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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사람 Apr 30. 2024

삼원숭가족: 33살 부부와 9살 아이의 이야기-1

우리가 주말을 보내는 법

우리는 주말이면 어떻게든 밖에 나가는 편이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우리 셋만의 시간을 꼭 확보하려고 한다.

집에 있으면 집안일이 눈에 들어와 셋이 한 자리에 앉아있기 힘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나면 아무래도 우리만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4월의 마지막 주말에는 사촌언니가 귀촌해 자리를 잡은 곳에 2박 3일로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서 해야할 일은 크게 2개였다: 장터에서 중고물품 팔기, 친구 부부와 테니스 치기.


1. 장터에서 중고물품 팔기

숭이에게 제대로 된 경제관념을 심어주고 싶어 공부 중인데, 여러 책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보는 경험과 그것을 의미있는 곳에 써보는 게 중요하다는 내용을 보았다. 마침 언니네 동네에 장터가 열린다고 해서 신청하고 집에서 안 쓰는 장난감, 옷, 보드게임 등 말그대로 잡동사니들을 챙겨서 내려갔다. 그리고 수익금은 5월에 있을 자선마라톤에서 기부할 예정이다.

'너무 빨리 완판되면 어떡하지?'라는 설레발을 치며 애향공원에 도착했는데 웬걸? 주차장도 텅 비어있고 전혀 장터의 분위기가 아니다. 언니에게 전화를 하니 장터가 열리는 곳은 네비에도 안 나오는 동네의 자그마한 애향공원이었던 것. 바로 차를 돌려서 도착한 동네 애향공원에는 이미 판매자들과 주민들이 꽤 많이 와있었다.

돗자리 위에 숭이가 열심히 준비한 가격표와 물건들을 펼쳐놓는데 옆집의 화려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ㅇㅇ네 보물상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연령대가 사랑할만한 장난감들이 500원, 1000원에 나와 있었다. 꼬마들이 우리 옆집에만 모여서 신나게 물건을 사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장터는? 옆가게 주인 오빠를 포함한 4명의 착한 사람들이 사'주신' 게 전부였다.. 막판에는 큰맘먹고 "몽땅 1000원"에 내놨는데도 말이다.

씁쓸하지만 이번 장터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없는 잡동사니들은 남들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장터에 음식이 부족했던 점을 공략해 다음번에는 수박주스와 피자를 팔자며 펼쳐놨던 물건들을 도로 다 싸서 돌아왔다.


*대체로 우리가 일을 벌이는 패턴은 이렇다.

숭이가 이거 하고싶다, 저거 하고싶다 가볍게 흘림 -> 내가 거기 꽂혀서 바로 추진 -> 우탄이는 '생각처럼 안 될텐데'라고 투덜대면서 같이는 해줌

이렇게 매번 할 일이 생기고 우리의 주말 스케줄을 채워간다.



2. 친구 부부와 테니스 치기

자주 테니스를 같이 치는 친구 부부가 있다. 내가 테니스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응원하고 붙잡아 주는 고마운 친구들인데, 문제는 한 번 테니스를 치자고 하면 기본 3~4시간을 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은 30도에 가까운 무더운 날씨였다.

더운 날씨에 몇 시간씩 숭이를 앉아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 사랑하는 언니에게 조카를 몇 시간만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천사같은 언니는 동네의 3학년 언니까지 섭외해 숭이에게 아주 근사한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이제 슬슬 쓰러질 것 같은데? 라는 한계를 느낄 때쯤, 언니가 테니스장에 숭이를 데려다주었다. (살았다!) 뒷좌석 문을 여니 눈이 반쯤 풀린, 손톱을 노랗게 물들인 숭이가 화관을 쓰고 배시시 웃고 있었다. 얼마나 재밌었을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몰골이었다.

친구 부부와 각자 차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에 숭이는 계곡에서 놀다가 엉덩방아를 찧은 얘기, 언니네 집 고양이들과 논 얘기, 애기똥풀로 손톱을 물들인 얘기를 쏟아내고는 엄마아빠는 어땠는지 묻는다. 나는 엄마아빠가 같은 팀으로 지다가 마지막에는 끝까지 해서 한 판 이겼다는 얘기, 테니스장에 있던 초고수 아저씨들에게 아빠와 삼촌이 대결을 신청해서 신나게 깨진 얘기를 해준다. 우리 세 명 다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음을 확인할 때쯤 식당에 도착했다.

맛있는 고기를 구워먹고 친구 부부와 헤어지기 전 제일 잘하는 태권도 품새 하나를 뽐낸 후 헤어졌다.


*아이가 클수록 좋은 점은, 부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견디는 게 아니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지나면 아이가 없는 시간이 늘어갈 텐데, 그때의 나도 견디기보다는 즐길 수 있도록 지금부터 나의 즐거움을 찾아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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