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벌쓰데이 투미
[나혼자 생일파티]는 생각 해본적이 없다. 생일날 혼자있는게 싫었다. 철이 들기도 전에 혼자 있는 외로움을 먼저 배웠다. 깜깜한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도 싫고, TV켜둔채로 혼자 울면서 잠드는 것도 싫었다. 그때의 일들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혼자 있는게 외로운게 극도로 싫다.(지금도) 사교적이고 밝은 성격이었다면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친구집에서 자기도 하고 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사교성이라고는 1도 없던 나는 더 사교성이 떨어졌고 비난적이었던 성격은 끝없이 바닥을 쳤다. 좋아지려고 노력하고 억지로 웃고 밝은척 사교성 좋은 척 했지만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생일이면 1~2명의 친구들과 밥을 먹고 소소한 생일 파티를 했다. 가족들과 생일밥과 케익을 먹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현)신랑과 연애시절에는 신랑이 생일을 챙겨주었다. 남들이 말하는 생일 주간같은건 없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20대 중반부터는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과거의 기억이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어서 힘들었다.
지금의 나는 혼자 조용히 생일을 보내고 싶어 하고 있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난 뒤 내 생일 때마다 눈물 바다였다. 육아는 힘들고 신랑은 회사일로 바빳다. 다른 날은 그렇다 쳐도 생일에는 눈물이 났다. 신랑이 우는 나를 데리고 스타벅스에 가서 사준 작은 케익 하나와 "생일축하해"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로 두아이는 내 생일과 비슷하게 태어났다 몸조리 하느라 내 생일인지도 모르게 몇년을 보내기도 했다. 진짜 힘들고 바쁘고 정신이 없으니깐 생일을 못챙긴 아쉬움은 있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생일에 먼가 의미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주위에 생일 주간이라며 지인들만나서 파티하고 가족들이랑 생일 잔치 하고 하는건 부러움쟁이인 나인데도 부럽지 않았었다. 내가 멀 원하는지 나조차 알수가 없었다. 선물 하나 없지만 신랑이 끓여주는 미역국 한그릇과 아이들이 고른 케익으로 하는 생일 파티로도 나는 좋았다. (머 명품같은거 선물로 주면 더 좋겠지만 상상만 해본다) 넷째를 낳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말 네아이를 키운다는건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것도 있지만 일이 많은데다가 순서 없이 일을 하니 더 정신이 없는 것 같다.
30대의 마지막 생일이 다가 오고 있다. 20대 마지막은 사춘기가 와서 힘들었었는데 30대 마지막은 먼가 평화로운 기분이다. 올해 달력을 정리하면서 내 생일을 체크하는데 혼자만의 생일파티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혼자만의 생일파티가 가능할까? 올해는 하고자하는걸 해보기로 한만큼 되든 안되든 도전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엄마 생일 잔치를 해주고 싶어 해서 가족과의 생일 파티도 하고 혼자만의 생일 파티도 가져보기로 했다.
꿈꾸는 혼자만의 생일파티
혼자 하는 생일파티를 해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냥 가볍게 혼자 생일 축하를 하고 싶을 뿐이라 내머리 속에서 상상되는 파티를 해보기로 했다. 생일 왕관을 쓰고 요즘에는 미스코리아 띠처럼 생일축하 띠가 팔던데 그것도 하나 둘러보고 싶다. 예쁜 원피나 잠옷을 입고 아주 작은 케익 하나에 초하나면 충분할 것 같다. 생일 사진도 찍고 혼자서 "해피벌쓰데이 투미~" 노래도 부르고 샴페인 한잔에 케익이 먹고 싶다. 호텔에서 세상 화려한 생일 파티가 하고 싶을줄 알았는데 내가 꿈꾸는 생일파티는 그렇게 크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중엔 친구도 자유롭게 만나고 노는 엄마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엄마들도 많다. 나는 후자였다. 친구들과 생일날 밥 한번 먹으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10년간 소소한 모임들은 나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왜 나만' 이라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하고 힘들었었다.
내가 혼자만의 생일 파티를 생각하고 기획하고 실천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올해하고 10년 뒤에 40대의 마지막 생일파티도 혼자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또 다른 생일 파티를 상상하지 않을까? 그 생각에 웃음이 났다. 막내가 "엄마 엄마"하면서 안긴다. 60이 되었을 때는 딸과 떠나는 모녀 여행도 가능하지 않을까? 미래의 생일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요즘에 나는 미래의 생일이라던가 미래의 우리가족, 미래의 어떤 날을 상상한다. 이런 내가 신기하다.
