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감상평
'마침내'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영화 후반 부에 해준(박해일)이 서래(탕웨이)를 찾기 위해 간 해변에서 '나는 붕괴되었어요'라는 내레이션이 흐르면서 해준의 뒤로 끝없는 하늘이 현기증 나듯 펼쳐진다.
그리고 파도와 해안의 모호한 경계를 끝없이 뛰어다니는 해준.
고전 명작을 읽듯 너무 잘 만들어진 영화.
영화를 보고 나서 서래가 첫 번째 남편을 죽이기 위해 올랐던 산의 높이가 138층이었고, 영화의 러닝타임이 138분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낀 놀라움.
(만약 감독이 소설가였다면 이 작품은 138쪽의 책으로 출간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디 하나 신경 쓰지 않은 부분이 없는 영화였다.
그렇다고 영화 내내 관객에게
'우리 영화는 여기에 이런 의미도 담고 저기엔 복선도 담아두고 이렇게 이렇게 저렇게 저렇게 신경 썼어요'
라고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도 아니다.
그냥 집에 와서 다시 영화를 되새김질해보니 윌리를 찾아라 처럼 의미를 찾게 된다.
영화 속 해준이 서래를 찾듯, 나는 영화가 주는 여운을 찾으려고.
사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본 건 처음이다.
악마를 보았다나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잔인한 장면을 듣고는 도저히 나랑은 맞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헤어질 결심을 보게 된 건 박해일 배우의 공이 크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배우가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물음에 답하듯 비치는 그 얼굴.
어떻게 팬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월이 지나 지금은 그때의 소년 같은 모습은 없어도 브라운관에서 여전히 매력이 넘치는 배우다.
그렇타. 박해일과는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서래는 해준의 영원한 미결 사건이 되어 그의 벽한 켠의 사진이든 수첩 속의 한 줄이든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사랑이 영원할 순 없다.
하지만, 그는 이제 구두 대신 운동화를 항시 신을 것이고 그녀의 사건은 그의 머릿속에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그렇기에 헤어질 결심을 한 것이다.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