었을까


한 남자가 죽어간다. 마스크를 쓴 여자의 칼에 맞은 채, 피를 흘리며 여자에게 쫓기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의사다. 인적 하나 없는 밤 거리에서 남자와 여자가 다급한 추격 전을 이어가는 사이, 끝없이 과거의 잔상과 상념이 끼어든다. 


남자가 칼에 처음 찔렸을 때 기억해낸 건 의사로서의 지식이다. 상처 부위를 제대로 압박하고 달렸을 때 살 수 있다는 희망은 두 번째 날아온 칼날에 일 순간 꺾이지만 달리기는 멈추지 않는다. 



남자는 왜 죽어야 할까? 


궁금해지는 찰나, 남자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이 마치 현실인 양 생생하게 비춰진다. 약에 취해 제자와 관계를 갖고, 약에서 제대로 깨지 않은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가 모녀를 치고서 달아나는 데까지, 그리고 그 모든 순간 이후에 강 단에 선 남자는 분명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어날 일은 이미 다 벌어졌고 남자는 여전히 피를 흘리며 고꾸라질 듯 고꾸라지지 않을 듯 다급하게 도망치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묘미는 남자가 뺑소니를 치는 순간부터 병원에 겨우 도착해 수술대에 오른 여자아이가 방금 전에 자신이 차로 치고 온 아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까지 감정 변화가 탁월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거다. 클로즈업이나 바스트 샷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남자가 된 듯 그 감정을 생생히 느끼게 하는데 특히 수술대의 여자 아이를 확인할 때 표정이 압도적이다. 


의사는 '살려야만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남자 자신은 본인이 약에 취해 있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모녀를 '죽음에 내팽개치고' 왔다. 그 과오를 겨우 겨우 합리화 시키고 '살려야만 하는' 일터에 돌아왔는데, '죽여야만 했던' 아이가 이미 이곳에 와 있다. 의사로서 이 아이를 살려야 하는 걸까, 살리고 난 뒤에 의사로서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까... 소리 없이 절규하는 표정을 뒤로 한 채, 영화가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오면 남자는 또 다시 칼에 찔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자는 여전히 살아 있다. 겨우 살아난 남자의 과거는 이제 수술 방 안을 비춘다. 실수 라기엔 너무도 고의적이고, 운명 이라 기엔 너무도 잔혹해서 그 아이 '유키코'로 밖에 말할 수 없는 남자의 과오가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 다. 수술대 앞에 선 과거의 남자는 유키코를 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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