생일 파티에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한두 제품정도 판매할 꺼라고 생각했는데 종류가 많아서 당황했다. 후기도 엄청났다. '이...이렇게 인기 있는 제품인가?' 배송도 빠르고 원하는걸 선택할 수 있었다. 구성이 다양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고를 수 있었다. 굿굿~ 내가 쓰고난 다음에 아이들 생일 때 해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거 보면 나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사남매의 엄마인 것 같다. 생일 때마다 반 강제적으로 아이들이 내 케익을 골랐었다. 내 생일인데 원하는 케익을 사주지 않으면 난리가 났다 대체 몇년을 만화캐릭터가 올라간 케익을 먹어야 하는걸까? 만화캐릭터가 올라가 있지 않고 초코가 아닌 케익으로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번 했었다. "어떤 케익을 사지?" 사실 아이들 몰래 케익을 사는것도 불가능 하지만 혼자 먹으면 난리가 날게 분명한데도 나는 생일 케익 고르는데 한참의 시간을 투자했다. 고민도 많고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까? 걱정도 많고 생각도 많은데 왜이리 즐거울까? 힘든데도 혼자만의 생일파티를 생각하면 베시시시 미소가 지어진다. 이게 이렇게 즐거울 일인가 싶다가도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결혼 전에는 친구들과 만나서 밥먹고 선물 받고 엄마가 해주는 생일상 먹으며 간단히 파티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는 달라져 있었다. 생일이 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일이기에 좀 특별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모여서 파티룸 만들고 케익 사서 생일 파티도 하고 싶지만 그것보다는 소소한 파티를 나는 더 꿈꾸고 있다. [더]라는 단어가 요즘 나의 선택을 좌우하는 것 같다. 먼가 할때 [더] 원하는것 [더]사고 싶은 것을 산다. 생일파티도 나에게 [더]가 붙는걸로 선택하고 있다. 시작이라면 시작일 지도 모르는 나의 선택들이 즐거움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드디어 생일 파티
혼자만의 생일 파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현실은 쉽지 않았다. 생일 전주에 아이들을 교육기관에 등원 시키고 잠깐 사이 하려고 했다. 준비는 다됫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아직은 아니야"라고 말했다. 생일 전전주부터 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한아이는 학교를 가지못할 정도로 많이 아팠다. 아이들이 아프고나니 내가 아팠다. 생일이 지난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는 아프다. 이젠 아프면 쉽게 낫지도 않고, 후유증 처럼 먼가 계속 남아 있다. 나혼자 생일파티를 한다는 생각도 못했다. 친구들이 보내준 선물과 케익으로 간단히 생일 파티를 했다. 내 생일 뒤로 둘쨰 생일이 있는데.. 미역국과 케익 겨우 챙겨 주었다.
미스코리아 띠치럼 생일 축하 띠를 매고 생일 왕관을 쓰고 사진도 찍으며 축하 파티를 하고 싶었었다. 조용히 "해피벌쓰데이 투미"를 외치고 싶었었다. 작고 맛있는 케익 하나를 구입하고 싶었었다. 소소하게 하고 싶은 몇가지가 있었었다.
혼자만의 생일 파티는 못했지만, 아쉽긴 하지만 나는 슬프지 않았다. 생일 전 아이들이 전부 건강을 되찾았다. 나도 어느정도 건강을 되찾은 상태였다. 생각도 못했는데 친구들이 생일 선물을 보내주었다. 2~3년 전부터 생일을 챙겨주는 친구가 있어서 난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친구란게 이런건가?? 몇개 안되지만 생일 선물 언박싱을 하는데 기분이 좋았다. 선물 하나하나가 감동이었다.
생일 날부터 일주일 내내 셋째가 "엄마 생일 축하해"하면서 계속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말로는 "그만해~이제 생일 지났어 "라고 했지만 노래 불러 줄때마다 마냥 좋았다. 셋째가 부르고 있으면 다른 아이들도 함께 불러 주었다!! 아이를 키운다는게 이런걸까? 이런 소소한 행복이 좋았다!!
생일은 지났지만 친구가 보내준 케익으로 간단히 생일 파티를 했다. 다음날이 둘째 생일이라 고민했지만 소소하게 우리끼리 생일 파티를 했다. 초를 하나만 꽂았는데 10번도 넘게 불을 켜고 돌아가면서 '후~'를 했다. 이게 이렇게 즐거울 일인가???
내가 계획했던 생일 파티는 없었지만 비싼 선물도 없고 화려한 생일 파티도 없었지만 나는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떤때보다 행복했고 기분이 좋았다.